채식주의자 - 한강
인간은 여느 동물처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날카로운 발톱도, 엄청난 힘도, 상대를 겁줄 수 있을만한 커다란 무늬도, 감쪽같이 숨을 수 있는 색도 없는데, 어떻게 지구라는 행성 전체를 지배하게 된 것일까.
인간은 보들보들한 두 다리로 땅 위를 활보하며 자그마한 두 손으로 여러 연장들을 쥐고 자신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랗고 힘이 센 동물들도 수렵했다.
주어진 자연환경에 순응하지 않았다.
비가 오지 않을 때를 대비해 빗물을 모았고, 과일이 없어질 때를 대비해 식량을 추수해 비축했다.
숲 속의 나뭇잎 사이에 침실을 만들지 않고, 나무를 베고 흙을 짓이겨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창조물들 사이로 자연을 틈틈이 끼워 넣었다.
마치 인간이 모든 미물 중에 가장 우위인 양 모든 것을 지배하고 컨트롤한다.
정말 인간은 생태계의 먹이사슬 피라미드에서 가장 꼭대기일까.
지금에야 많은 사람들이 육식들 즐기고, 이유식을 시작하는 아이 때부터 영양성분의 조화를 위해 육식을 권장한다.
인간이 불을 발견하고 나서야 음식들을 굽고 끓이면서 조리를 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잡식동물이라 별 걸 다 먹기 때문에 먹이사슬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는 걸까.
이전에 읽었던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 에서 본 한강 작가는 개인의 어떤 사건에서 시작해서 그 시대의 분위기 전체를 보여주었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4.3 제주서부청년 사건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채식주의자는 어떤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지.
채식주의자는 자의로 육식을 선택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보인다.
주인공 영혜도 자의로 육식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어떤 꿈을 꾸고 얼굴들이 보이면서부터 육식을 할 수 없게 된 채식주의자다.
작가는 그 꿈이 어떤 꿈이었는지, 어떤 얼굴들이었는지 끝내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무슨 꿈이었을까.
어떤 얼굴들이었을까.
그것으로 무얼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결국 채식을 하는 영혜는 무엇을 선택한 것일까.
그 채식주의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폭력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책의 화자는 3명이다.
채식주의 당사자의 이야기.
채식주의자를 조금 이해하는 자의 이야기.
영혜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의 이야기.
채식주의자를 넘어 스스로가 식물이 되고자 했던 영혜를 어떤 방식으로든 이해하는 자가 있고, 자신의 입장을 놓지 않고 바라보는 자가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나의 태도를 돌아본다.
그저 말만 ‘그럴 수 있지. 다를 수 있지.’ 읊조리는 것은 아닌지.
상대가 있는 곳에서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무엇이 보이는지 살펴보고 있는 건지 나의 태도를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