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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규 Jul 21. 2022

환자 가지고 실험하지 마세요

의사의 알고리즘

전 편 이어서... 의사의 입장

 

"이거 먹으면 나아지나요?"라는 환자의 물음에 자신이 없던 적이 꽤 있다. 

나를 포함한 의사들의 머릿속에는 알고리즘이 들어있다. 실제로 의학의 공부법이 그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A를 시도해보고 나아지지 않으면, B 또는 C이고, 이때, D를 해보았을 때 결과에 따라 B 또는 C 또는 E 일 수 있다... 이런 식이다. 그렇다 보니, 이거 먹으면 나아지는가라는 질문에,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려면 주저리주저리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늘어놔야 할 때도 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듣는 환자 입장에서 의사가 자신이 없거나, 이 치료가 진짜로 필요한 치료인지 아닌지도 헷갈리게 만들어 버리곤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선택해야 한다. 높은 확률로 일어날 수 있는 일과 아닌 일을 구분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병이 중해지면 중해질수록, 가능성은 더 많은 갈래로 일어나기에 신뢰감 있게 말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당신이 수술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A 의사는 "이 수술을 받으면 반드시 나아지실 겁니다."라고 하고 B는 "수술을 받으면 나아지는 점도, 나아지지 않는 점도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의사 중에 어떤 사람에게 수술을 받고 싶은가. A는 환자에게 믿음을 줄 수 있으나, 사실 전달에는 실패했고, B는 사실을 전달했으나, 받는 환자는 불안을 해소하지 못한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일까? 대부분의 의사들은 B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의사로서 좋은 의료의 질을 유지하고, 환자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말하는 사람의 양심을 걸고 B를 이야기를 한다. 나는 B'를 이야기하고 싶다. "수술을 받으면 나아지는 점도, 나아지지 않는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상태는 수술을 받으셔야 하는 상황입니다. 걱정되시겠지만, 저희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같이 이겨내 볼 수 있게 하겠습니다."라고. 


 B만 이야기하다 보면, 보호자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환자 가지고 실험하지 마세요." 안타깝지만, 실험한 적이 없다. 의사도 신은 아니기에 중환일수록 어떤 치료가 병을 해결할 열쇠인지 시도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생긴다. '환자를 마지막으로 본 의사가 명의가 된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런 치료, 저런 치료를 받아온 환자가 오면, 오히려 마지막으로 본 의사는 답을 찾기가 더 쉬워지는 것이다. 3차 병원에 있다 보니, 이런 일들이 실제로 많이 발생한다. 병을 나아지게 해 드리는 것은 뿌듯하지만, 환자분이 1,2차 병원의 치료가 엉터리였다고 욕을 하실 때면, 한 편으로는 마음이 씁쓸하기도 하다.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든다. 


 의사와 환자의 입장 차이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았다. 환자는 치료과정과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의사는 의료의 질과 사실 전달 말고도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한다. 자신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은 분명히 환자에게 있다. 그러나 그 환자에게 치료에 대한 리더로서의 역할은 의사가 하는 것이 맞다. 리더는 강압적이고 고집불통인 사람이 아니다. 마차를 끌도록 채찍질을 하는 리더가 아닌 같이 마차를 끌고 가는 리더가 필요한 시대이다. 의사도 같다. 환자 위에서가 아닌 환자 옆에 서있는 의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는 내 이런 생각을 계속 글로 써나갈 것이다. 


#책과강연 #의사가되려고요 #김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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