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 집주인아저씨의 일상은 빗자루, 쓰레받기와 같이 하루를 시작된다.
출근을 하기 전에 집 앞의 꽁초들과 쓰레기를 쓸어 담는다.
겨울엔 눈을치우며 일기예보에 신경을 쓰고 봄에는 떨어지는 꽃잎과 꽃가루를 치우고 가을이 깊어지면 온 동네 길가의 낙엽들이 바람에 몰려와 쓸어야 한다. 하다 하다 지쳐서 대포라는 전동 부러워를 사야 했고 밤새 오고 가는 행인들과 사람들이 머물다간 흔적들이 밤새 얌전히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다.
조금 늦은 아침에는 늦은 저녁시간에 아침과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재활용분리 수거함도 틈틈이 보아야 한다. 조금 게으름을 피워 챙기지 않으면 하루 이틀이면 금방 쓰레기하치장이 돼버린다. 한 장에 250월을 주고 맞춘 대형비닐에는 그날그날 먹은 음식용기들과 매일 같이 오는 택배의 박스들 술병과 음료캔들이 수북해있다. 처음에는 구분 없이 마구 버리던 것이 주인아저씨가 아침저녁으로 수구라고 앉아서 분리하고 정리하는 것을 보더니 눈치가 보였는지 이젠 제법 딱딱 분리해서 버린다. 그리고 청소를 마치고 들어가면서 현관 앞을 지나며 우편함을 둘러본다.
303호 앞 우편함에 찾아가지 않는 우편물이 또 와있다.
지금은 이사 간 꽃집을 하던 어린 아가씨의 우편물이다. 보낸 이의 이름은 XX캐피털, ㅇㅇ저축은행 등이다.
채 2년을 살지 않고 마곡으로 가게를 처음 열고 근처 오피스텔로 이사 간 아가씨였다.
꽃집아가씨가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사근하고 붙임성 있고 인사를 잘하던 모습이 남달라서라기보다는 어린 나이에 장사를 하는 모습이 너무 기특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원룸아저씨가 된 것은 계획이 있었다거나 사전에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서인 것은 아니었다. 특별하게 좋은 학벌이나 직장도 없이 거기다가 젊어서 결혼을 하지 않고 그냥저냥 즐기고 고만고만 살았기에 나는 살아오면서 경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경제나 부동산에 눈을 뜨고 관심을 가진 것은 한참 후 일이다. 사실 돈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쫒았다기보다는 부모덕을 입어 물려받은 부동산이 있다 보니 신축도 하고 없던 관심이 생기게 된 케이스다.
전에 살던 집이 마포에 대학가가 많이 몰려 있던 위치였기에 대학생들과 젊은 직장인들이 대부분의 세입자였다. 투자라던지 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탓에 기존에 4평 전후에 작은 방을 만들어야 수입이 많아지는데 그냥 내가 보기에도 너무 작아 좀 크게 원룸을 만들었다 수입이 적어진 것이 후에 아쉽기도 했지만 십 년이 지나고 보니 가격대비 큰방이 경쟁력이 있어 인기가 있었다.
대부분 대학생들은 홍대 서강대 친구 따라 쫓아온 성대생이나 공무원, 교사, 여의도나 근처 대기업 금융권 회사에 다니는 인정적인 젊은이들이었다.
임차인 중에 대학생들은 지방에서 나름 공부 잘하고 수재였기에 집안의 기대가 컸고 남 녀 구분 없이 부모들은 여유가 있는 집안이 많았던 터라 비교되어서 같은 또래의 꽃집을 창업해서 장사를 한다는 꽃집아가씨는 왠지 더 기특하고 예뻐 보였다.
대부분 범생이 같은 학생들이 많아서인지 건물에는 크게 시끄럽거나 무리를 일으키는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다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한 탓에 대부분 취업을 잘했고 유학을 가고 결혼을 잘해서 잘 사는 것 같았다. 처음 신축하고 사업을 시작하며 입주해서 아직도 살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대학과 대학원 직장을 잡고 결혼 전까지 같이 살아간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배달로 스벅커피를 사 먹고 택배박스가 끊이질 않는 학생이나 젊은 친구들도 있었다. 여학생 중 일부는 철마다 해외여행을 하고 결혼 후에 이민을 가고 학자금대출 상환우편물이 날아오는 친구, 늘 양주병을 잔뜩 내놓으며 이사 갈 때 정산을 하면 일 년 치 공과금이 밀려있는 여학생도 있다.
자기가 벌어서 쓰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부모들의 등골이 휘어지며 지원해 주는데 너무 철없는 학생들도 보아왔다. 그런데 꽃집아가씨는 직원으로 일을 하여 돈을 모으고 (아마도 창업을 하려면 대출을 받았을 것이다) 나름 어리지만 꿈을 이루어 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처음 꽃집을 열며 인테리어며 공사하며 속상한 이야기를 내게 하소연하면 들어주었다. 어린 아가씨라 함부로 보는 것인지 터무니없이 바가지를 씌우는 업자의 이야기를 듣고 공분했었다. 어쨌든 창업을 하고 잘하리라 기대와 응원을 보넀었는데....
코로나로 팬데믹을 거치고 여기저기 개인사업을 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코로나가 끝나고서는 그보다 더 심한 불경기가 이어졌다.
젊은 친구들의 사업을 독려하며 정부에서 지원한 청년사업대출을 받았던 젊은이들은 운명일지 불운인지 모르게 대부분 파산을 하고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아마도 꽃집아가씨는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것 같다.
열심히 산다고 하여도 인생의 성공은 운칠기삼, 아니 운구기일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대학생들은 취업난에 휴학과 대학원진학을 하는 게 트렌드가 되었다. 학생으로서 취업을 하는 것과 졸업과 경력이 없이 보낸 일이 년은 캐리어에 흠집이 되어 버린다.
기업들은 점점 줄어들고 일자리는 예전과 같이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은 수가 줄어들었다고 하여도 양질의 직업과 직장으로 들어갈 길은 여전히 병목현상이 되어 들어가기 쉽지가 않다.
손쉽게 할 일을 찾아 배달오토바이를 타는 젊은이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경제활동의 욕구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중년의 세대, 노년의 세대에게도 간절하기만 하다.
거리에 휘황한 건물과 비싼 차와 집 멋진 물건들 맛난 것들 고급스럽고 폼나는 것들이 오직 보인다 아니 보인다.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것은 감춰져 있다.
우리는 태생이 날지 못하는 짐승이나 날아가는 새들을 꿈꾸며 새들이 날아가는 곳을 쫒아서 무작정 뛰어서 몰려가는 것일지 모르겠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지 모르겠다.
당연한 수순으로 자본주의의 속성일지 모두가 일등이 되고 일류가 되어야 하는 세상이 망상은 아닐지 모르겠다. 사회가 점점 고도화되고 자동화되고 자본집약적이 되어 간다면 사람들이 하여야 할 일은 오직 소비의 주체로서 돈이 돌아가는 역할만 남게 되는 것인지 빈부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이 당연한 순리인지 개인의 경제역할은 무엇으로 귀결되어야 할지 고민이 많아지게 되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으로 귀결되는 사회가 정의를 잡아먹는 시절을 지나고 있다. 수많은 이권과 욕심이 득실되는 사회에 정치가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나라를 팔아먹어가면서 자리에 연연할 정치가와 종교인 언론인들이 과연 하나 둘이라도 있을까?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명언은 국회 본관 현판에 달아 두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