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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환 Dec 22. 2024

다시 서랍을 찾아서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하루가 끝나면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둔다             

저녁이 식기 전에            

나는 퇴근을 한다  

           

저녁은 서랍 안에서             

식어가고 있지만             

나는 퇴근을 한다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고

             

서랍에 넣어 둔 저녁은             

아직도 따뜻하다             

나는 퇴근을 한다             

저녁이 식기 전에

            

퇴근을 하면서             

저녁을 꺼내어            

따뜻한 한 끼를 먹는다             

하루의 끝에서

            

퇴근을 하고             

서랍에 넣어 둔 저녁을 꺼내면             

하루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나는 퇴근을 한다  

                 

퇴근을 하면서             

저녁을 꺼내어             

따뜻한 한 끼를 먹는다             

하루의 끝에서



 한강의 시에서 서랍을 생각한다.

 아침도 아닌 저녁을 옷장이나 금고도 아닌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고 끝내 꺼내어 먹는다. 하루의 마무리이고 성취이고 완성은 서랍 속 저녁으로 이루어 낸다.

 어쩜 반복되는 일상의 끝마침을 매일매일 해내고 살아가는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일지도 아님 해내야 한다는 의지와 다짐의 넋두리일지도 모르겠다.

 서랍을 생각하며 나에게는 어떤 서랍이 있었고 무엇을 담아두었는지 담아둘 것인지 나의 서랍을 꺼내어 보고 싶어졌다.


 나만의 서랍이었던 것은 책상에 붙어있던 작은 서랍들이었다.

 공부를 잘하든 일을 잘 하든 못하든 책상이 있고 없고는 사실, 문제가 아니었지만 적어도 우리 세대 이상은 책상은 무엇보다 소중한 가구이자 물품이었다. 자식들에게 으레 방을 만들어주면서 침대보다는 책상이 우선이었다. 조금 자라서 학교를 가면서부터 각자의 책상과 서랍을 가지게 된다.

 어린 시절 처음 내 소유로 가진 책상은 철제 책상이었다. 아동용 학생용 나무 책상이 나오기 전이라 아마도 있어도 너무 고가였기에 책상은 으레 어느 사무실이나 업무용으로 쓰이는 철제 책상이 많이 보급이 되었다.

 책상에는 늘 오른편에 서랍들이 두세 개 나란히 자리했고 책상을 둘러싼 고무테두리와 밑에는 미닫이로 열고 닫을 수 있는 비밀스러운 수납공간도 있었다. 맨 위쪽의 큰 서랍에는 필기구와 이런저런 용품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각각의 서랍에는 처음에의 용도와 달리 세뱃돈과 용돈을 받으면 접어서 넣어두기도 하고 일기장과 이러저러 소지품들 성적표들이 들어가 있다가 나중에는 결국 온갖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들이 들어차기 일 수였다.

 나이를 먹어 반세기가 넘어도 끝내 나는 중역실의 고색 찬란한 책상이나 서재의 멋진 원목 책상을 꿈꾸었지만 가져보진 못했다. 그리고 책상이 없어진 지가 수년이 되었다. 물론 책상이 없어졌어도 명목상의 나만 사용하는 양말과 속옷을 넣어두는 옷장 서랍은 남아있다. 이런저런 서랍들이 보이지만 나만의 서랍이라 만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진정한 의미에서 서랍은 책상이 없어지고 같이 사라져 버렸다

 책상이 없어졌다는 것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없어진 것 같아 한동안 불안한 일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책상에 앉을 일은 점점 멀어져 가지만 책상은 앉고 쓰고 읽고 일을 하고 때론 놀이를 하는 기능보다는 나만의 공간으로서 상징성이 더 컸다.

 무엇인가 당장 해결하지 못할 것들도 꼭 해야 할 일도 또 나름 소중하든 추후 필요를 생각하며 보관하여 둘 나만의 창고의 역할이 컸다.

 자질한 영수증부터 이런저런 서류들 당장 정리하지 못한 사진과 작은 소지품들은 책상 서랍에 일단 넣어두었다. 책상 위에 있는 것과 책상의 서랍에 넣어두는 것은 사뭇 사소한 차이 같지만 심리적인 방어벽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책상에 붙은 서랍은 매우 개인적이고 사적인 프라이버시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일이었기에 책상 위에 얼핏 보인 나의 비밀스러운 것들은 누군가 봐도 어쩔 수 없지만 나의 서랍을 열어 들쳐보는 것은 나름 용납하기 힘든 일이고 내가 이렇게 생각한 만큼 다른 이들도 지켜주리라는 믿음을 가진다.

 여기에 더해 사람들이 미덥지 못하면 서랍에 열쇠를 잠가두어 놓으면 그 물건과 나의 사적인 내용들은 올곳이 나만의 공간에 감추어 둘 수 있다

 그것이 나 말고 누군가가 가족이든 가까운 이가 보아도 안될 만큼의 중요하고 비밀은 없다고 하지만 스스로의 공간과 영역을 가진다는 것은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진짜 중요란 국가기밀이나 출생의 비밀 같은 서류들이라면 드라마처럼 나는 서랍에 넣어두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서랍으로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장소를 찾아 은폐하였을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나를 드러내는 일에 좀 더 관대해지게 한다. 중요하고 비밀스럽고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는 나의 일신의 모든 것들이 점점 무뎌지고 별 감흥이 떨어지게 된다. 그런 보관과 은폐의 기능보다는 책상과 서랍은 미완의 중간물들이 모이는 공간이 된다.

 해야 하지만 당장은 할 수 없는 하고 싶지 않은 미루어둔 숙제들이 쌓이는 공간이 된다.

 그러고 보면 책상과 서랍은 공부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 것 같다.

 공부는 완성이 없었고 일과 업무는 늘 진행형이었다. 책상 위와 서랍들에는 완성된 결과물보다는 늘 해야 할 것들하고 싶은 것들이 채 완결되지 못하고 굴러 다녔다.

 책상을 빼고 서랍을 정리해 비우는 일은 아마도 끝과 중단을 의미한다.

 굳이 책상이나 서랍이 없더라도 살아가는데 하등 불편이 없다고 생각했고 자유롭고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었다. 직장이든 집안에서든 실상 자리차지만 하는 천덕꾸러기 같은 것과 결별을 하니 시원섭섭했는데 차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고 허전해진다.

 무엇이든 완성과 성취해야 할 것들이 남아있는데 미적지근하게 도망쳐 나온 마음이다.


 서랍이 달린 책상이 없어서 저녁을 넣어두지도 못하고 서랍장의 양말을 헤치고 저녁을 꺼낼 수는 없어서일까 아직도 책상과 서랍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남는다.'

 서랍을 잃어버리고 난 후 깨달은 것, 그건 인생은 쉼 없이 반복과 도돌이표 같은 지루함일지라도 그것이 산다는  진실에 가까운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음은 허공에 둥둥 떠다닐 수 있지만 내 곁에 붙들어 두어야 할 그 어딘가 그 무엇에 기대야 한다는 것이다. 채 한 평이 안 되는 공간에 내 안에 있던 모든 우주가 깃들어 있던 공간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커다란 서랍을 꿈꾸어 본다. 그 서랍은 책상밑에 다소곳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일지 실체하지 않는 그 어떤 모습과 형체일지 모른다. 그래도 그서랍안으로 일상의 한숨과 실패들, 찌그레기들조차 귀하고 소중해져 두서없이 마구 넣어두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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