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 - 리시케시
인도-태국 3개월 여행 중 하루가 지났다.
4월 25일 인천-델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8시간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1시간이 더 걸려 9시간이 걸렸다.
옆자리에 앉은 친절한, 한국에서 일하다가 휴가차 고향에 들른다는 청년과 맞은편에 귀여운 아이와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처음 보는 채은이에게 아이를 맡긴다. 낯도 안 가리는 차분한 아이네. 처음으로 배워온 힌디어를 사용했다. 압까남꺄해?
드디어 도착했다. 중학교 때 무한도전 인도 편을 보고 새겨진 환상으로 평생 계획만 해오다가 드디어 명분을 찾아 이 땅을 밟았다. 행랑의 악평과는 다르게 냄새도 그리 역하지 않고 위생도 그냥저냥. 여기저기서 섞여 코로 흘러들어오는 인센스향기는 우리에게 다행히도 익숙한 것들이었고, 오줌냄새도 그냥 공중화장실 같고 낯선 시선들도 나름대로 즐길만하다. 다만 어디를 봐도 널브러져 있는 생활 쓰레기에 눈이 좀 피곤하고 40도를 웃도는 타는 듯한 더위에는 깜짝 놀랐지만 습한 더위가 아니라 이것도 견딜만하다. 약간 건식사우나 느낌. 역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오토릭샤를 기가 막히게 흥정하고(그랬다고 생각이 들고) 점찍어둔 식당으로 저녁식사를 갔다.
메뉴는 Dosa와 Thali. 도사는 남부식 크레이프 같은 것인데 안쪽에는 감자가 발려져 있어 약간 쫀득한 식감이 있다. 이 크레이프를 여러 가지의 소스에 찍어먹는 음식. 눈이 번쩍 떠지는 맛은 아니고 한국 정서와 잘 맞는 듯함. 탈리는 인도식 정식 같은 음식이다. 밥과 여러 가지 소스, 반찬과 때에 따라 짜파티(플랫브래드)가 같이 나온다.
뭐가 엄청 많다. 무언가가 이동할 때 사용하는 것이 ‘다리’라면 이곳은 다리의 나라다.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사람, 개, 원숭이, 새, 소. 소는 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내며 쓰레기통을 뒤적거리고 있고 들개들은 시체마냥 늘어진 채 숨을 껄떡이고 있다. 나무도 새도 심지어 바퀴x레도, 생명이 있는 것은 여기로 다 모이는 듯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바로 Old Delhi 역으로 왔다.
현재시각 8시 30분, 우리는 10시 25분 리시케시로 가는 기차를 기다린다. 두 시간 남짓 남았으니 퉁퉁 부운 다리를 주무르며 기다려보자. 저 가족은 여기 사는 건가? 아버지가 퇴근하고 오면 선풍기아래서 하루를 마무리하나 보다. 혼돈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과 그 옆을 지나치는 빳빳한 새 옷을 입은 아이들. 온갖 상상과 억측을 난무해 본다. 열차가 도착하고 그들은 모두 우리와 같은 기차에 올랐다. ㅎ
올드델리(Old Delhi) ->라이왈라(Raiwala)
710IDR / 1명
인도 철도청 공식 사이트 ixigo에서 예약했다.
우리가 예약한 것은 2등급 침대칸이다. 예약 내역을 확인하던 도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내 티켓에는 CNF, 채은의 티켓에는 RAC라 적혀있고 좌석도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RAC가 무엇인고 설명을 읽어보니 ’ 침대의 반이 할당된 좌석‘이란다. 침대의 반이라니 무슨 말이지. 우선 옆자리에 앉아 동태를 살핀다. 윗 침대칸은 자리가 빈 것 같으니 누워있다가 사람이 오면 내 좌석으로 가라 물어야겠다.
그리고 약 30분 뒤 서글서글한 인상의 젊은 남자가 내 좌석을 가리키며 말한다.
“11번. 여기 내 자리야 “
/? 티켓 보여줄 수 있어? 내 여자친구자리도 11번인데
“아 RAC네. 이거 침대 반반씩 나눠 타고 가는 거야”
아뿔싸 정말 말 그대로 침대의 반이 할당된 것이구나. 내 좌석은 침대 한 칸이니 거기로 가는 것이 어떻냐는 제안에 흔쾌히 자리를 내어주었다. 오늘 밤은 다시 쭈그린 채로 잠에 들어야겠다.
앞 좌석에 있는 가족들은 다른 모두들처럼 식사를 마치고 이부자리를 준비하고 있고, 나는 아직 채은이 옆을 지키고 있다.
“내 옆칸도 자리 비는 것 같은데 여기 쓸래?”
옆 좌석의 그 남자가 물어본다. 다행이다. 집 떠난 지 20시간이 넘게 지난 지금 이 자세로 8시간을 더 이동하는 건 무리다. 앞 좌석 꼬맹이도, 아버지도 빈 좌석 찾는 일을 도와줬다. 감사한 마음으로 이부자리를 폈다.
/근데 나는 여자친구랑 티켓을 동시에 예약했는데 왜 누구는 침대 반칸이고 그래?
“이게 원래 이래”
/그러니까 순전히 운빨이라는 거지? 돈도 똑같이 냈는데, 좌석도 멀리 떨어져 있고.
“응. 예약하는 타이밍에 따라 이렇더라고. “
/그럼 내가 누워있다가 좌석 예약한 사람이 와서 깨우겠네?
“아니 그러진 않고 아마 다른데 찾아서 갈 거야.”
도대체 이곳의 열차 시스템은 이해가 안 간다. 승무원도 티켓을 확인할 때 좌석이 다른 걸 신경도 안 쓰는 듯하다. 모두가 모두를 위해 희생하고 또 모두가 받아들이는 그런 문화. 정말 다르다. 그 때문인지 어딘가 모르게 이들에게선 특유의 여유가 느껴진다. 서두르지 않고 성내지 않아도 다 해결될 것을 알고 행동하는 낙관적 태도. 앞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순전히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 많을 텐데 참 즐거운 일이다. 건강한 신체로 아직은 말랑한 마음일 때 사랑하는 이와 이곳에 온 일은 아무래도 참 잘한 일이다. 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