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
시작은 분노했으나 끝은 창대했다.
हिंदी : 압 께쎄 핸? [How are you?]
대한민국의 공공서비스는 정말이지 놀라운 수준이다. 오래 머물게 되면 자연스레 익숙해지는데 가끔씩 해외에서 관공서업무를 볼 때마다 감사함을 느낀다.
오후 2시, 마날리에서 구매했던 비상용 겨울옷을 사용할 일이 없게 되어 며칠간 쌓였던 물건과 함께 한국으로 보내기로 했다. 만만의 준비로 포장방법과 가격, 택배 집하시간을 알아보고 다녀왔다.
첫 번째 우체국은 주소가 잘못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니 아저씨는 길 건너로 가라 하고 아줌마는 반대쪽으로 가야 한다는 중구남방의 대답만 들었다. 결국 주변 다른 지점에 가기로 한 우리는 급하게 릭샤를 잡아타 그곳으로 이동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 어려운가 보다.
두 번째 우체국은 소량우편만 취급하는 곳이라고 한다. 조금 더 먼 곳의 우체국본사로 가야 한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구글 후기가 많이 달린 지점인데 모두 심각한 수준의 욕설을 써놨다.
세 번째 우체국에 도착. 비가 왕창 내리고 벌써 오후 4시가 다 되어간다. 여권사본을 부착해야 해서 비를 뚫고 30분을 달려 인쇄소에 다녀오고, ATM이 고장나 은행에 다녀와 약 1시간 만에 택배를 부쳤다. 다행히 가격은 다른 지점보다 싸네(이것도 이상함).
매우 늦은 점심을 먹고, 역시나 네츄럴아이스크림가게를 지나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멀리 목적지가 보인다. 입장 마감시간 1분을 남겨두고 급하게 릭샤에서 내렸다.
지난 2005년에 완공된 세계 최대 규모의 힌두교 성지 악샤르담(Akshardham)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다고 알려진 스와미나라얀(Swaminarayan 힌두교 종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사원. 이곳은 성지이니만큼 보안이 엄격하다. 보조배터리를 포함한 모든 전자기기와 혹시나 위협이 될 만한 물건을 라이터 수준에서 반입금지하고 있다. 덕분에 어떠한 마음의 소음 없이 여유로이 사원을 감상했다. 같은 이유로 내부 사진은 없으니 구글에서 조금 따와보겠습니다.
회갈색의 정교한 조형물을 지나 한참을 걸어 입구에 도착하면 거대한 사원과 하늘을 도는 비둘기 떼, 수많은 인파와 저무는 해가 오묘하게 조립되어 엄청난 경관을 만든다. 입장 마감시간인 6:30분에 입장하면 여유롭게 사원을 둘러보다 하나 둘 조명이 켜지며 오후 8시에 시작하는 워터쇼를 감상하기에 그 시간이 딱 알맞다. 그리고 정시에 칼같이 입구를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여유롭게 사정을 봐주니 가능하면 이 시간에 오는 것이 좋겠다.
신발을 벗고 메인 입구로 들어가면 마주하는 장경이다. 가운데에 보이는 금색 아저씨는 신이 아니라 구루(Guru 현자)다. 꾸준한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은 현자를 신보다도 높은 지위로 보는 힌두교는 그들의 신화에서는 심지어 한 분노한 현자가 도박과 유혹의 신을 벌하는 장면을 그린다. 시바나 락슈미 같은 인도의 신은 우주의 법칙인 다르마(Dharma 도)를 뛰어넘는 존재가 아니라 그 법칙을 따르는 또 하나의 물질적인 개체로 여겨진다. 즉 깨달은 자는 다르마를 따르는 자이고 신조차도 그들에게 덤빌 수 없다. 그런 사상을 증명하듯 이 아저씨금상 주변으로 예술과 학문의 여신 사라스와티(Saraswati)나 재산과 행운의 신 가네샤(Ganesh) 같은 인도의 인기 신들의 조각상이 둘러져 있다.
출구로 나가 남쪽으로 향하면 푸드코트와 기념품 가게가 있다. 저렴하고 괜찮은 퀄리티의 물건이 많아 모자와 티셔츠, 치약과 폼클렌징을 하나씩 구매했다.
저녁 8시가 되면 사원의 북쪽 분수대에서 대단한 규모의 워터쇼가 시작된다.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각 어트렉션은 티켓을 따로 구매해야 한다. 박물관과 전시관 등 몇 개의 볼거리가 있다. 힌두교 사원이지만 놀이동산처럼 이용되는 곳.
워터쇼는 레이저와 물, 거대한 빔프로젝터로 건물 외벽에 만드는 애니메이션으로 이야기를 보여준다. 힌두교의 각 원소 물, 불, 바람, 에테르(아카샤=공간, 잠재의식)를 표상한 괴물이 나타나고 네 명의 아이들(실제 아이들)이 마법의 힘으로 물리치는 이야기다.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고 노래도 귀엽고 분수와 빛의 표현도 상당하다. 우체국에 시달린 오늘, 하루 끝을 황홀경으로 마무리했다. 극적인 하루.
오늘 아침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호스트가 선물을 줬다. 채은이 말로는 굉장히 좋은 세안 스크럽이라는데 포장지부터 그런 것 같아 보인다.
다시 떠오르는 여름 해에 외출하자마자 이온음료를 샀다.
역시 공공서비스는 믿는 게 아니었는데.. 1시간 걸리는 거리를 2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버스는 안 오고 우버기사는 웃돈을 요구하고 티켓도 잘못준다. 어쨌든 여차저차해서 어제랑 똑같이 오후 4시에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사진의 왼쪽의 것이 여성용 티켓이고 오른쪽이 남성용이다.
일본식 샐러드 볼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는데 지도를 보니 웬걸 한식당이 모여있는 동네였다. 배달앱에서 높은 평점을 받은 한식당을 몇 개 봤는데 여기 모여있었구나. 이건 못 참지.
압도적인 비주얼로 이미 증명을 마친 비빔밥과 된장찌개다. 김치가 놀랍게도 한국맛이 나고 놀랍게도 두 음식 모두 진짜 한국의 맛이 난다. 혹시나 해서 사장님이 한국인인지 물었는데 아니란다. 정말 연구를 많이 한 모양이다.
왜인지 동양인이 많이 보이는 동네다. 티벳과 중국계 사람들인 것 같다. 한식당이 많은 이유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의 사람들이 많은 탓인가 보다. 거리가 깨끗하고 공원이 관리되어 있다.
약간 일본 같다. 베트남 같기도 하고. 직각의 깔끔한 외관의 건물들과 화분, 야자나무가 아롱아롱한 느낌을 준다.
찬디가르에 도착하자마자 들렀던 커피 체인이 이 동네에도 있더라. 보통의 커피에 두 배에 달하는 가격이지만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오랜만에 맛있는 커피를 마심.
주변에 있는 나즈팟 나가르(Najpat Nagar Market) 시장에 다녀왔다. 갑자기 찾아본 시장이지만 사람들 후기에 델리에서 가장 예쁜 옷을 파는 시장이라 해서 고민 없이 갔다. 마감 1시간을 남기고 이것저것 사고 싶던 물건들을 샀다. 쩌는 바지도 두장 구매하고 넉넉한 티셔츠도 한 장 샀다.
내일은 다시 떠나는 날이다. 이제는 능숙하게 짐을 꾸리고 잠자리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