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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방인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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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Jan 22. 2024






나는 반도체 생산 공정 3라인에 배정되었다. 현장 실습생이었기 때문에 3개월 동안은 사수를 옆에 두고 일을 배워야 했다. 사실 이것은 모든 회사의 인턴들이 거치는 과정이기도 했다.



당시 나의 사수는 말이 없었다. 푸른 동해 바다를 끼고 있던 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그저 묵묵히 일만 하는 무뚝뚝한 사람이었고,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어려 보이는 얼굴과 다르게 나이가 많은 이유도 있었다. 더불어 누구와 말을 섞는 것을 귀찮아하는 것도 있었다. 그는 사감과 친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감이라는 사람과는 전혀 반대 성향의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몸에 문신이 있었다. 그러나 볼썽사나운 그림은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여러모로 말이 없었기 때문에 궁금한 것이 있어도 물어보기 어려웠다. 그는 주임과 반장등 생산 라인의 관리자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관리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사람들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그는 왠지 모르게 그런 관심에 무덤덤했다.  



나는 반도체 생산공정 3라인에 속해있었다. 거기서 내가 배워야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푸른 LCD 판에 프린터를 찍어내는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정교한 기계를 다루며 LCD 규격에 맞게 짜인 틀에 정확한 시간과 타이밍에 LCD 판을 넣고 빼내는 일이었다. 보기에는 쉬어 보였지만 고도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다.



처음 접하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2주 정도는 소요될 줄 알았는데, 한 달이 넘어가도 일이 늘지를 않았다. 기계가 프린터를 찍어내기 전 LCD판을 넣고 빼는 순간을 포착하기가 쉽지 았았다. 10분이라는 쉬는 시간이 있었지만 50분여의 시간 동안 방진복을 입은 상태에서 쉬지 않고 반복적으로 그러한 작업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작업의 중간중간마다 항상 기계에 끈적끈적하고 불투명한 용액을 부어주어야 했다. 그래야 LCD 판에 작은 점들의 프린터들이 찍혔다.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용액에서 퍼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또한 오랜 시간 이어지는 작업으로 인해서 땀이 났고 눈이 따끔거렸다.



작업을 하는 동안 눈이 아팠고 코를 찌르는 냄새 때문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러던 중 프린터 된 LCD 판을 빼야 하는 상황에서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차 싶어 재빨리 LCD판을 빼내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하마터면 손가락이 잘려나갈 뻔했다. 다행히도 다치지는 않았지만 미처 빼내지 못한 LCD 판은 망가졌고, 기계는 멈춰졌다.  



"아... 이 새끼가 진짜 몇 번을 가르쳐 줘도 못하네."

"너 손가락 잘리고 싶어서 환장했냐.?"

"멀쩡한 기계는 왜 망가뜨리고 지랄이야."



조용하던 사수는 반복되는 나의 실수에 화가 난 모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기계가 멈춘 상황을 보고 뛰어온 김주임은 나의 머리를 때리며 혼을 내기 시작했다.



"어휴 이런 꼴통 새끼를 봤나."

"야이 새끼야 기계 고장 나서 생산량 펑크 나면 네가 다 책임질 거야.?!"



옆에서 작업 중이었던 다른 라인의 사람들은 모두 우리 라인을 쳐다봤다. 육체적인 피로도와 더불어 열악한 작업장 환경으로 인해서 일어난 사고였지만 누구도 공장 시스템을 탓하기보다는 현장실습생의 실수에만 혼을 냈고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보내왔다.



그런 모든 상황이 억울했고 서러웠다.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어찌 되었든 쉬는 시간이 되었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라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정비팀이 급하게 기계를 점검하러 생산라인에 들어왔다. 기계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사수는 조용히 나를 불러 공장 옥상 건물로 불러냈다. 항상 출근 때마다 계단을 이용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처음 타보았다. 공장 안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는 상당히 넓었다. 하지만 심하게 흔들렸으며 심한 소음을 일으켰다. 왠지 오늘 아니면 내일이라도 큰 사고가 날 것 같은 불안한 승강기였다.



사수가 옥상으로 올라가자며 불러낸 후 아무 말이 없길래 불안했다. 혹시나 실수 때문에 나를 때리거나 꾸짖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승강기 문이 열리자 새 하얀 눈으로 뒤덮인 옥상의 광경이 펼쳐졌다. 사수는 입에 담배를 물어가며 불을 붙였다. 그러더니 나에게도 담배 한 개비를 건네주며 따뜻한 캔커피를 쥐어주었다.



"마셔라."

"몸도 마음도 좀 괜찮아질 거야."

"많이 힘들지.?"

"처음 접하는 일이라 많이 힘들 거야."



마음속 불안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사수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미안함이 생겨났다. 나는 그저 열악한 환경에서 열심히 하려고 했을 뿐인데 개인에게 모든 잘못을 탓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사수에게는 표현하지 못했다. 사수는 어린 나이에 공장에 들어와서 일하는 나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나도 처음에는 많이 서툴러서, 손 여기저기 많이 다쳤어."

"그 기계 안에 있는 틀에 LCD 판을 넣는 것이 쉽지 않더라."

"그렇게 이래저래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새 기계보다 손과 눈이 빨라지는 거야."

"그런데 있잖아.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거든 근데 신기한 게 뭔지 아니.?"

"여기서 하는 공정이랑 내 인생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거야."

"부모님이나 어른 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그러니까 성공한 인생이라는 틀 안에 나를 맞춰서 넣으려고 했어."

"그런데 그게 안되니까, 나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라고 혼내기만 하더라."

"그런 어른들을 나는 신뢰할 수 없었고, 그들이 싫어하는 것만 찾아다니는 인생을 살았지."

"그렇게 나는 여기 공장까지 오게 된 거야."

"근데, 너는 나이도 어린데 어떻게 벌써 이런 데를 들어와서 일할 생각을 하게 된 거야.?"



10여 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사수의 물음에 대답했다.


 

"똑같아요, 저도 어른들의 간섭이 싫어서 그냥 여기로 왔어요."



사수는 나의 대답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으로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느새 공감대를 형성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옥상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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