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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방인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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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Jan 15. 2024

서열 문화






회사 담당자 인솔하에 우리는 공장이 아닌 낯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간 곳에는 많은 직원들이 있었다. 그리고 맨 앞줄에 의자가 있었고, 각 부서의 장들과 회사의 이사진들이 앉아 있었다. 또한 맨 앞 단상의 중앙에는 의자 한 개가 놓여 있었다. 



"회장님 나오십니다."



단상 위 발언대에 있던 직원의 발언과 동시에 머리가 희끗희끗 한 안경 쓴 노인이 여비서와 나란히 단상의 가운데로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이것이 회사의 아침조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조회에는 신입사원 소개, 그리고 퇴사자 인사와 더불어 전체 직원들의 혁신 구호가 이어졌다. 그리고 연말이라 생산관련된 내용들이 주로 이루어졌다. 



아침 조회가 끝나갈 때 즈음 참석했던 부서장들과 이사들은 회장의 무서운 피드백에 시달려야 했다. 사실 대기업에 비해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의 경우 약간의 생산성 저하나 실적 부진으로도 기업의 부도와 바로 직결되기 때문에 피드백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그중에서도 영업팀에게는 회장의 무서운 피드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어이, 한 부장 자네 나와 이 회사에 얼마나 있었지.?"


"아 네. 30년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그런가.?" "자네도 알겠지만 우리 회사는 아직도 성장을 꾸준히 하고 있다네."

"그런데 성장에 비해서 실적이 부진한 이유가 무엇인 것 같나..?"


"글쎄요. 아직까지는... 실적 부진에 대한 원인을 찾고 있으니 마무리되면 보고서를 올리겠습니다."


"자네와 내가 오랜 시간을 함께했었지." 

"그러나 이렇게 실적 부진이 계속 이어진다면 자네와 영업팀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네."


"나의 생각으로는 우리 회사는 공장에 불이 꺼지지 않을 정도로 기계가 계속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무엇이 문제인 것 같은가."


"죄송합니다. 하지만 원인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영업팀 부장의 답변에 회장은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렇게 1분여의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회장은 영업팀 부장의 코앞까지 다가온 후 걸음을 멈춰 섰다.



"나는 이 회사가 철옹성처럼 무너지지 않도록 오랜 시간 부지런히 노력했네." 

"그러기 위해서 자네에게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높은 급여를 준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직도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회장은 영업팀 부장의 뺨을 세차게 때리기 시작하였다. 일방적인 폭행은 몇 분 동안 멈추지 않았다. 어른이 어른을 때리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의 어느 누구도 회장을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올려다볼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서열화 되어버린 사회에 익숙해진 탓이기도 하였다. 처음 있던 일이 아니라는 듯 공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표정은 무덤덤했다. 



"이런 개새끼가, 원인을 파악 못했다고.?!"

"원인을 모르면 만들어서라도 와야 할 것 아니야.?" 

"어이 한상식이 오랜 시간 같이 밥 좀 먹었다고 내가 회장으로도 안 보이냐.?" 


"아... 아닙니다.. 회장님.!"

"오늘 퇴근 전까지 원인 파악해서 보고서 올리겠습니다."



회장은 화가 가라앉은 듯 한풀 꺾인 듯한 숨을 몰아 쉬며 비서와 함께 건물을 빠져나갔다. 한 부장의 양쪽 뺨은 울그락 불그락 부어올라있었다. 영업팀 부서원들은 쓰러져 있는 한 부장을 부축하며 건물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저마다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상하리 만큼 공기는 차갑고 무거웠다. 아침 조회가 끝난 후 우리는 저마다 각 부서로 이동하였다. 


생산 라인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는 중에 누군가가 나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아니나 다를까 김주임이었다. 



"어이 실습생들 빨리 안 뛰어.?!"

"공정 들어가기 전에 일찍 가서 준비해야 될 거 아니야.?"

"어쭈 이 새끼 나 쳐다보는 게 한 대 치겠다.?"

"한 대 쳐보든지." "자, 여기 한 대 때려봐라. 엉.?"



옆에 있던 박 반장이 나와 김주임을 멀찌감치 떨어뜨렸다.



"야, 김주임 쓸데없이 애를 왜 괴롭혀."



박반장이 말리지 않았다면 힘 있게 쥐고 있던 주먹이 김주임의 얼굴에 날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박반장의 중재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주임은 투명한 안경에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였고 까무잡잡한 피부와 마른 체형을 가진 사람이었다.



김주임은 직원들에게는 크게 뭐라고 하지 않으나 유독 현장 실습생들만 괴롭히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박반장은 곰과 같은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인상은 편해 보이기는 했지만 가늘고 얇게 뜬 눈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공정에 필요한 방진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조별로 대기하였다. 대기 중 사람들의 대화는 온통 회장에게 깨진 한 부장 이야기뿐이었다. 한쪽에서는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주식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처음 본 광경에 깜짝 놀란 것 같았다. 하지만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고압으로 쏴대는 바람을 맞은 후 기계가 멈추지 않는 새하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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