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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방인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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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Feb 19. 2024

투쟁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공장에 출근하였다.  


정들었던 A팀 식구들과 헤어지고 또 다른 B팀에 합류하고 보니 모두 낯선 사람들이라 말 붙이기가 어려웠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다시 새롭게 관계를 맺으려고 하니 어려움이 있었다. 어찌 되었든 여러 가지 어려움은 있겠지만 빠른 시일 내에 적응해야만 했다.



자재팀은 방진복 대신에 회사 유니폼을 입고 일을 했다. 신기하게도 B팀의 주임은 자재부에 속해 있었다. 그는 A팀의 주임과 다르게 자재부에 속해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인지 일을 하는 내내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자재팀의 또 다른 인원은 전라도가 고향인 분이었다. 그는 공장에 오기 전 권투선수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나 틈이 날 때마다 이주임은 전라도 출신의 권투선수였던 해준형이랑 항상 미트 연습을 했었다.



어느 날 이주임은 사무실에서 이 과장에게 혼이 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반도체 공정 중 생산부와 마찰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 과장과 면담 후 이주임은 씩씩거리며 자재실에 들어왔다. 애꿎은 목장갑만 책상에 던져 버린 후 의자에 앉았다.



"아니 씨팔 생산부 새끼들이 말을 안 들어서 물량을 못 뺀 걸 왜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이 과장 저 새끼 언제 한번 기회만 되면 아주 반쯤 죽여놔야지."



자재실 내부에는 차가운 공기가 가득했다. 어찌 되었든 나는 해준형과 같이 팔레트에 실려져 들어온 LCD 판의 비닐을 벗기고 작은 수레에 실어서 생산부 라인내에 넣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같은 시각, 공장 뒤편에는 많은 양의 미공정 LCD 물량이 쌓여있었다. 그럼에도 화물차와 지게차는 멈추지 않고 새로운 물량들을 들여놓고 있었다. 자재부에서 소진한 빈 팔레트는 다시 창고로 내린 후 우리는 창고에 있던 LCD 팔레트를 핸드 작기를 이용하여 일일이 엘리베이터로 운반해야 했다.  



자재부에는 사람이 3명밖에 없었다. 턱없이 부족한 인력인데도 그 많은 물량을 생산부에 넣어주어야 했다. 가뜩이나 오늘은 이주임이 저기압이라 함께 일하지 않고 빈둥빈둥 책상에서 놀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아직 얼마 되지 않아서 서툴게 일하던 나를 보면서 한마디 거들고 있었다.  



"씨발럼.. 느려터져 가지고 저런 새끼를 왜 우리 자재부에 보낸 거야.!!"

"야이 새끼야.!! 빨리빨리 안 해.??"



많은 물량을 둘이서 하려니 힘들었다. 그러나 일을 함께 거들지도 않고 옆에서 세차게 욕만 해대는 이주임이 못마땅하였다. 그런 눈치를 알아챈 해준형이 조용히 나를 다독였다.



"이주임 원래 저렇잖아. 네가 이해해. 오늘은 좀 힘들지만 잘 버티자."

"곧 있으면 점심시간도 오고, 쉬는 시간도 있으니까 힘내자."



해준형의 말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이주임의 괴롭힘은 끝나지 않고 지속되었다.



"야이 개새끼야, 너의 부모는 널 낳고 미역국은 드셨니.?"

"야이 병신 같은 놈아 느려터져서는 빨리빨리 못하냐.?"



결국 나는 이주임의 지속된 괴롭힘에 끝내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아니 그러면 함께 거들어 주면 되지. 왜 욕을 하고 그래요.?"

"씨팔, 더러워서 못해먹겠네."



"뭐.?!" "씨팔.?!"

"아놔 이 새끼 안 되겠네."

"야 인마 저 새끼 팔 잡아라."



갑자기 옆에서 함께 일하던 해준형이 나의 양팔을 잡고 사무실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사무실 구석진 곳은 공장 내에 CCTV가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아니, 형 왜 이래요.?"

"팔 좀 놔줘요."



"동생아 미안하다."



구석진 곳으로 몰아넣더니 이주임은 주먹으로 순식간에 나의 가슴과 배를 연거푸 때리기 시작하였다. 1분여간 구타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처음 겪어본 일방적인 구타에 넋이 나가있었지만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결국 이주임이 먼저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아우 힘들어." "야, 팔 풀어줘라."

"지독한 새끼네. 눈에 눈물 한 방울 안 나오고 살려달라는 말도 안 하는구나."

"너 이 새끼 한 번만 더 개겨봐라. 그때는 진짜로 죽인다."

"아주 독종인 새끼구만."



구타로 인한 통증보다 억울한 마음이 컸다. 마음 같아서는 함께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30-40대의 남자들의 완력을 10대의 어린 내가 이겨내기란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싸움과 작은 투쟁들을 시작해야 했다.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픈 가슴과 배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눈물을 꾹 참고 다음에는 기필코 몇십 배로 갚아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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