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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방인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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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Feb 12. 2024

불안한 인생






“너 다음 주부터 B팀으로 출근해라.”

“그리고… 생산공정보다는 자재팀에서 일해보자.”



과장의 말에 당황스러웠다. 반년만 더 버티면 실습생의 신분에서 벗어날 텐데, 감옥 같은 기숙사를 떠난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이라니.



정규직 사원이라면 부당한 인사이동에 대한 구제신청이라도 할 텐데… 실습생의 신분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지내야 하는 부담감이 앞섰다. 특히나 B팀의 자재팀은 신규직원들의 무덤으로 악명이 높았다. 자재부에서 일하는 신입사원이나 실습생은 일주일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또한 해외에서 폭주한 제품 주문 건으로 인해서 협력업체였던 푸른 제국이 요구한 LCD 주문량은 늘어만 갔다. 따라서 다음 주부터 주야간 15일 연속근무를 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더불어 대기업의 협력업체였던 중소기업의 특성상 그들이 원하는 주문 물량에 맞춰서 생산 공정을 진행해야만 했다.



만약 그들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면 하청 물량을 주지 않거나 당장 대금 결제일이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대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건 공장이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고, 당장 직원들에게 일한 만큼의 대가를 줄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물량이 많아서 고생하는 것은 오로지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몫이었고, 대금이 들어오지 않는 회사는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회장은 푸른 제국의 부당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으로 수용을 해야만 했다. 반대로 회장의 뜻과 다르게 대기업의 무조건적인 횡포에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아침… 생산 공정 사무실

상부 지시로 내려온 막대한 양의 주문 물량에 박반장은 거의 울먹이듯이 이 과장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과장님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 많은 물량을 한 달 동안 어떻게 다 처리합니까.?”



“상부 지시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물량이 많으면 잔업을 두 배 세배로 늘려서라도 쥐어짜야지.”

“달리 방법이 없다면 보름 주간 그리고 나머지 보름을 야간으로 돌려야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현장실습생들도 잔업에 같이 투입시키고.”



“네.?!” “아니 어떻게 야간을 보름을 돌립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그렇게 쥐어짜서 쥐꼬리 월급 더 올려준답니까.?”



박반장의 하소연을 한참을 듣고 있던 이 과장이 입을 열었다.



“야이 새끼야.!” “자꾸 징징거릴래.?!”

“야, 박반장 너도 회사 다닐 만큼 다녔으면 알 거 아니야.?”

“우리는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

“이게 다 상부 지시니까 따르는 거 아니냐.?”

“직원들 동요되지 않게 잘 추스르고, 어떻게 이번 한 달만 잘 버텨보자.”

“응.?” “부탁 좀 할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박 반장은 체념하고 사물실을 나왔다. 아침 조회시간, A팀 직원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박반장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미 두 배가 넘는 잔업시간과 15일 연속으로 야간 근무를 한다는 소문이 퍼진 뒤였다.



“자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번 한 달은 조금 힘들 수 있어.”

“그래도 회사가 살아야 우리가 사는 거니까.”

“다들 힘내고, 일한 만큼 회사에서도 반드시 챙겨줄 거니까.”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그동안 국가에서 정한 교육과정을 거쳐온 직원들은 특유의 집단사고에 익숙해져서인지 누구 하나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상부의 지시와 희생을 강요하는 조직에 굴복할 뿐이었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나는 한 달 동안 자재팀에서 15일 주간 근무와 15일 야간 근무를 하게 되었다. 사회 초년생이었지만 15일 밤을 새우며 일을 한다는 것은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어두워진 밤 찬란한 빛이 반짝이는 공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지금이라도 지옥 같은 여기를 뛰쳐나와 집으로 간다고 한들 누구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단지 취업과 여행을 빙자한 자유를 포기해야 했다. 집에 돌아가면 따뜻한 집과 부모님 그리고 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떠난 여정에 집에서 걸려오는 전화도 받지 않고 괜찮다는 문자만 보냈기에. 다시 돌아간다면 분명 무슨 일이 있었냐며 하나부터 열까지 집요하게 물어볼 것이 뻔했다. 분명 그러면서 나를 비웃을 지도 몰라. 잘난 형과 또 비교당하며 살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이상 영영 어른들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공장에 들어서며 무너진 마음을 다시 한번 붙잡았다.

익숙해진 사람들에서 다시 새로운 사람들로… 익숙하다고 느꼈던 곳에서 다시 낯선 곳으로 가게 된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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