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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Feb 26. 2024

사고






자재부에서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되었을 무렵 뜻밖의 사고가 발생했다. 자재부는 부서 특성상 생산라인 외부를 오가는 일이 잦았다. 특히 미공정 LCD를 싣고 오기 위해서 승강기를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팔레트 하나에 실어지는 작은 LCD판의 수량은 1000개 넘는 것이 보통이었고, 크고 무게가 있는 것은 500개가 조금 넘게 실렸다. 그것을 자재부 인원들이 작키를 이용하여 수동으로 운반하여 승강기에 실어서 생산라인에 보내야 했다.



작은 물량이더라도 팔레트가 10개가 넘어가면 사람인지라 지치기 마련이다. 따라서 물량을 실을 때도 처음과 달리 나중에는 승강이 내부에 거의 던지다시피 밀어 넣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인지 승강이 내부 그리고 외부에서는 물량이 실어지면서 일어나는 소음이 심했다. 소음은 마치 수류탄이 폭발하는 것 같은 큰 굉음과 같았다. 



승강이 사고가 일어나기 전날 나는 이주임과 함께 잔업 후 다시 재사용할 LCD를 승강기에 실어서 생산라인에 보내는 업무를 맡았다. 



잔업을 하는 공간은 5층이었고, 거기에는 검은색 비닐에 덮여있는 팔레트가 많았다. 그중에서 우리는 5-6개의 팔레트를 실어서 3층 생산공정에 보내야 했다. 생산 공정 중 발생한 불량품들을 다시 쓰기 위해 잔업 후에 모아놓은 물량이라 얼마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상상이상으로 많았다. 



일하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팔레트를 한 두 개씩 나누어서 옮기는 건 시간 낭비였다. 어쩔 수 없이 이주임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팔레트를 승강이에 최대한 많이 실었는데, 거의 테트리스 수준으로 쌓아서 실어 넣었다. 

 


그렇게 하고 보니 정작 이주임과 내가 승강기를 타기 어려워진 웃픈 상황이 되고 말았다. 결국 이주임은 왼편 구석에 나는 오른편 구석으로 끼어서 승강이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어렵게 승강기 타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문제는 이동 중에 발생하였다. 이동 중 갑자기 밖에서 '쾅'하는 소리가 났고 승강기는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어!? 이런 씨팔 뭐야." "승강기가 고장 난 거야 뭐야.?"



승강기가 멈추자 이주임은 당황했다. 당황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승강기가 멈춤과 동시에 심하게 흔들렸다. 이주임은 다급하게 응급호출 버튼을 눌러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응급호출 버튼을 여러 번 눌러도 관리실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아 이 새끼들 장난하나.?"

"아니 이럴 거면 승강이에 응급호출 버튼을 왜 많들어 놓은 거야.?!"

"야 인마 너 움직이지 마.!" "일단 우리 움직이지 말고 벽에 딱 붙어있자."



심하게 흔들리는 승강기 때문에 이주임은 겁을 잔뜩 먹은 모양이었다. 뭐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이라면 누구든 간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응급호출 버튼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이주임은 사무실에 있는 해준형에게 핸드폰으로 연락을 취했다.



"해준이가 전화를 받아야 할 텐데."

"어.! 해준이냐.? 야 우리 승강기에 갇혔다."

"근데 응급호출버튼 눌러도 응답도 없고, 관리실에 연락 좀 해주라."

"생산 B동이고 5층에서 내려오다가 승강기 멈춘 것 같아."

"급하니까 빨리 좀 오라고 해줘."



전화 통화를 마친 후 어느 정도 마음에 안정이 찾아온 이주임은 안색이 한결 나아진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관리실 직원이 오는 데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러자 이주임은 심심했는지 나에게 농담을 건네었다. 



"아 여우 같은 마누라도 있고, 토끼 같은 딸내미도 있는데."

"딸린 식구가 있어서, 승강기에서 사고로 죽으면 억울해서 눈도 못 감겠다."

"너 여자친구는 있냐.?"



"여자친구요...? 아니요 없는데요."



"아이고 넌 무슨 재미로 사냐.?" "응.?"

"욕먹는 재미냐.?" "젊을 부지런히 연애도 하고 해야지."

"여기서 죽어라고 일하면 뭐라도 나오는 줄 알아.?"

"너 정규 사원으로 전환되는 거 얼마 안 남았을 텐데."

"여기 오래 있어서 좋을 거 없다."



"아... 네."



항상 나를 보며 비웃고 무시하며 욕만 해대던 이주임의 뜻밖의 태도에 조금 어리둥절했다. 어찌 되었든 농담인 듯 진담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불안하고 지루한 시간을 버텨야 했다. 



30분여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승강기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승강기가 열리고 보니 사람 한 명이 겨우 기어서 나올 정도의 공간만 보였다. 그나마도 다행이었다. 만약 벽에 완전히 막혀 있는 상태라면 119 구조대가 올 때까지 몇 시간을 더 승강기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 시간 동안 승강기가 갑자기 추락할지 아니면 버티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 누구 있습니까.?"

"이주임 님 계십니까.?"



관리실 직원과 해준형의 목소리였다. 모든 걸 포기하고 있던 이주임과 나는 희망 섞인 목소리로 울먹이며 대답하였다. 



"어, 승강기 안에 있어."

"야 빨리 좀 오지, 얼른 좀 꺼내줘."



"그 저희가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고 문이 열린 공간으로 나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주임과 나는 기어서 겨우 승강기를 나올 수 있었다. 자칫 승강기 사고로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 씨팔 병신 같은 회사 놈들."

"도대체 승강기 좀 바꿔달라고 한지가 언제인데."

"진짜 사람 몇 명이 죽어봐야, 정신 좀 차리려나."



"에휴 그러니까요."



"야 그래도 니 덕분에 살았다."

"저 녀석도 꽤나 놀란 모양인데."

"오늘은 적당히 일하고 그냥 쉬자."



오늘은 사고 덕분 인지 조금 쉬고 난 후 바로 퇴근하였다. 아무래도 생산 B동 엘리베이터에 큰 결함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사고가 있은 후에도 별다른 시정조치나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직원들은 큰 위험에 노출된 상태로 일을 계속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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