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팔구년생곰작가 Mar 04. 2024

친구의 연인






B팀의 자재부로 온 지도 벌써 한 달 여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샌가 나는 B팀의 사람들과 꽤 친해져 있었다. 하지만 나의 현재 상황과는 다르게 또다시 A팀으로 인사이동이 이루어졌다. 몇 달 걸릴 줄만 알았던 원청의 주문 물량을 놀랍게도 한 달 만에 끝냈기 때문이다.



한 달 전 B팀으로 인사이동이 정해졌을 때 박반장은 A팀으로 돌아오게 되면 생산라인으로 복귀시켜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가 했던 약속은 거짓이었다. A팀으로 복귀했을 때 나는 다시 자재부로 와야 했다. A팀 자재부의 3명 중 한 명이 급하게 퇴사를 한 모양이었다. A팀 자재부의 선임 격인 '김정은'이라는 사람은 성격이 무섭기로 악명이 높았다.



자신에게 아부하거나 호의적인 사람들 그리고 상급자들에게는 순한 양 같은 사람이었다. 반대로 자신보다 하급자이거나 현장 실습생들에게는 냉혈한 같은 사람이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또다시 전쟁과 같은 날을 보내며 하루하루 새로운 사람들과 적응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성민이에게 연락이 왔다.



"잘 지내.?"


"웅 잘 지내고 있지."

"성민이 오랜만이네." "나 B팀에 갔다가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왔어."

"너 오늘 안보이던데.?" "쉬는 날이야.?"



"웅 오늘 몸이 조금 안 좋아서."

"... 사실 오늘 철민이가 술 한잔 하자고 하는데."

"태겸이라고 우리 고등학교 때 좀 놀던 애 있잖아."

"걔도 같이 온다고 하더라고." "철민이가 너도 오라는데, 우리 고등학교 여자애들 4명도 올 거야."

"같이 술 한잔 하자." "같이 모이는 것도 오랜만인데."



"그래 좋아."



약속에 흔쾌히 응한 후 나는 다음 날 주말 저녁 택시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공장이 위치한 지역은 다른 곳보다 면적이 작은 시였다. 그래서인지 시내를 나가도 비교적 한산해 보였다. 하지만 여기저기 밀집해 있는 노래방과 술집, 유흥주점들의 간판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화려한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시내 곳곳에는 이상한 전단지들이 뿌려져 있었고, 술집 앞이나 골목에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먼 타지에서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그중에 다수는 그저 순수하게 친구들과 어울려 타국의 문화를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평소 타국을 향한 경계 어린 눈빛이 살짝 풀린듯해 보였다. 반면에 소수 몇 명의 눈빛은 무언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화려하면서 음산하던 시내길을 뒤로하고 나는 철민이와 태겸 그리고 성민이와 4명의 여자 아이들과 한적한 맥주집에 들어왔다. 무언가 소개팅을 하는 것 같은 좌석 배치에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4번째 여자애가 한눈에 들어왔다.



"앗, 너는 미현이.??"



미현이는 내가 고등학교 때 짝사랑했던 여자애였다. 학교에서 발레를 하던... 반에서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대학 입시를 포기하고 현장실습을 올 줄이야.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너 미현이구나 반가워."



"오, 너도 있었구나. 그런데 왜 현장실습을 온 거야.?"

"너는 안 와도 되었을 텐데."



"아 뭐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아무튼 반갑다. 앞으로 회사에서 만나면 자주 인사하자."



"그래. 일단 오늘은 재밌게 놀자."

"자 한잔 마셔."



미현이는 여리한 체형에 예쁜 얼굴이어서 고등학교 때에도 남자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여기 회사 내에서도 벌써 여러 남자 사원들이 대시를 한 모양이었다.



갓 성인을 넘긴 청춘남녀 8명이 모여서 왁자지껄 떠드니 술집 안이 들썩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태겸이가 시간을 보기 시작했다.



"앗 벌써 자정이 넘었는데, 어떡하지... 나는 기숙사 들어가는 게 힘들 것 같은데."

"기왕 이렇게 모였으니 방 두 개 잡고 2차 더 하러 가자."



방을 잡고 여자애들과 술을 더 마시러 간다니. 정말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편안한 분위기에 경계가 풀린 탓인지 여자애들도 거절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자 갑자기 2번째 자리에 앉아있던 하윤이가 태겸이를 향해서 물었다.



"태겸아 네가 그럼 2차 쏘는 거야.?"



하윤이는 또래 친구들보다 의젓하고 털털한 성격이라 앞장서서 아이들을 리드하였다. 그래서인지 나머지 3명의 여자애들은 하윤이를 의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좋아.!"

"오늘 월급날인데 까짓것 내가 다 쏜다."

"가자.!"



아이들의 재촉에 어느새 나도 함께 따라가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현이도 같이 가는지 두리번거렸는데, 역시나 주변 아이들의 이끌림에 함께 동행하고 있었다.



마음 한편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몇 시간 전 맥주집에서 철민이와 미현이가 달콤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서로 웃으며 눈빛을 교환하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나참 여기까지 와서 짝사랑을 또 해야 되나.?"



언제 온 건지 모를 비로 인해서 네온사인 가득했던 밤거리는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개의치 않고 청춘남녀들은 목적지를 향해서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가고 있었다.







이전 15화 사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