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우강 선술집
레겐스부르크를 방문하면서 아쉬운 것은 시간이 많이 없었기에 유서 깊은 도시를 깊이 있게 다녀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짧은 일정으로 가장 오래된 식당에서 소시지빵 먹는 일정만 가지게 되었다.
Historic Sausage Kitchen이라는 가계는 1140년 문을 연 곳으로써 900년이 넘는 오랜 전통의 가계로서 문을 연 시기 모차르트와 괴테 도 이곳에서 소시지를 먹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소시지빵을 3개 주문하여 점심을 해결했다. 비록 아주 단출한 식사지만 오래된 역사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오래된 소시지 집에서 가져온 브로셔로 “도나우강의 선술집(WIRTHAUS AN DER DONAU)”
라고 소개되어 있으며, 500년 이상 전통을 가진 소시지의 조리법은 숯불에 훈제돼지고기 소시지를 굽고, 소금에 절인 발효된 양배추와 겨자를 곁들여 먹는다는 요리법 소개가 있다.
소금에 절인 양배추는 흡사 발효된 백김치 맛을 낸다.
도나우강 선술집 브로셔이렇게 멀리 떨어진 유럽에 김치와 유사한 맛을 내는 이러한 독일식 양배추 절임을 지우 어크 라우트(sauerkraut: 신 양배추)라고 한다. 이러한 양배추는 실제로는 13세기경 유럽에서 들어온 몽골에 의해 전파되었다고 한다.
독일에 유학 온 한국 학생들은 이러한 양배추 절임에 돼지고기와 고춧가루를 넣어서 김치찌개 맛을 만든다고도 한다.
오랜 역사와 사연이 있는 소시지빵은 단순한 점심이 아닌 우리 가족에게 동서양 문화가 교류되는 역사를 현실로 느끼게 해 주었다.
그 옆에는 잔잔한 도나우강 위에 돌 아치의 다리가 보이는데 마치 프라하에서 본 까를교와 비슷한 다리가 보인다. 실제로 레겐스 부르크 사이트에는 슈타이네르네 브뤼케 (Steinerne Brücke) 다리(1146년 완공)가 중세 다리 건축 기준이 되어 훗날 까를교(1380년 완공)와 같은 다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 소시지빵을 만들어 주는 주방
▲ 레겐스부르크 소시지빵
▲ 900년 전통 레겐스부르크 소시지빵과 도나우강
도나우강과 레겐스부르크 역사
브뤼케 다리 아래로 흐르는 도나우강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An der schönen blauen Donau, Op. 314)의 배경이 되는 강이다.
이곡을 들으면 도나우강이 펼쳐진 유럽적 경치와 함께 영화 속 드넓은 우주를 항해하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아마도 우주개발 영화에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접목해서 인식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최근 K-Pop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지만 우리도 한국적 음악과 문화 그리고 지역을 엮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면 어떨까 생각도 하게 한다.
레겐스부르크 역사는 초기에는 켈트인이 사는 지역이다가 기원전 179년 로마 군대 캠프로 활용되다 6세기경 거주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거주기능을 상실했다가 1140년경 무역도시로 변모하게 된다.
이도시의 기록에 1519년 유태인을 추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후 19세기 나폴레옹 전쟁을 겪었고 20세기 2차 대전 때는 공습으로 구시가가 많이 축소되었다는 기록도 나온다.
레겐스부르크는 오래된 도시이기에 많은 인물들이 나고 자란 곳이다. 자신의 전재산을 바쳐서 1200 명의 유태인을 살린 오스카 쉰들러(1908~1974)가 살았던 곳 이기도 하다. 또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연고지인 곳이기도 하다.
▲ 오스카 쉰들러(1908~1974)
레겐스부르크 (Regensburg)의 오랜 역사의 도시이기에 중세의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건축물은 구시가지 여려 곳에서 볼 수 있다.
▲ 레겐스부르크의 브뤼케 다리 입구 건축물
다음은 레겐스부르크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현재까지의 2000년 도시 역사에 대한 간략한 개요이다.
179 AD : Regensburg에 로마 군대 캠프 설립( Marc Aurel 황제)
739 AD : St. Regensburg 교구 창립.
700 년경 : 세인트 에머만 교회 창립.
1007 년 : 레겐스부르크의 거주 도시로서 기능 상실.
12 세기와 13 세기 : 파리, 베니스, 키예프와의 무역을 통한 번영.
1135 - 1146 : 돌다리 건설. 중세 건축 기적은 프라하의 카를교 (Charles Bridge)와 같은 많은 다리 구조의 모델이 됨.
1273 년경 : 레겐스 부르크 (Regensburg)에 있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 건축.
1400 년 : 레겐스부르크는 지난 세기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지위 상실.
1492-1496 년 : 황제에 의해 "Freistadtstadt"상태 복원.
1519 년 : 레겐스부르크 (Regensburg)에서 유대인을 추방하고 그들의 주거 지역을 파괴함.
1542 년 : 개신교 신앙 도시로 전환.
1633 - 1634 년 : 30 년 전쟁에서 베른하르트 폰 바이마르 (Bernhard von Weimar)의 스웨덴 인에 의한 레겐스부르크 정복.
1802 : 자유 제국 도시 대신에 레겐스부르크 공국이 건립됨.
1806 년 : 독일 의회의 해체와 Regensburg의 "독일 국가의 신성 로마 제국".
1809 : 나폴레옹 아래 프랑스 군대에 의해 레겐스부르크 진주.
1838 년 : Regensburg를 Oberpfalz 지구와 Regensburg 지역의 수도로 지정.
1845 : 루드비히 - 다뉴브 - 메인 운하의 완공.
1910 : Luitpoldhafen (현재 Westhafen) 개관.
1938 년 : "Reichskristallnacht"에서 회당 파괴.
1943 : Regensburg 공습으로 402 명이 사망. 구시가는 크게 축소.
1945 : 4 월 23 일에 Donaubruck 폭발. Domprediger 박사의 집행 Johann Maier, 지구 검사관 Michael Lottner 및 창고 작업자 Josef Zirkel. 4 월 27 일, 이 도시는 미군에 항복했다.
1960/61 : East Harbor 건설.
1973 : 레겐스부르크 (Reensburg)의 구시가가 기념비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
2006 년 9 월 11 일부터 14 일까지 교황 베네딕토 16 세 레겐스부르크 방문.
2006 년 7 월 13 일부터 Stadtamhof와 레겐스부르크 (Reensburg)의 구시 가지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
변화는 한국사회의 강점이기도 하며 약점이기도 한 것 같다.
특히 우리는 워낙 급격한 변화 속에서 살다 보니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매년 다른 풍경을 보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길이 나고, 건물을 새로 짖고, 없어지고 등등..
우리는 변화가 일상인 세상에 살다 보니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유럽처럼 상대적으로 변화가 되지 않은 공간에 가면 역사와 문화를 느낄 때가 있다. 그런 공간을 지나갈 때는 무언가 더욱 가치를 느끼게 된다.
재산권이 있어 막을 수는 없겠지만 오랜 시간을 간직한 공간에 대한 흔적이라도 남아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최소한 개발을 하더라도 그런 시간의 부스러기를 남겨놓은 방식의 개발을 한다면 더욱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최근에 종로구 개발하는 방식을 보면 오래된 유구를 바닥에 남겨놓고 박물관을 만드는 방식의 개발방식은 바람직한 것 같다.
그러나 아직 서울 외곽 및 지방에는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다. 분명 그곳에도 역사가 남아 있을 텐데, 모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면 모든 흔적과 역사는 사라진다. 비록 허름한 공간이라도 그곳에는 역사가 남아있다.
우리가 공간 속 역사를 기억해 줄 때 공간은 가치를 나누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