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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만나며 세상 이해하기

유럽과 식민지 국가 이야기

by 금빛나무

세계를 만나며 세상 이해하기

세계를 만나다.


한국사회가 해외여행이 허용된 것은 1989년 1월, 그러나 그전부터 노동자들의 해외파견이 있었다.

즉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외에 돈을 벌기 위해 나갈 수 있지만, 여행을 할 수는 없었다.


어릴 적 기억이지만 우리 집에 월세를 들어 사는 가족이 있었다. 아주머니께서는 그 당시 어떤 부잣집 식모 생활을 하셨고 남편분께서는 해외 노동자로 일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부잣집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께서는 일하시는 집의 아이들이 소풍을 가는 날이면 아주 특수하고 생소한 김밥을 우리 집에도 나누어 주었을 때 놀란 기억이 난다.


특히, 아주머니 남편분께서 해외에서 돌아올 때는 진귀한 컬러 TV를 들여놓았고 가끔은 외국에서 가저온 과자를 나누어 주었기에 외국에는 정말 신비롭고 발전되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떤 면에서 모든 것이 가난하고 통제되던 시절에도 우리는 간접적으로 흘러들어온 외국 문물에 대한 환상을 가진 적이 있다.

그 후 1987년 최류가스와 함께 민주화 붐을 타던 고등학교 시절 이후 세상이 변했다.

대학교 시절에는 전 국민 해외여행이 허락되면서 학생들 사이에는 해외 배낭여행이 유행으로 나타났다.

그 시절 유행하던 015B라는 그룹의 노래인 "수필과 자동차"라는 노래에서는 그 당시 풍토로 "해외여행 가봤는지 중요하게 여기네"라는 가사가 있다.

015B 앨범


그 당시 해외여행 자율화는 한국사회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시각과 인식의 틀을 넓혔다고 생각한다. 이 시절 해외여행을 하던 1세대가 김어준 씨와 같은 사람이다.

지금은 시사프로에서 강자가 되었지만, 그의 배낭여행 이야기는 무척 이채롭다.

그는 배낭여행지에서 빈털터리가 될지도 모르는데 보스(Boss) 양복을 사 입고, 그곳 숙소 삐끼 노릇 하면서 여행 다닌 이야기,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을 만나러 간 일등 회자되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한국사회의 일반 평범한 사람들이 세계에 눈을 뜨는 시대가 되었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을 살아왔지만 여유가 없었기에 학생 시절에는 해외 배낭여행을 가볼 생각을 해보질 못했다.

오히려 회사에서 이런저런 교육과 업무로 세계에 첫발을 딛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간 곳은 제주도가 아닌 인도였다. 인도에서 본 세상은 역사와 종교 철학이 어우러진 곳이었다. 그곳에서 눈으로 목격한 것은 영국 식민지 과거를 가진 인도의 모습이었다.



두 위인을 만나다.


인도를 가서 알게 된 사실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우도 우리나라 남과 북 분단처럼 식민지 시절 인위적으로 나누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김구 선생과 비슷한 위치에 인도의 지도자인 간디 역시 영국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을 하며 인도 사회의 정체성을 만들어 냈다.


남과 북이 이념으로 나누어 졌다고 하면 인도와 파키스탄은 영국에 의해 종교로 인위적으로 나누어 졌다,

사실 분리되기 전에는 두 종교 갈등은 있었지만 하나의 나라로 살수 있었는데 도 불구하고 영국인들은 파키스탄내 힌디교인은 인도로 보냈고, 인도의 이슬람인은 파키스탄으로 보냈다.


이렇게 파키스탄에서 내려온 흰디교인들은 더욱 정권에 충성을 해야 했고 정치적으로 강성일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마치 북쪽에서 서북지역 청년교인들이 남쪽에 내려오게 되어 이념적으로 더욱 강성이 되어 이승만정권의 행동대장이 된것과 유사하다. 서북청년단이 백색테러 및 4.3에서 학살, 보도연맹 학살을 했듯이 인도와 파키스탄간 종교갈등은 점점극에 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1948년 1월 30일 반이슬람 힌두교 급진주의 무장 단체인 라시트리야 세와크 상가의 나투람 고드세는 흰디교와 이슬람의 화합과 통합을 이루려는 간디에게 총구를 겨누고 암살했다.

이것은 마치 김구선생 역시 남과북의 갈등을 해소하려다가 이승만 정권의 사주를 받은 안두희에 의해 암살(1949년 6월 26일) 당한것과 너무나 비슷하다.



2001년 인도에 방문했을 때 찍은 간디 묘의 비문
인도 시내 풍경으로 영국처럼 좌측통행길이다.


식민지 국가

인도에서 교육받던 중 주말 인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긴 고속도로 여정중 멈춘 휴게소에서 짜이라는 차를 마셨다.

이곳에서 마셨던 짜이라는 차는 홍차에 우유를 타서 먹는 방식으로 이런 방식의 차는 영국의 식민지 루트가 있던 곳에서 모두 유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간단하게는 음식의 문화뿐 아니라 정치, 경제, 많은 삶의 방식이 식민지 구조에서 연결되었고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근세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아프리카 르완다에 출장을 다니면서 식민지 국가들의 특성을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은 유럽여행을 다니면서 그들의 문화를 동경하고 있지만, 아프리카를 보면 유럽인들의 양면성을 보게 된다. 아프리카의 경우 대부분 유럽 국가의 식민지였지만, 이들의 국경선이 매우 인위적인 것 등이 유럽인들이 1884년 베를린에 모여 식민지를 철저하게 개척하기 위한 협의였다는 것도 놀라웠다.

베를린회의에서 유럽 열강들에 의해 결정된 아프리카 국경


르완다는 벨기에 식민지에서 의도적으로 분리된 두종족이 독립하면서 분열로 서로 대량 학살을 한 역사를 알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대량학살의 역사가 한국에서도 과거 제주 4.3 및 보도연맹 학살사건 등으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비극적 학살 또한 식민지 역사를 가진 곳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일로 만났던 사람들이지만, 아프리카 지역의 관료들을 보면서 독립된 식민지라고 하지만 그들은 주로 미국, 영국, 유럽에서 학위를 받고 여전히 식민지 지배국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르완다 학살 기록이 있는 제노사이드 뮤지엄
영화 호텔 르완다의 배경이었던 밀콜린 호텔


그런 면에서 한국사회도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로 많은 정치인과 관료들이 일본의 육사 출신으로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했던 사람들이고, 심지어 그들이 국립묘지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지금은 유학이 일반화되었지만 과거에는 출세하는 사람들 중에는 유학파들도 많았다.


그런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생각해보면 과거 1970~80년대 한국사회는 일본 제국주의의 연장선에 있는 전체주의 사회였다. 어릴 적 생각해보면 일본 군국주의 시절 교육 칙서와 유사한 국민교육헌장을 잘 외워야 했고 반공에 대하여 외치고 포스터를 그리며 우리 체제의 안정성과 우세함을 북한과 비교하여 배우고, 교과서에서는 동학혁명을 동학의 난으로 배웠다. 즉 우리는 배우던 교과서마저 일본의 입장에서 만든 국정교과서로 배웠던 세대였다.


그러다 보니, 한국사회에서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과 교육에 따라 삶의 형태에 따라 세상을 보는 시각 차이도 커졌다. 특히, 세상을 보는 시각이 변화된 가장 큰 원인으로 인터넷과 자유여행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자유여행을 하면서 우리가 배워온 교과서 속 세상과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다.


심지어는 소설의 내용마저 달랐다. 어릴 적 본 장발장이란 소설에는 빵 도둑질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주인공 이야기로만 생각했고 그이야기의 배경인 프랑스혁명은 언급되지 않았다. 아마도 군사정권 시절 우리는 시민혁명 등 민감한 부분이 빠진 수정된 줄거리 책을 봤던 것 같다.


그랬던 장발장이 레미제라블이란 뮤지컬 영화로 나오면서 프랑스혁명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불려졌던 "민중의 노래"를 2016년 광화문 촛불 혁명 현장에서 불려졌고.

지금도 진행 중인 홍콩의 민주화 시위에서는 우리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그렇게 세상은 연결되고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세계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하면 도움이 된다.

실제로 그럴듯한 타이틀을 가진 교수 및 정치인, 언론들이 일본 중심의 뉴라이트 역사관을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놀랍기까지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와 세계의 다른 식민지 국가의 행태와 비교한 현상을 보면 우리 역시 식민지 시절 심어놓아 진 통치시스템이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최근 한일 무역전쟁에서 경제 산업과 엮인 정치 구조를 보게 되었고 정부의 강경 대응을 보고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과 합리적이라고 칭찬하는 의견들로 나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판단을 하기 위한 관점은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식민지 역사를 포함한 세계에 대한 이해를 통해 객관적으로 세계를 보는 관점을 만든다.


이렇게 넓어진 세계관은 우리를 때로는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레오가 현실에 눈을 떴을 때 불편한 현실에 맏닿들이게 되었듯 우리는 한국사회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가지게 할것이다.




변화를 이루는 시작은 왜곡 없이 세상을 보는 것에서 비롯한다.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식민지 관점이던 민족주의 관점이던 통치자 관점을 대중에게 강제 주입한다.

한국사회는 일본 제국주의와 연장선인 일본육사 출신군인에 의한 오랜 전체주의사회를 경험했다.

그리고 친일 전체주의 권력자들은 여전히 한국사회 기득권으로 변모하여 대중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사회의 민주화는 전체주의 사회를 벗어나는 시작이면서 식민지 시절부터 주입된 세계관이 아닌 자국민의 눈으로 역사를 보는 시작이고 새로운 세계를 열기 위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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