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문을 두드리다
처음 방문한 병원은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동네부터 병원을 찾아보자, 결심하고 검색하니 근처에 있었다. 자주 지나다니는 곳이었지만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정신과 초진은 흔히 한 달씩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나도 3주의 기다림 끝에 병원에 갈 수 있었다.
30분 단위로 상담 예약을 받다보니 대기실에는 나 혼자였다. 그냥 아파서 온 것인데, 병원 중 한 곳일 뿐인데 이상하게도 좀 긴장되었다. 색이 바랜 옥색 나무 문 너머에, 나의 구세주가 앉아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도 들었다.
‘편안하게 쉴 수가 없다’
‘신경이 과민되어 있다’
‘작은 일에도 크게 걱정한다’
불안장애를 묻는 설문에서 나는 꽤 많은 항목에 ‘그렇다’고 답했다. 설문에 응답하며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우울과 불안을 체크하는 설문지가 달랐고, 나는 우울은 비교적 낮았지만 높은 수치의 불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백발의 할아버지였다.
“직장 생활한 지 몇 년 되었어요?”
“어… 한 10년 가까이 되었어요.”
“어이구. 일찍 직장 잡았네. 공부 잘했어요?”
“어… 그냥저냥…”
“남편하고는 연애결혼 했어요?”
“네.”
“몇 년이나 했어요?”
“그것도 10년 가까이…”
“어이구. 그럼 첫 남자친구랑?”
“네… 뭐. 그런 셈이죠.”
“잠을 왜 못 자.”
“아이가 아팠던 경험이 꽤 큰 스트레스인 것 같아요.”
“그래도 잠을 자야지. 예민하네. 완벽주의지?”
“아…? 그런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나는 20여 분에 걸친 상담에서 곧잘 네… 어… 뭐… 따위의 대답을 했다. 예민해서 잠을 못 자는 거다. 그래도 잠을 자야 한다. 완벽주의 성격이다. 이런 말을 들으러 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상담이 끝나고 조제약을 받았다. 알 수 없는 약들이 한 봉지에 대여섯 알 들어 있었다. 약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항불안제와 항우울제는 아침과 저녁, 두 번 먹어야 효과가 있다고 했다. 저녁에 먹고 푹 잘 수 있어 좋았지만 아침에 먹으면 오전 내내 몽롱하고 비현실감이 들었다. 확실히 감정이 무뎌지는 느낌이 동반되었다. 평소 감탄했던 아침 상록수공원 풍경도 별 감흥이 없었고, 현실 세계에 레이어를 한 겹 덧입힌 것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감각하는 듯했다. 약을 다시 처방받을까 고민하다 선생님에게 별로 신뢰가 가지 않아 다른 병원을 한 번 더 가보기로 했다. 경험자인 친구가 ‘나에게 맞는 의사를 잘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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