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3월이 와버렸다
새싹이 움트고 알록달록 봄 꽃이 피기 시작하는 따스한 계절 봄. 그 봄을 45번째 맞는 나이. 어느덧 내 나이는 마흔의 중반이 되었다. 서른 살에 난 마흔이 넘으면 어느 정도 안정감이 있는 가정과 직장에서 커리어를 인정받으며 내 할 몫은 멋들어지게 해내는 그 어느 중간 즈음의 중년에 멋진 아줌마, 엄마, 직장인이 되어 있지 않을까 상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마흔다섯의 난 봄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회사에서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며 하루하루 지친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그 상황에서도 꾸준히 긍정적인 생각과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도 나의 상황과 감정 따위와 전혀 상관없이 찰나에 지나갈 봄이 도착하고 있다.
세무 회계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라면 3월이 다가옴을 느끼기 시작하면 불안, 초조, 부담, 압박감을 느낄 것이다. 하물며 10년 20년이 넘는 경력자들도 법인세 신고 기간이 있는 3월이 다가오면 압박감과 새로운 세법 변경들을 공부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힘들다고 말한다. 더디게 가기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랄까. 연말정산이 끝나니 더한 놈이 찾아왔다. 봄과 함께.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한 게 막상 바빠서 눈코 뜰 새 없이 일만 하고 한 달 주말도 없이 거의 모든 날을 일하며 해가 뜨고 해가 다 져서 늦은 밤 퇴근 하다 보니 봄을 느끼지 못하니 그 봄조차 너무나 소중하고 아쉬워진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봄은 소중하지도 않았고 아쉽지도 않았다. '또 봄이 왔네?' 혹은 봄이 왔는지 조차 감흥도 없이 아이의 학교 입학, 개학 그리고 새 학기에 치여서 온통 아이에게 집중에 봄을 느낄 마음조차 없었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봄을 느끼지 못하게 되니 이 봄이 또 얼마나 소중한지.
세무 회계 사무실의 3월은 전쟁이다. 그냥 1월부터 6월까지 전쟁인데 그 와중에 3월은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법인 회사의 경우 업체 하나만 집중해서 하면되지만 세무 대리인은 맡은 회사가 1~2개가 아니다. 작년에 내가 맡은 회사는 대략 25개(실적이 작은 회사 제외)였고, 올해는 담당 거래처들이 싹 바뀌어서 대략 20개 정도가 된다. 그중에 특히 건설업과 제조업은 더욱 결산 반영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일처리 하는데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첫 번째가 서류 취합이 한 번에 이루어지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개인, 법인 거래처들을 한 담당이 맡은 업체가 평균 50개가 넘는다. 거기에 메일이 하나로 몰리니 최대한 누락하지 않으려 해도 업체명을 써서 보내지 않거나 제목 없음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어서 누락이 발생하기도 하고,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취합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고, 받았지만 원하는 서류가 아닌 경우도 많다. 이렇게 일하다 통화하다 서류 취합 확인하다 무한반복 하다 보면 일이 정리가 안 되고 스탑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취합한 서류를 작성하고 보완하고 확인하고 검토하는 방법을 또 무한 반복한다. 그렇게 3월이 끝나간다. 야근 30일 당첨! 그나마 10시에 퇴근하면 감사한 마음까지 든다. 뭐라고 할까. 일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는 기분이랄까.
'오늘은 내가 봐줬다. 10시 퇴근해. 대신 내일은 더 힘들게 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나 꼬여 버릴 거야!'라고 일이 내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10시에 몸은 퇴근하지만 마음과 정신은 온통 일생각에 치여있다. 더군다나 신입으로 입사 1년 차. 올해로 법인세는 올해 2회 차 신고다. 1년 만에 다시 하는 법인세. 진짜 머릿속에 지우개가 자동 지움. 기억나는 것을 더듬어 겨우겨우 시작하고 있다. 5년 차도 1년에 한 번 하는 법인세가 힘들다고 하는데 1년 차는 오죽할까. 하지만 모른다고 징징거리면 안 된다. 왜? 경력자들도 지금 자기 거래처 일처리 하느라 너무 바쁜 상태라 이제 서로 감정만 나빠질 뿐. 최대한 전에 자료를 찾아가며 혼자 해낼 수 있는 만큼 해내야 한다.
법인세 2회 차를 경험해야 하는 지금 내 심정은 그냥 지나가다 작은 사고로 2주 정도 입원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진짜 이런 최악의 상상은 하면 안 되지만 오죽하면 이런 상상까지 하게 될까. 어느 회사에서든 신입은 항상 새로운 프로젝트 앞에서 하염없이 작아진다. '실수하면 어쩌지?',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왜 이 정도밖에 안될까?', '민폐 되느니 그만두는 게 나을까?'라는 수많은 자책과 실망으로 자신을 괴롭힌다. 하지만 그런 생각해봤자 마주한 일들이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해내야 하는 것은 그저 돌파! 상황을 파악하고 인지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사고 나는 상상이나 아픈 상상을 해본들 잠시 잠깐 시간을 벌어줄 뿐 결국 그것을 다시 해냐 하는 사람은 정작 본인이라는 사실. 그렇다면 우린 건강한 몸을 감사히 여기며 생각을 바꿔 다시 상황을 마주해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내가 지금 그런 마음으로 아침을 마주하고 출근을 하고 있다. 물론 사무실 도착해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진 '아... 퇴사하고 싶다. 오늘 또 여기에 앉아있네?...'라는 생각을 한다. 나도 사람이니까. 하지만 곧 이런 생각으로 바꾸려 노력한다.
'이곳은 내가 돈을 받고 일하는 실습터'라고. 소중한 실습 장소 소중한 실습의 경험. 나의 자산이 될 신고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버텨보려 한다. 그리고 버텨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나의 봄은 어느새 점점 멀어져 가고 4월이 떡하니 눈앞에 나타날 테니. 내년 봄은 즐길 수 있을까. 상상해 보며 말이다. 그래도 감사한 건 가을은 실컷 느낄 수 있다는 것. 상반기 나 죽었소 하며 열심히 일하다 보면 하반기는 여유롭게 보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의 인스타 릴스 영상 하나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세무 대리인의 새해는 6월입니다.' 너무 맞는 말이다. 그렇다. 6월 1일... 성실 신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5월 전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 6월의 새해를 향해 또 달려 보는 걸로 마음먹고 이 또한 지나가리 힘내 보자고 말하고 싶다.
P.S
저는 일요일인 내일부터 출근을 시작합니다. 3월 1일도 일을 할 예정이고 야근은 첫 주부터 시작하겠죠.
인스타에서 만난 세무 대리인 동종 업계의 직장인들 벌써 재택근무부터 오늘 출근한 분도 계시더라고요.
모두 힘내세요. 이 또한 지나가리. 제발 무사무탈안온하게 2026년 3월이 끝나길 바랍봅니다.
사실 아이가 중학교도 옮기게 되고 새로운 학교라 신경이 많이 쓰이는데 일도 바쁜 시기라 마음이 굉장히 많이 쫄립니다. 육아 이야기도 쓰고 싶고,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고 싶은데 시간적 여유가 없음이 너무 아쉽네요. 이 연재도 깊이 있는 연재를 하려고 했는데 점차... 저의 이야기만 나누는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오늘도 감사합니다. 모두 따사로운 봄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을 이 봄을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나누며 행복한 3월이길 바랍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