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안 맞는 부부
난생처음 포장이사
어디서 어떻게 전해져 온 말인지는 모르겠다.
이삿날 내리는 비가 돈벼락과 다름없어서 잘 살 것이다,
비가 오니까 각종 불운과 흉이 씻겨 나갈 것이다 등등
누군가의 해석으로 이삿날 내리는 '비'는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우리 이삿날에도 비가 왔다.
이삿짐센터 차가 아침 7시에 우리 집 앞으로 왔다.
자취방에서 이사 다닐 때는 큰 짐이 없었기 때문에 택배나 친구 차에 짐을 욱여넣어서 이사를 했지만
이젠 제법 부피가 큰 가전제품이 생긴 터라 이삿짐센터를 불러야 했다.
이삿짐센터 직원은 TV, 냉장고, 세탁기, 장롱, 책장, 책상 등등 견적을 보더니 5톤 트럭이 와야 될 것 같다고 얘기했고 처음에는 '5톤이요??? 에이~ 우리 집에 짐 많이 없어요!' 하며 바가지가 아닌가 의심했지만 우리 짐을 싣다 보니 5톤 트럭이 아주 딱 적당했다.
그들의 20년 경력 노하우는 괜히 노하우가 아닌 것이다.
이사를 할 때 다들 포장이사를 하라며, 돈은 좀 들지만 그렇게 편하다고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집기나 물건들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면 알아서 포장해서 알아서 옮겨주고 알아서 제자리에 세팅해주는 것이 포장이사인데 나는 모든~~~ 그릇과 냄비를 다 꺼내고 TV서랍, 책상 서랍, 책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방바닥에 꺼내어 진열해두었더랬다.
나는 포장이사가 그냥 가구나 물건을 진짜 '포장'만 해주는 이사인 줄 알았다.
그래서 포장하기 편하라고 모~~~ 든 물건을 다 꺼내어놓은 것이다.
이 사실을 안 남편이 3개월 동안 나를 바보라며 놀려먹었다.
방바닥에 일렬종대로 집합된 집 안의 물건들을 보고 이삿짐센터 직원도 황당하긴 마찬가지
"이렇게 물건을 다 빼놓은 집은 처음 봤어요. 이렇게 안 하셔도 되는데..."
그렇게 일렬종대로 집합한 물건들을 트럭에 싣고 옮겨 놓으니,
어디에 무엇을 둘지 몰라서 이삿짐 센터 직원분이 난감해했고
결국, 내가 하는게 더 속편하겠다 싶어서 나는 그들을 보내고 홀로 노동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포장이사의 진면목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나 혼자 일주일 동안 짐 정리를 해야만 했다.
100만 원이 넘는 큰돈을 불러 포장이사를 불렀는데...
다행히 냉장고니 세탁기니 하는 큰 짐들은 별 탈 없이 잘 옮겨졌다.
나는 그 사실에 위안을 삼으며 '그래, 이사가 무탈하게 끝났으니 됐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렇게라도 위로해야지.. 흑흑 내 돈...)
새집은 늘 설렌다. 특히 우리가 이사 온 집은 지은 지 두 달 정도밖에 안 된 신축 빌라라서 더더욱 설렜다.
나는 인터넷과 마트를 뒤져서 집안을 예쁘게 꾸밀 인테리어 제품들을 사다 모았다.
남편은 보다 못해
"10평밖에 안 되는 집 무너지겠다!
그만 좀 사다 날라!! 벽에 그만 좀 걸어!"
라며 화를 내었지만 그래도 새집으로 이사 온 설렘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 집 고양이도 신이 났다. 하지만 우리의 신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남편이 한마디 툭 던졌다
아! 그랬던 것이다!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라 '남의 집'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이 집이 아무리 새집인들, 엘리베이터가 있다 한들, 바닥이 마룻바닥이든,
벽이 엔틱 디자인의 벽이든, 자연광이 잘 들어오는 집인들
어쨌든 이 집은 '남의 집'이고 우린 2년 뒤에 나가야 했던 것이다!
나는 현타 (현실 타격!!)이 와서 인테리어 소품 사재기를 그만뒀다.
그래도 새집에서 사는 건 하루하루가 설레고 신나는 일이었다.
아침마다 눈 떴을 때 기분 좋게 나를 감싸주는 상쾌함이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불행은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새집의 행복도 잠시, 우리는 윗집과 아랫집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지금까지도 그 난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