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안 맞는 부부
우리 집 위아래층에 괴물이 산다
새집으로 이사온지 며칠 째.
평화로운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쿵쿵거리는 소리에 아침 단잠이 깼다.
윗집의 발소리였다.
처음에는 아닐 거야,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그 말로만 듣던 '층간소음'은 아닐 거라고 애써 부정했다.
하지만 쿵쿵거리는 소리에 이어 벽을 뚫는 드릴 소리에
'아, 웰컴 투 층간소음'을 외치게 되었다.
이전에 살던 집은 우리가 꼭대기층(그래 봤자 3층)이었기에 층간소음을 겪을 일이 없었다.
그리고 매번 자취생활을 할 때마다 운이 좋게도(?) 나는 항상 맨 위층에 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금부족으로 (4층은 전세 3억, 5층은 3억 5천, 6층은 3억 8천이었다)
3층에 안착했는데... TV 뉴스에서만 보던, 인터넷 게시글로만 보던
바로 그 층. 간. 소. 음. 을 겪게 되다니!!!
나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1. 쿵쿵 거리는 발소리
- 공룡이 환생한 줄, 뇌가 둥둥 울려서 깨질 것만 같은 고통이다
2. 주말만 되면 들려오는 드릴 소리
- 벽을 뚫고 집을 새로 짓나? 싶을 정도로 심각했다
3. 새벽마다 열리는 술파티
- 내 어깨도 들썩이게 할 만큼 신명 나는 랜덤게임.
나도 모르게 마셔라~ 마셔라~를 같이 외치게 되었다.
4. 건물이 부서질듯한 현관문 닫는 소리
- 혹시 현관문에 원한 있으세요?
현관문을 어찌나 세게 닫는지 집이 흔들릴 정도!!
'제발 좀 작작하세요!' 당장에라도 올라가서 큰소리치고 싶었지만!
요즘 세상이 하도 험하기 때문에 괜히 볼멘소리 했다가
보복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무서워서 차마 올라가진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관리인 아저씨한테
'위층 소음이 너무 심하니 조심해달라고 전해주세요' 까지만
전달했고 그 뒤로 살~짝 소음이 줄긴 했다.
그렇게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는데...
아랫집은 우리가 이사온지 세 달 정도 뒤에 들어왔다.
20대의 젊은 신혼부부였다.
그래서 별 일 있겠나 싶었는데... 있었다.
이 집에 막 돌이 지난 갓난아기가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10평도 안 되는 이 좁은 집에
여자 쪽 아빠, 엄마가 함께 들어와서 살았다.
밤에 되면 아기가 울고, 아기를 달래느라 온 가족이
우르르 까꿍~~~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른다.
나는 뜻하지 않게 아랫집 아이의 이름과 별명을 알게 되었다.
(우주 최강 왕자님이란다)
낮이 되면 아기가 자는지 어쩌는지 어른들이 낮술을 드시다가 언성을 높이며 부부싸움을 한다.
나는 뜻하지 않게 부부싸움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버님이 젊은 시절부터 쌓인 게 많으신 듯)
층간소음이 심하다 심하다 말만 들었지
그래 봤자 위층 소음이 심하겠지 싶었는데
내가 겪은 바로는 층 아래 소음이 더 끔찍했다.
층고가 낮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랫집에서 조금만 크게 얘기해도
우리 집에 그대로 다 들린다! (애초에 건물을 잘못 지은 건가?)
아기가 한 번 울음이라도 터지면 마치 4D 체험을 하듯,
바로 옆에서 아이가 우는 것 같이 아주 실감이 났다.
TV 소리를 최대로 틀어도 아래층에서 나는 소리가 더 컸다.
급기야 나는 주말만 되면 집 근처 카페로 탈출을 했다.
안락한 내 집을 놔두고 아래층 소음을 피해서 말이다.
한 번은 도저히 못 참겠어서 내려간 적이 있는데
다행히 말은 통하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일주일 뒤, 다시 시작됐다.
다행히가 아니라 불행히 말이 통하지 않는 분들이었다.
우리가 참고 견디는 마지노선은 딱 11시까지였다.
밤 11시가 지나면 신데렐라도 울고 갈 만큼 가차 없이 행동했다.
아래층에서 밤 11시 이후에 크게 떠들고 싸우고 고성을 지를 때마다
나는 있는 힘껏 발구르기를 했고 발뒤꿈치 공격을 퍼부었다.
그런데, 그들이 질세라 더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엄청 시끄럽게 고함을 지르고 소리를 지르고 문을 열고 고성방가까지 했다.
이제는 전쟁이다!!!
나는 골프공을 굴리고 손톱깎이로 바닥을 톡톡톡 계속 찍었다.
남편과 거실에서 PT체조를 하고 멀리뛰기 대결을 했다.
(손톱깎이가 은근 효과 좋다, 적은 힘을 들여 거슬리는 소음을 만들어낸다)
이제야 그들이 조용해졌다.
이제야 조금씩 평화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