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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양 May 13. 2021

아이 안 낳을 건데요? 결혼4년 차 딩크 부부

참 안 맞는 부부




아이 안 낳을 건데요? 결혼 4년 차 딩크 부부


# 딩크 부부

우리는 딩크 부부다.

딩크(DINK)는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은 맞벌이 부부를 칭하는 말로 

쉽게 말하면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는 부부다.


아이를 싫어하냐고? 아니, 우린 아이를 좋아한다. 

네덜란드에 있는 조카들도 예뻐서 어화둥둥 품고 다녔고 

친구들이 출산을 하면 늘 찾아가서 작고 예쁜 생명체와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한다. 


우리가 딩크를 선택한 바로 우리의 직업 때문이다. 

방송 PD와 방송작가의 인생이 얼마나 고달프냐면

우리는 정규직이 아니다. 

계약서 한 장 쓰지 않고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갑자기 프로그램이 없어지면 우리는 직장을 잃는다.

갑자기 사회적인 이슈가 터져서 방송이 죽으면 우리는 돈을 못 받는다.  

시즌제 프로그램을 끝내고 한 두 달 쉬다가 다시 일하려고 하면 

갑자기 일자리가 없어서 5~6개월을 주구장창 쉬기도 한다. 


어떤 때는 갑자기 천만 원이 넘는 돈을 한꺼번에 벌다가

어떤 때는 3개월 동안 수입 한 푼 없기도 하다.  

우리는 '돈벌이'가 예측이 안 되는 직업이다. 


둘 다 같은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보니 돈을 모으는 패턴도, 쓰는 패턴도 비슷했다.

우린 모은 돈도 없었고 모을 돈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 전부터 직업이 불안정하고 돈벌이가 들쑥날쑥하니

서로 '아이를 갖지 말자'라는 의견으로 합의를 했고 

양가 어른들에게 '아이를 갖지 않겠습니다'라고 딩크 선언을 했다. 


# 친정 반응

당연히 우리 부모님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옛날 비혼 주의를 선언했을 때와 비슷하게 말이다.


"너네가 신혼 초라 그렇지~ 나중에 결혼하고 좀 지나 봐라~

아이 키우는 맛이 사는 거다, 자식들 키워놓으면 나중에 든든해~"


한 마디로 '지금은 안 낳는다고 하지만 결국 바뀔 거다, 결론은 낳아라!!'였다. 


# 시댁 반응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 

시아버님은 덤덤하게 '그래~ 너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고 하셨고

시어머님은 놀란 마음과 섭섭한 마음을 동시에 내비치셨다.


"진짜 안 낳을 거니? 나는 손녀 보고 싶은데..."


남편이 말했다.


"엄마가 키워줄 거야?"


"...."


"키워줄 거 아니면 앞으로 말 하지 마"


......우리 남편은 내가 봐도 참 4가지가 없다.

(그래서 나랑 같은 프로그램에서 일할 때 피 터지게 욕하면서 싸웠다)

그 4가지를 자신의 엄마에게도 발현된다는 게 참 대단하다. 


결국 어머님은 한 발 물러났지만 

가끔 '아이는 언제 낳을 거니?'라고 물어보신다.

그래서 최근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나 정관수술할 거야. 그러니까 이제 물어보지 마!"


진짜 4가지 없는 아들이다... 


# 딩크 부부 결정, 후회하지 않아?

31살의 여자와 32살의 남자가, 사지 멀쩡 한 두 남녀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안 갖겠다고 선언하니 부모님들은 황당할 수밖에.


하지만 나는 '나' 자체의 삶을 즐겼던 사람이었고

남편 역시 '나' 자체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우리의 인생에 '아이'가 들어 올 자리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방송 PD, 작가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아이를 낳고 키운다 한들 내 아이에게 '행복한 인생'을 보장해 줄 수가 없었다.

행복한 인생을 보장해 줄 수 없다면, 그럴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낳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남들은 그렇게 얘기한다.


'일단 낳아봐'

'네 아이가 생기면 세상에 달라 보여'


나는 얘기한다.


'키워줄 거야? 아니면 얘기하지마.

그리고 낳고 후회하면? 후회하면 아이가 사라져? 그건 아니잖아.

핸드폰 어플처럼 삭제할 수도 없잖아.

아이를 낳는 순간,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는 책임자가 되는 거야

난 아직 그럴 자신이 없고 준비도 안 되어있어'


말은 쉽지~~ 그러다 나중에 낳는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애초에 책임질 수 없는 일을 하지 않는 게 맞고

그것이 '생명'이라면 아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고

아직 우리 부부는'책임자'로써는 부족한 사람들이기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 결혼 4년 차 딩크 부부의 삶

결혼 4년 차, 우리의 결심에는 변화가 없다.

오히려 더 단단하게 굳어갔다.

아이가 없는 결혼 4년 차 우리 부부의 일상은 

더없이 평화롭고 더없이 행복하다. 


나는 평일 저녁에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언어 공부를 하며 뒹굴거리고

남편은 컴퓨터 게임을 하고 플레이스테이션을 하고 영화를 보고 뒹굴거리고

주말이 되면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근처에 산책을 가거나 

1박 2일로 차를 타고 놀러 가고 쇼핑몰에 쇼핑을 가고


목돈이 들어오면 평소 사고 싶었던 전자기기나 게임기를 사거나

갖고 싶었던 신발, 가방, 옷을 사고  

어쩌다 같이 휴가를 쓰게 되면 아무 걱정 없이 

4박 5일, 6박 7일 해외로 여행을 가거나

집안에 틀어박혀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하고 맥주를 마신다. 


우리의 삶에는 '아이'가 없지만 '우리'가 있다. 

부모님은 아직도 아이를 안 낳을 거냐며 우리를 설득하지만 

우리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중에 늙으면 둘이 외롭다고, 자식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가 행복하면 그걸로 되지 않을까?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고, 당장 내일을 준비하기도 벅찬데

어떻게 늙은 후의 삶을 생각하겠는가.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

'우리 부부'가 행복하면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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