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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비 Sep 11. 2024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진정한 예술은 없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의 사람들


오늘날에도 화가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비극적인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시대와 불화하고 온갖 병으로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피폐했던 불운의 화가. 그러나 비극만 가득한 것 같던 고흐의 인생에도 햇살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인생 곳곳에 시절 인연으로 존재했다.


고흐의 평생의 후원자인 동생 테오는 말할 것도 없고, 파리에서 항상 술을 사주며 다정한 말을 건네던 로트레크, 아를에서 기꺼이 고흐를 감싸고 돌봐주었던 우체부 조셉 룰랭, 마지막 숨을 뱉는 순간까지 그 옆을 지켰던 가셰 박사(고흐 장례식에서 어찌나 심하게 울었던지 작별 연설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흐라는 이름을 전설로 만든 테오의 아내 요한나. 노년의 요한나는 고흐의 작품을 대형 미술관에 기증하면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미술관 창고에 수납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미술관 내부에 작품을 걸어야 한다는 완곡한 조건과 함께. 


슬픔과 광기의 문 경계에서 서성이다가 비극적인 자살로 생을 마무리한 드라마틱한 생 그 내면도 깊은 울림이 있지만, 생전의 인연들 또한 단순히 지나치기엔 무척 아름답고 인간적이다.  


출처: 반 고흐 박물관, 암스테르담


슬퍼하는 자 복이 있나니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목사 아버지 테오듸뤼스 반 고흐와 아내 아나 코르넬리아 사이에서 아들이 하나 태어났다. 첫 아들이 사산된 후 정확히 일 년 뒤에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는 일 년 전 사산된 아이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는다.  


빈센트는 종종 본래 이름의 주인이었던 자신의 형의 무덤가에 가서 혼자 상념에 빠졌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어린 시절부터 자주 상처받는 영혼을 지닌 아이는 스스로 버림받았다고 느꼈다. 


빈센트의 아버지는 형제자매가 10명이었다. 삼촌들 대부분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목사였고, 몇몇 삼촌들은 성공한 화랑이었다. 16살에 그중 가장 성공한 삼촌 밑에서 일하게 되었고, 동생 테오도 몇 년 뒤 삼촌의 화랑에서 일하게 된다.  


런던 분점에서 일하게 된 빈센트는 하숙집의 여인 유지니에게 뜬금없는 사랑을 고백하다 거절당한다. 말 한 번 섞어보지 않은 여인에게 일단 사랑 고백부터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타지에서 느끼는 외로움, 실패한 사랑, 빈센트는 결국 미술상으로 이력을 끝내고 목회의 길을 선택한다. 


도망친 곳에는 낙원이 없다고 했던가, 목회는 그저 하나의 현실도피였다. 과도한 종교에 대한 집착과 강박적 행동으로 이마저도 평판이 좋지 않아 그만두게 된다. 


화랑에서 일하는 동안 그림에 익숙해져 있던 빈센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미술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는 거룩한 행위라고 굳건히 믿는다. 애통하는 자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빈센트는 스스로 슬퍼하고 그림으로 위로를 받는 자였다. 


Van Gogh, <Portrait of Père Tanguy>, 1887, Oil on canvas, 92 x 75 cm, Musée Rodin, Paris
Van Gogh, <Joseph-Etienne Roulin>, 1889, Oil on canvas, 66.2 x 55 cm, Barnes Foundation


봄날의 햇살 같은 인연들


1886년부터 1888년까지 파리에서 지낸 2년 동안 테오는 형과 함께 보낸 그 시간이 소중했다. 함께 지냈기에 편지를 주고받을 일이 거의 없어 이 시기에는 7통의 편지만 남아있지만 편지의 내용엔 형에 대한 존경심과 다정함이 가득 묻어난다. 


“형은 새로운 개념의 선구자들 중의 한 명이야. 형은 지루한 일상에서 왜곡되고 퇴색된 개념들을 되살리려고 노력했어. 형은 심성이 곱고 늘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지. 그를 알고 싶지 않아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이야.”


비교적 부유했던 로트레크와 에밀 베르나르는 빈센트에게 자주 술을 자주 사주며 예술에 대한 열띤 토론을 나눴다. 당시 아무도 관심 없던 가난한 예술가들을 받아 준 탕기 영감에게서 아버지와도 같은 사랑과 존경을 느꼈다. 충동적이고 거칠었던 날 것 그대로의 빈센트를 다정하게 다독이고 수용하는 자들, 평생을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서만 있었던 것만 같았던 빈센트에게도 봄날의 햇살 같은 이들이 있었다. 


빈센트는 1888년 2월 아를의 노란 집으로 이사한다. 아를에서 만난 우체부 조셉 룰랭은 더욱 특별한 시절 인연이었다. 우체부였기에 빈센트의 집을 수시로 드나들었고, 밤마다 카페에 앉아 함께 압생트를 마셨다. 아이들을 둔 가정적인 사람이자 열성적인 사회주의자,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역치가 높은 사람이었다. 술에 취한 빈센트가 예술에 대해 내뱉는 말을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특별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함께 술을 마실 친구가 있다는 것 그뿐이었다. 


이제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어


아를에서 빈센트는 화가 공동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서두른다. 그중 고갱만이 테오에게 돈을 받는 대가로 오게 되는데 이 두 달간의 기이한 동거는 결국 빈센트의 귓불을 자르는 자해로 파국을 맞이한다. 


빈센트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조셉은 빈센트의 집을 치워주고 병문안을 가고, 퇴원 후 빈센트의 피해망상 증세를 옆에서 지켜보며 증상이 심해지면 즉각 테오에게 연락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셉은 전근 발령을 받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했고, 빈센트도 생레미 정신병원으로 들어가 치료를 해야만 했다. 가장 힘들 때 옆을 지켜준 사람, 조셉을 그린 작품엔 시들지 않은 아름다운 꽃들이 한 다발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빈센트에게 얼마나 소중했던 인연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생레미 병원을 두어 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빈센트는 혼자 긴긴밤과 발작의 밤들을 지새웠다. 친구들을 만나 보았지만, 이내 공항상태에 빠지면서 물감을 삼키는 기행을 저지르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다. 외롭고 애통한 날들이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훗날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처럼 불가피한 고통은 자주 모든 것을 잠식시켰다.  


Van Gogh, <Almond blossom>, 1890, Oil on canvas, 73.5 x 92 cm, Van Gogh Museum
Van Gogh, <Portrait of Dr. Gachet>, 1890, Oil on canvas, 67 × 56 cm, Private collection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1890년, 테오의 결혼 1년 만에 빈센트에게 이름이 같은 조카가 생긴다. 자신의 저주받은 이름을 다시 받아 살아가는 너무나도 소중한 새 생명. 조카에게 줄 꽃 피는 아몬드 나무를 정성껏 그린다. 나의 빈센트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수십 번 되뇌면서, 이제는 내가 너를 목숨을 다해 지켜줄게, 꼭 성공할게라는 다짐과 함께.


치료를 위해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이사한 빈센트는 삶을 마치기 전 또 한 번의 새로운 인연, 가셰 박사를 만나게 된다. 가셰 박사는 치료뿐 아니라 정신적 지지를 아낌없이 해주었고, 마을 사람들에게 모델을 서달라고 직접 나서서 부탁했다. 


7월 27일, 그 권총은 도대체 어디서 난 건지, 어느 장소에서 쏜 건지, 스스로 쏜 건지 타인이 쏜 건지 아무것도 명백하지 않은 그날, 심각한 부상으로 돌아온 빈센트는 29일 사망한다.


부조리하고 불안한 세상,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도 벅찼던 시대와 불화한 화가, 그럼에도 그를 마지막까지 지탱하는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테오와 조카 빈센트, 존경하는 조셉 룰랭, 친애하는 닥터 가셰.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중얼거리며 꽃피우는 그림을 가득 담은, 보좌에 앉은 듯한 신성한 모습으로 빈센트는 소중한 내 사람들을 그리고 지켜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진정한 예술은 없습니다.”


로댕 미술관에서 만난 탕기 영감, 직접 촬영
오르세 미술관에서 만난 닥터 가셰, 직접 촬영
크뢸러 밀러 미술관에서 만난 조셉 룰랭, 직접 촬영
반고흐 미술관에서 만난 아몬드 나무, 직접 촬영
반 고흐 미술관에서의 추억을 기억하며, 일생에 네덜란드를 다시 가볼 수 있을까,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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