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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dion Mar 12. 2021

소세키와 유리문 뒤에 나란히 앉아서

사람과 마주할 때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나는 혼자 고립해서 살아갈 수 없다.저절로 남들과 교섭할 필요가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다......그렇다면 사람은 모두 닳고 닳은 거짓말쟁이라고 단정해버리고 처음부터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고도 않고 마음도 주지 않으며 그 이면에 숨어있을 듯한 반대의의미를 가슴에 새긴채 그것으로 자신을 현명한 사람으로 여기며 거기에 만족과 마음의 안주를 찾아낼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사람은 자칫 오해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무서운 과실을 범할 각오를 처음부터 가정하고 덤벼들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그리고 내 앞에 나타나는 사람을 한결 같이 악인이라고, 또 한결 같이 선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 태도도 상대방에 따라 여러가지로 변해야 하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상대방에게 딱 들어맞아 한치의 틀림도 없는 미묘하고 특수한 선위를 무난하게 걷고 있는 것일까. 내 큰 의문은 항상 거기에 뒤엉킨다.

......지금의 나는 바보라서 사람들에게 속거나, 혹은 의심이 많아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거나, 이 두가지 밖에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불안하고 불투명하고 불유쾌한 것으로 가득차 있다. 만일 이것이 평생 계속 된다면 인간이란 얼마나 불가해한 존재들일까."

<유리문 안에서> 나쓰메 소세키,김정숙 역. 문학의 숲,2008 p122-p126

그의 생각에 공감한다. 사람과 마주하는 일은 고민과 사건을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피할 수만도  마냥 나쁘다고 할 수 만도 없다. 다만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보통의 또래보다 에너지가 많이드는 피곤한 일이구나 싶다. 내향인이라면 이 구절에 더욱 공감하지 않을까. 과하다 싶게 생각이 많다보니 한길 사람 속이 더욱 아리송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나는  사람을 볼때 서둘러 무엇이 옳바른가를 두고 그사람을 평가하기보다  사람이 '무엇을 믿는가' 먼저 아는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은지와는 별개로 말이다. 물론 가까이 두고 싶은 사람을  깊이 사귈때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 자신과 사귀는데도 도움이 된다. 자신의 '열등감' '방어기제' 이해한다면 '나의 믿음' '상대의 믿음' 관계를  들여다   있지 않을까?


어슴한 오후 유리문 뒤에 앉아 소세키의 에세이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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