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면접 흑역사 1편
면접 퀸의 거침없는 추락!
저는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것도 남들 앞에서 말이죠. MC는 소위 말하는 저의 주요 부캐입니다. 결혼식 사회, 고등학교 축제 사회, 대학교 합창단 사회 등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저의 가슴을 뛰게 하는 아주 즐거운 일이죠. 그래서 첫 직장을 다닐 때는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아나운서 학원을 다니며 실제로 M사의 시험까지 봤었죠. 결과는 물론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죠. 아나운서에게는 말을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덕목들이 훨씬 많으니까요.
저는 대학 4학년 시절 입사 면접도 봤다 하면 거의 붙는 면접 기계 수준이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영국 유학 후 현재의 직장을 찾기까지 문을 두드렸던 4개의 회사에서 면접 후 주르륵 미끄러지고 맙니다. 그중 3개 회사의 면접 흑역사를 통해 경력직의 면접은 신입직의 면접과 어떻게 다른지, 성공하려면 어때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1. 첫 번째 흑역사 M방송국.
저는 이 곳의 문을 참으로 여러 번 두드려댔습니다. 방송국에는 방송 경영이라는 직무군이 있습니다. 대학 합창단 선배 중에 방송 경영직으로 입사해 만족스럽게 회사 생활을 하는 분도 계셨고 무엇보다 저의 다이내믹을 추구하는 성격과도 잘 맞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대학 4학년 때는 서류 통과 후 필기시험 낙방, 첫 직장 다니던 때는 필기시험 통과 후 워크숍 면접 낙방, 그리고 위에서 말한 아나운서 시험도 면접 낙방, 그리고 오늘 이야기하려는 영국 유학 시절 경력직 면접도 낙방. 이것은 저와 M사와의 끈질긴 인연에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마지막 사건이었습니다.
영국에서 Creative and Media Enterprises (굳이 번역하자면 창조 미디어 산업학) 석사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직장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고 있을 무렵 저의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채용 공고가 있었으니 바로 M사의 방송 경영 경력직 공고였습니다. 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강한 열망에 휩싸여 또다시 도전하기로 맘먹었습니다.
제가 볼 때 글로벌 컨설팅사 경력에다가 석사 전공 이름에 미디어까지 들어가 있으니 승산이 있다 싶었죠. (사실 석사 과정이 미디어와 그리 큰 관계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서류 심사 통과 메일이 날아왔습니다. 하지만 면접은 화상 면접이 불가능해서 한국으로 와서 봐야 한다더군요. 왕복 비행기 값 생각이 났지만 안 해보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을 제일 싫어하는 저로서는 한여름에도 30도가 넘지 않는 영국에서 38도의 무더위로 들끓고 있는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아, 너무너무 더워서 숨이 막혔습니다. 더위에 맥을 못 추고 있다가 면접 당일에는 급기야 병원에서 링거를 맞다 면접장으로 향했습니다. 면접 인터뷰 전에는 한 시간 동안 주어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PPT에 제시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습니다. 문제가 뭐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고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했던 기억만 나네요. 그리고 드디어 인터뷰 시간이 되어 면접관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TV에서만 보던 낯익은 여성 아나운서분이 너무 멋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면접 시작. 면접관분들은 학기 도중 일부러 면접을 위해 한국에 왔다는 점에 노력 점수를 주시는 눈치였습니다. 저의 링거 투혼도 초반 점수를 따는 데 기여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면접 전에 당시 방송 산업 트렌트와 이슈 등을 나름대로 공부하고 가서 산업에 대해서도 아는 척을 할 수 있었죠.
그러나 저와 M사와의 인연을 끊어 놓은 그 마지막 질문.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M사가 타 기업을 인수 합병하려고 하는데 (또는 신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돈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 순간 멍했습니다. '돈 없는데 어쩌라고?'가 속마음이었으나 'M사는 여러 기업 광고주들과 네트워크가 있으니 그 기업들로부터 펀딩을 받는 게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답변을 했는데 한 면접관께서 답변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다른 대안은 없는지 물어보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방안은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어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고 말씀드렸던 것 같습니다. 면접관은 아쉽다는 표정이셨고 저는 그렇게 며칠 후 탈락 메일을 받고 한동안 자괴감에 빠져 지냈죠.
저는 사실 아직도 이 질문에 어떻게 답을 했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범답변을 아시는 분은 답글 좀 부탁드립니다.) 비행기 값 백만 원이 날아갔고 심신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면접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때 면접을 봤으면 어땠을까?'라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게 마련이고, 미련이라는 것은 사람을 참 괴롭게 만드는 녀석이기 때문이죠.
이 면접으로 그렇게 길고도 길었던 M사와 저의 인연은 끝이 났습니다. 굳이 이번 편을 한 줄로 정리하라고 한다면 '도전하라! 그것이 실패를 안겨줄 지라도 미련은 남기지 않는다'가 되겠네요. 써 놓고 보니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을 앞둔 분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을 찾는 과정은 구애 과정과도 흡사하니까요. 상대방(직장)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알아야 하고, 잘 보여야 하고, 사귀어 달라고(뽑아달라고) 간구해야 하는 과정 말이죠.
다음 편에서는 끝나고 보니 저의 잘못을 깨달은 면접 담을 통해 좀 더 실질적인 면접 팁을 드리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