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전 글을 읽으셨던 분들이라면 제가 경영 컨설턴트였었다는 것을 아실 거예요. 이전 글 공부할까 이직할까? 당신의 선택은? (brunch.co.kr)에서 이 산업 저 산업, 이 프로젝트 저 프로젝트하다 보니 전문성이 결여되었다는 느낌이 이전 직장에서의 굉장히 큰 고민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속이기도 하죠. 오히려 이것저것 하며 '되차게 굴렀던' 경험이 단단한 굳은살로 머릿속에 박혀있는지 저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겁 없는 신 팀장' (안 그래도 겁이 별로 없었는데)으로 성장했습니다.
제 기억에 경영 컨설턴트로서 가장 되차게 굴렀던 프로젝트는 국내 철강 대기업의 '탄소섬유 시장 진출 타당성 평가 컨설팅'이었습니다. 지금은 탄소섬유가 자전거 등에도 많이 사용되어서 낯설지 않게 느껴지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때는 11년 전인 2010년. 탄소섬유가 마치 외계어처럼 들리던 때였습니다. 저를 비롯한 프로젝트의 모든 팀원은 화학, 철강 근처에는 가 보지도 않은 인문계 전공생들이었고, 탄소섬유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도 어려운데 탄소섬유 시장에 진출해야 할지 말 지를 결정해야 하는 건 신이 하셔야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두드리면 열린다 하였으니 관련 전문가들을 수소문해 한 명, 두 명 만날 때마다 천국으로 가는 문이 하나둘씩 열리듯 실마리가 보였습니다. 중간에 클라이언트가 서류를 날리며 호통을 치는가 하면, 프로젝트 리더가 변경되고 프로젝트 기간이 애초 기간의 두 배 가량 늘어나는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쨌든 프로젝트는 무사히 박수를 받으며 종료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웬만한 새로운 과제에는 '이것쯤이야' 하는 '깡다구'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재작년 12월경의 어느 날 지금 회사의 대표님께서 모든 팀장 및 실장님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셨습니다. 주제는 제가 지금 홍보마케팅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사업의 총괄사업자를 내년에 모집하는데 '우리가 이 사업을 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였습니다. 이 사업은 할지 말 지에 대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전체 회의를 해야 할 만큼, 기존에 회사가 해 오던 사업과는 크게 다른 사업이었습니다. 우선 사업 예산이 기존 사업에 비해 매우 컸고, 기존 사업이 주로 연구 용역이었던 데 반해 테마여행 10선 사업은 실행 사업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연구 용역에서는 마케팅을 이렇게 저렇게 하세요라고 보고서만 썼다면 테마여행 10선 사업은 실제로 광고나 이벤트, 콘텐츠 제작 및 확산 등의 마케팅을 직접 실행하는사업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의견이 두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우리가 해 오던 일이 아니라 경쟁력이 떨어진다, 우리가 맡기에는 너무 큰 사업이라 회사 전체에 과부하가 걸릴 것이다 등이 사업 참여 반대의 주요 이유였습니다. 반면, 실행 사업을 함으로써 연구의 질이 더 높아지는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런 큰 사업을 함으로써 우리 회사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등이 사업 참여 찬성의 주요 이유였죠.
저는 어느 입장이었을까요? 겁 없는 저는 당연히 'Go '를 외쳤습니다. 내가 한 연구의 결과가 고객의 캐비닛에 들어가 빛을 발하지 못할 때의 아쉬움이 컸기 때문에 내가 한 일의 결과가 바로 나타나는 실행 사업에 대한 갈망도 굉장히 컸습니다. 전략 연구만 하던 우리 회사가 실행까지 하면 회사의 업역이 넓어지며 경쟁력도 한층 강화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죠. 탄소섬유 같은 것도 파헤쳤는데 이 사업을 못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더군다나 마케팅은 제가 항상 꿈꾸던 일이었기에 이 사업의 마케팅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습니다.
마음속에 이미 'Go'를 정해놓고 계셨던 대표님과 저, 그리고 패기 넘치는 또 다른 두 명의 팀장이 의기투합해 총괄사업자 모집에 도전장을 던졌고 저희는 그 결과 작년부터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려의 목소리대로 회사 전체에 과부하가 걸리거나 저희의 역량 부족으로 사업 추진에 문제가 생겼을까요?
코로나 19라는 초유의 사태로 사업 방향이 여러 차례 변경되며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저희는제기됐던 우려와는 달리 원활히 사업을 추진 중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토록 하고 싶던 마케팅을 하게 되어 때때로 벅차오르기까지 한 감정을 느끼며 일을 하고 있고요. 또한 회사 차원에서는 이번 사업을 담당함으로써 대외적 이미지 제고는 물론, 기존의 전략 수립 역량에 실행역량까지 확보하게 되어 예전에는 할 수 없었던 다양한 유형의 사업까지 시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저는 길치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알던 길을 놔두고 '오늘은 이 길로 가볼까?'라며 다른 길을 선택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럴 경우 길을 잃고 헤매다 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었죠. '아, 그냥 가던 길로 갈 걸 그랬네 '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새로운 길은 익숙한 길은 줄 수 없는 새로운 풍경과 자극을 제공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갖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익숙한 것에만 머물다 보면 더 큰 기회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오늘부터는 새로운 선택지가 앞에 놓여있을 때 '한 번 해보는 거지 뭐'라는 마음가짐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새로운 길부터 한 번 도전해보세요!
커버 사진은 포항 호미곶의 새해 일출 사진입니다. 포항은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의 해돋이 역사기행 권역(울산, 포항, 경주)에 속해 있습니다. 홍보마케팅 담당 팀장으로서 이상 간략한 홍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