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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신팀장 Dec 18. 2020

그럼에도 기회는 있었다. 우연이 만든 필연

꿈 꾸는 자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다

   저와는 궁합이 맞지 않았던 해운 회사를 택했고 그로 인해 수없이 많은 고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를 선택한 것이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고, 어떤 면에서는 행운이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탁월한 리더십의 소유자이신 팀장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저의 팀장님은 매우 개방적인 사고의 소유자로 소위 말하는 꼰대와는 거리가 먼 분이었습니다. 팀장님은 제 자기소개서를 보시고 저의 에너지와 개성이 맘에 들어 저를 S&P 팀으로 불러들인 분이었고 저의 일처리가 미숙해도, 사고를 쳐도 한결같이 저를 믿고 지지해 준 분이셨습니다.


   제가 방황하던 신입 시절, 직업 선택 기준에 대해 대학 선배가 이야기 해 준 것이 있었는데 바로 '돈, 사람, 일' 기준이었습니다. 이 기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돈, 사람, 일 (적성) 중 한 가지만 충족이 되도 그 회사는 다닐만 한 회사다. 바로 이 사람이라는 부분에서 저의 회사는 팀장님은 물론이고 팀 내 선후배와 입사동기들까지 고려하면 100점 만점에 200점인 회사였습니다.


   팀장님은 일을 만들어서라도 끊임 없이 제게 크고 작은 기회를 주어 제가 역량 개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해외 MBA에서 금융을 전공한 과장님께 선박 종류별 10년치 수익성 분석과 그에 따른 미래 수익 분석이라는 과제를 일부러 주시고 저와 제 동기가 그 과제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겨우 입사 1년차가 되었을 때는 선박 매매건을 저에게 맡기셔서 몇 백 억 원 단위의 돈을 움직이는 경험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다니는 내내 S전자를 갔다면? H반도체를 갔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며 내 선택을 반문했던 것을 보면 저는  대학 선배가 앞에서 제시한 3가지 기준 중 일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기준이었나 봅니다. 다른 회사에서는 신입으로서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독이며 일 하다가도 내가 '해운업에 평생 종사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제 대답은 '아니다' 였습니다.


   평생을 모험과 새로운 무엇인가를 좇으며 살아왔던 저에게 해운업은 잔잔한 바다처럼 나른하게 느껴졌고 더 역동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면 할수록 나에게는 소비재 회사의 마케팅 직무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입사 1년이 되었던 시점부터 글로벌 소비재 회사 마케팅 직무나 공중파 방송사의 경영직에 이력서를 넣기도 했지만 이력서조차 통과되지 않거나 통과하더라도 다음 단계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아마도 소비재 또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해운업, 그리고 제가 하던 일과 마케팅 사이의 간극이 너무도 컸던 것이 이직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방황하는 와중에도 저는 의도치 않게 다음 커리어를 위한 스텝을 밟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2편에서 기획실과 저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맺게될 지 설명드린다고 했죠. 입사 후 1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 S&P팀에서 리서치팀이 독립하게 되었고 저는 팀장님 뜻에 따라 리서치팀으로 옮기게 됩니다. 당시 리서치 업무는 사내에서 '한직' 으로 여겨졌는데 그도 그럴것이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 -타 기관의 시황자료들을 요약하는 수준- 리서치 업무가 수행되고 있었기 때문이죠. 저는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리서치팀으로 옮겼는데 여기서 뜻밖에도 저의 숨겨진 능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인정'의 욕구가 굉장히 강한 사람입니다. 이전 팀에서는 대리님 과장님들의 일을 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하다가 리서치 팀으로 옮기면서 저 혼자 해야하는 독립적인 리서치 과제를 맡게되자 '인정' 의 욕구가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팀장님께서는 석탄 수요 급증으로 호주의 항구에 체선 (항구에 선박이 꽉 차서 들어가지 못 하고 대기하는 상황) 이 생기는데 현황 파악을 좀 해 보라는 과제를 던져주셨습니다. 선박이 오도가도 못하고 항구에 묶여있으면 그만큼 비용 손실이 발생해 당시 해운회사들에게는 이것이 꽤나 골칫거리였습니다.   

 리서치를 할 때 가져야 할 자세 : 원하는 것이 나올 때까지 찾는다!

   국내에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만한 자료가 전혀 없었고 구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어로 검색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으나 굉장히 특수한 주제여서 원하는 자료가 쉽게 나올 리 만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찾고 또 찾고를 반복하다 작은 실마리들을 얻어갈 수 있었고 호주 항만국 (Australia Port Authority) 을 알아내게 되면서 본격적인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인정의 욕구와 더불어 저는 어렸을 때부터 "왜?" 를 남발하던 호기심 소녀였는데 이 점도 리서치 업무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의 "왜?" 는 항구에서 시작해 석탄 채굴 프로세스와 내륙 철도 운송 시스템을 파악해 체선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인 구조를 파악하게 만들었고 호주 주정부의 항구 증설 계획을 알아내 체선이 언제부터 해소될 것인지까지도 전망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거의 한달여를 연구해 완성된 보고서가 나왔을 때 사내에서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저한테 별 관심 없으셨던 기획실장님은 그날부터 저를 굉장히 예뻐하기 시작하셨고 이례적으로 호주 현지 답사 기회를 주시며 2차 심화 보고서를 쓰라고 하셨습니다. 해운업에만 국한하지 않고 시야를 넓혀 새로운 주제들을 탐색하며 저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도 재미있었고 인정을 받으니 그것 또한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 반 정도 여러 주제에 대한 보고서를 쓰며 성과는 인정받고 있었지만 해운업이 아닌 다른 산업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했습니다. 그러다 회사에 파견나와 있던 경영컨설턴트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바로 저거야!' 라는 생각과 함께 여러 산업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경영 컨설턴트로의 전직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리서치 업무는 저도 모르는 새에 컨설턴트로서의 기본기를 연마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저는 3년간 몸담았던 첫 직장을 뒤로하고 PwC 컨설팅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해외영업 업무를 지원했으나 기획실로 배정받았고 (해외영업으로 배정받았으면 계속된 야근에 지쳐 아마 회사를 더 빨리 그만뒀을 것 같습니다.) 저의 전체 사회 생활을 통틀어 가장 존경하는 팀장님을 만나 신입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 멋진 경험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S&P 팀에서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리서치팀으로 옮겨야했지만 오히려 이곳에서 저의 역량을 발현할 수 있었고, 이것은 컨설턴트로 도약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으니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원하지 않는 곳에 있더라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더라도 본인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일을 꿈꾸며 현재 역할에 집중하다보면 그것이 밑바탕이 되어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하게 될테니까요.


   리서치 할 때도 조금 찾다가 안 나온다고 포기하지 말고 이 문제를 풀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자료를 찾다보면 원하는 자료를 찾게 됩니다. 이직 또는 전직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조금 시도하다가 안 된다고 포기했다면 저는 컨설턴트로서의 경력을 쌓지 못 했을 테고 그랬다면 현재 저의 꿈의 직장을 만나지도 못 했을테죠. 그러니 포기하지 맙시다. 원하는 일을 찾게되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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