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성, 회피성 성격장애
평소와 같은 등원길이었다. 아이를 차에 태우고 어린이집에 갔다. 나는 어린이집에 조금 일찍 등원하는 편이다. 30분 정도 빨리 등원하면 주차하기도 용이할 뿐 아니라 그를 만날 확률도 적어진다. 적어도 최근에는 단 한 번도 등원하면서 그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안심하며 등원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차번호를 보는 순간 상쾌한 공기와 청명한 하늘을 보고 좋아졌던 마음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지고 말았다.
차에서 내리면서도, 나는 가슴이 계속 두근거렸다. 그를 만날 것인가. 만나면 또 불편한 상황을 견뎌야 한다. 나는 인사를 할 것이고 그는 인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서로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가겠지. 두 경우 모두 내게는 불편하다. 나는 최대한으로 그를 만나지 않을 방법을 고심했다.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 대문 앞으로 갔다.
어린이집 대문으로 들어가 마당을 지나면 어린이집 건물이 나타난다. 그 사이에는 차도 다닐 수 없고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라 안전하다. 그래도 나는 보통, 어린이집 건물까지 아이와 함께 갔었고 그곳에서 아이가 인사를 하고 들어가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건물까지 갈 용기가 없었다. 그러다 그를 만나면, 내 하루가 완전히 망가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대문 앞에서 아이에게 인사를 했다. 아이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왜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아이는 그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안으로 갈 수가 없었다. 마치 무슨 결계라도 쳐 놓은 것처럼. 나는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엄마, 여기서 갈게. 안녕." 아이는 뒤돌아서서 인사도 하지 않고 들어가 버렸다. 마음이 상했지만, 또 어린이집 선생님들을 만나면 풀릴 것이다. 엄마가 대문 앞에서 돌아갔다고 종알댈 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엄마가 바빴나 봐."라고 아이를 달래주시겠지. 어차피 내 소관은 아니다. 나는 빠르게 차로 돌아와 시동을 걸었다. 다행히 그를 만나지 않았다. 그를 만나지 않았지만, 마음은 더없이 찜찜했다.
그를 만나는 것도, 만나지 않는 것도, 여전히 내 안에는 찜찜한 감정을 남긴다. 그를 만나서 인사를 해도, 인사를 하지 않아도, 그를 만나도, 만나지 않아도, 나는 왜 계속 불편할까. 차라리 어린이집을 나가고 서로 볼 수 없는 사이가 되면 덜할 것 같은데, 언제 어디서든 그를 만날 상황이 되면 불안하고 힘이 든다. 그렇다고 그것을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다. 감정이 차오르면 그 감정은 내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어서, 그저 질질 개처럼 끌려가고 만다.
문득 나는, 성격장애는 그가 아니라 나에게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의존성 성격장애라는 것이 있다. 스스로 선택을 하지 못하고, 타인의 선택에 의존하며, 책임을 못 지는 성격장애다. 회피성 성격장애도 있다. 대인관계를 주도적으로 하지 못하고 혼자인 것이 편하며 남에게 해야 할을 하지 못 하는 성격장애다. 물론 성격장애라는 것은 진단 기준을 가지고 보통에서 벗어났을 경우 진단을 내리는 것이지만, 나 같은 경우는 이와 같은 특성 때문에 대인 관계가 아무 문제 없이도 홀로 어려웠기에 성격장애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내가 하는 생각보다 남이 하는 생각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 그가 나를 싫어해서 밀어내는 것을 보면 '내가 싫구나'하는 생각에 그냥 밀려나 버리고 만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런 문제를 내가 만들어 냈다는 생각을 하면 그에게 내가 온전히 맞추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든다. 남에게 의존하고, 자신의 정체성마저 타인에게 전가하다 보니 내 판단과 감정과 의지마저 모조리 잃어버린 채로 나를 싫어하는 타인을 견딜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이토록 힘든 이유는, 타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맞추어 버리며 내가 판단하고 사고하는 것을 멈추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것은 나의 엄마가 어릴 때부터 내 사고와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고 본인의 판단으로만 나를 양육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하면 내가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겠지만 나는 울타리 속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는 의존적인 어린아이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일단 문을 열고, 내가 걸어가는 것이 맞다, 내 판단이 틀려도 일단은 판단을 하라고 울타리 밖으로 나를 밀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내가 의존했던 것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조금씩 혼자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의존적인 사람은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견뎌내지 못한다. 상대의 판단과 감정으로 자신을 판단해야 하는데, 남이 나를 싫어하면 그렇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옳지 않다는 것을 계속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의 선택은 타인의 것일 뿐이요, 타인의 선택이라고 다 옳은 것도 아니다. 타인 역시 성격장애일 수 있고, 아마 나를 싫어하는 그 사람은 여러가지 행동과 말하는 것을 보았을 때 확실히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의존해서는 안 되는 사람인 것이다. 사이비 종교에 의존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나에게 해악을 주는 사람을 의존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그 사람에게도 내 마음의 조금이라도 주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하는 판단과 사고가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적어도 그 사람 앞에서는 내가 홀로 판단하고 홀로 서야 하겠다. 그 사람이 나에게 뭐라고 하든, 나를 미워하든 욕을 하든 신경쓰지 않고 '독립적'으로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야 하겠다. 물론 속으로는 그가 두렵고, 그의 감정대로 내가 따르지 않는 것 역시 두렵고 힘들지만 내가 그 동안 했던 행동이 옳지 않으므로 그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두려움이 시키는 대로 하지는 않아야 하겠다. 감정이 다 옳지는 않으며 감정은 때로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기도 하고, 그저 자신이 해왔던 대로 사는 것이 아니어서 감정이 지레 놀라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는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선택한 일을 한다. 그리고 책임을 진다. 그것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것은 그 사람 책임이다. 나는 이제 타인을 의존하지 않겠다. 나는 내가 선택한 삶을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