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난 날 그 사람도 만났다
오랜 친구를 만났다. 중학교 때 만난 그 친구는, 명랑하고 착하며 나와는 달리 강단이 있는 친구였다. 체력도 꽤나 좋아서 부러웠던 그 친구는 지금 나와 같은 아기 엄마이다. 어떻게 우리 집 인근에 살게 되어서 약속을 하고 만났다.
찻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게 되었던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그 말을 듣더니 자신의 말을 했다. 친구는 최근에 퇴사했는데, 그곳에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그래서 서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십여년 간 같이 일을 했다고 했다. 나와 비슷한 성격인 그 친구는 그 사람에게 계속 상처를 받은 모양이었다. 그 역시, 그 친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그런데 신기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 사람도 나름 인정받는 사람이고 나도 그렇거든? 나도 막 나쁜 평가를 받는 건 아니야. 서로의 그룹이 있고 친한 사람들이 있어. 하지만 우리 둘은 정말 안 맞는 거야.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들 하더라고."
그런 경우도 있구나. 그 십여 년의 세월 동안, 그 친구가 얼마나 힘들고 마음이 쓰렸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능했다. 나하고 비슷한 성격이니까. 그런데 그 친구의 결론은 이랬다.
"상황이 해석이 되고, 그 사람이나 나나 이해를 하게 되면 괜찮아."
세상에는 아주 악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선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힘든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나를 미워하는 그 사람은, 어쩌면 자기 입장에서 가장 '선'한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꽤나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 그것이 내게는 가증스러워 보일 지라도 말이다.
공교롭게도 오늘, 그를 만났다. 단둘이 만난 것은 아니고 모임이 있었다. 처음에는 가지 않을까 싶었으나 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닌 것 같기도 해서 가게 되었다. 사정이 있어 뒤늦게 모임에 나타난 그는 다른 이들에게 정답게 인사를 하고 제 고민을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 속에서 그는 퍽이나 다정한, 그리고 다른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마음 고생을 하는 선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의 목소리부터 거슬렸으나 나는 별말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실제로 매우 졸립기도 했다.
그의 이중적인 모습은 잘 알기에 그것이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나에게도 그는 매우 과할 정도로 '착하게' 굴었었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그래서 나는 모두가 그의 민낯을 알았으면 했다. 그래서 절대 악이 밝혀지고 권선징악적 결말이 나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마도, 그런 결말이 현실 속에서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살아갈 것이고, 내가 모임에 나가지 않고 사람을 피한 피해는 고스란히 내게 올 것이다.
다만 나는 그를 통해 내가 여러가지 긍정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음을 알고 있다. 우선 마음을 닫아버린 그의 모습에서, 남편에게 마음을 닫아버린 나의 모습을 보았다. 오래 갈등 관계에 있던 남편과의 관계가 극적으로 좋아졌다. 남편이 나 때문에 얼마나 상처받았을지가 보여서였다. 그리고 그의 성격에 대해서 이것저것 자료를 찾다 보니 심리학에 대한 지식들을 얻게 되었고 그것으로 나의 상태도 진단할 수 있게 되었다. 심리학에 대한 지식이 있다 보니 내가 쓰는 소설도 더 내용이 풍성해졌다.
상황은 아마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는 나를 미워하기로 굳게 결심했고 아마도 그 결심은 바꾸지 않을 것이니. 나는 많은 자료를 통해 그 이유도 이미 알고 있다. 자신 안의 죄책감을 가리기 위해서 나를 타겟으로 삼은 것임을. 누군가를 미워해야 하는데 그곳에 마침 내가 지나갔음을.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 때로 사람은 억울한 일도 당한다. 아무도 안 억울한 것이 가장 베스트겠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억울한 상황을 내게 이로운 상황으로 바꾸는 것이다.
친구와 차를 마시고 밥집을 고르는데, 주변에 밥집이 많아서 고민을 좀 해야 했다. 결국 한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나 나는 이런 말을 했다. "하필 밥집이 주변에 많아서 고민도 많네." 그랬더니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주변에 밥집이 많으면 좋은 거지." 전에는 친구가 내게 공감하지 않는다 속으로 불평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말을 듣는데 이 친구는 나와는 달리 긍정긍정 열매를 먹고 사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은 바뀌지 않지만 받아들이는 태도를 바꾸면, 나도 달라질 수 있다. 주변에 밥집이 많다 불평할 수도 있지만, 먹을 것 고를 것이 많다며 좋아할 수도 있다.
내가 그를 떠나게 된다면, 그는 또 다른 타겟을 찾을 것이다. 제 안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계속, 그렇게 타겟을 찾아 죄인으로 삼고 저는 끝까지 착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그런 삶이 과연 건강한 것인가. 부정에 갖히지 않고 긍정긍정 열매를 먹으며 살고 싶다. 어떤 상황이든, 그 상황을 극복하는 긍정긍정 열매를 먹으면 그래도 삶을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지 않을까. 무엇에서든 배울 수 있고 무엇에서든 얻을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