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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Nov 08. 2024

악인에 대응하는 법

악에 전염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누군가를 '악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텔레비전에나 나오는 범죄자들은 '악한 사람'이라고 비교적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실은 악한 사람은 그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악한 사람은 우리 주변에도 많이 있다. 아마도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그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게 된 것 역시 쉬운 것은 아니었다. 나를 미워하니 악한 사람이라는, 그런 1차원적인 사고방식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그를 결국 '악한 사람'이라고 규정하게 된 이유가 있다.


거슬러 올라가서, 누가 봐도 악한 사람이었던 주변의 몇몇 사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중의 한 명은 나와 같은 직장 동료였다. 그는 누가 봐도 열심히 일하고 주변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악행이 드러났을 때 나를 포함한 동료 중에 놀라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는 돈을 횡령했다. 돈을 이중으로 수금하여 제 주머니를 채웠고, 그것이 드러나자 도망쳐 버렸다. 동료들은 너무도 깜짝 놀라서 모여서 몇 날 며칠 회의를 했다. 그리고 나는 후에, 그 사람이 내 앞에서는 늘 웃고 잘 대해주면서 뒤에서는 내 욕을 엄청나게 했음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는 '욕을 하면서 친해지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서, 그 누군가가 싫어할 만한 사람의 욕을 하면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면 누구나 마음을 열게 되고 그의 동료가 되었다.


또 한 사람은 내 예전 직장에서 나를 유독 미워했던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직장 생활에 적응을 잘 못 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내 전에도, 그리고 내 후임으로 온 사람도 계속 미워하면서 그 미움을 티를 내고 종종 여러 사람 앞에서 그 사람에게 화를 내면서 상대에게 수치심을 안겨 주었다. 그렇게 미워하는 사람의 공통점은 대개 그 사람보다 나이가 어린, 직장을 다닌지 얼마 되지 않는 신입들이었다. 그 사람 역시 처음에는 나에게 매우 잘해주었고, 같은 직장 동료들에게 늘 먹을 것을 싸 가지고 와서 나눠주며 친절하게 구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 역시 뒷담화를 많이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일을 잘하고 못 하는 것이 없는데 늘 주변에 사고를 치고 못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결정적일 때에 '공감'이 부재한다는 것이다. 첫번째 사람은 횡령을 했을 때, 돈을 갑자기 잃은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지는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 그 사람은 결국 다시 나타났는데, 하는 말은 '내가 얼마나 불쌍한지'였다고 한다. 자신이 횡령을 한 것에 대한 사과가 아닌, 그저 제 불쌍함으로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사람 역시 자신이 그렇게 미워하는 대상, 주로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고 직장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선배 직원이 미움을 티내며 여러 사람 앞에서 망신을 줄 때 어떤 기분일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공통점은 그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사람은 자신이 그렇게 남의 돈을 횡령하는 것이 진짜 잘못한 일이라는 것을 끝끝내 알지 못했다. 두 번째 사람 역시, 자신보다 적어도 열 살은 어린 후배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대부분의 심리학 서적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누군가를 미워할 때 그 미워하는 대상이 실은 상대가 아니라 자기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자신에게 어떤 피해를 주거나 불편하게 한 사람을 일시적으로 미워할 수는 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비상식적으로 상대에게 품은 미움을 버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알고 보면 미워하는 대상은 미워하는 그 사람 자신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만, 자기가 스스로를 미워하면 괴로우니까 그것을 상대에게 '투사'하여 남을 미워하는 것처럼 거짓 인식을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스스로는 공격을 피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내가 말한 두 번째 사람이 끊임없이 미워하는 사람이 있었던 경우도 아마 이런 이유일 것이다. 만약 내가 거슬렸다면 나 이전과 이후로는 미워할 사람이 없어야 하는데, 마치 술래라도 뽑듯이 계속 미워하는 사람을 정하는 것을 보니 그는 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을 밖으로 향하여 남을 미워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특정한 타인에 대한 공감 부재,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이해 부족. 이것은 나를 미워하는 그 사람에게도 있는 특징이다. 그는 내 사과에도 나를 미워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사과를 하고도 계속 미움을 받아야 하는 내 마음이 어떨지 그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자신의 마음 또한 충분히 돌아보지 않았다. 정말 내가 미워할 만한 사람인지, 왜 자신은 미움을 거두지 않는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그 탓을 나에게서만 찾았다. 그래서 그는 '악인'이다. 정말 악해서가 아니라, 그런 특징들로 말미암아 악한 행동을 하고도 모르고 있으니 악인이다.


문제는 '악'은 전염된다는 것이다. 나는 어느새, 나 역시 그와 같이 '악'을 행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미워하는 그를 미워했다. 그가 나를 외면하고, 내 인사를 받지 않을 때도 미워했지만 그가 남들과 일상적인 인사를 하고 카톡에서 다른 이야기를 해도 미워했다. 그가 내 눈에 띄지 않을 때도 혼자 생각으로 미워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그를 미워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에게서 그 미움의 증거를 찾았다. 그는 이래서 내가 미워하는 거야. 나는 다른 사람들과 그 미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움은 나눌수록 커져서 나는 더더욱 날이 갈수록 그를 미워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어느새, 내가 왜 그를 그토록 미워하는지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정말 어떤 마음에서 나를 미워하는지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공감도 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그 사람 탓으로 돌렸다. 그가 전염시킨 '악'이 나도 악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과연 행복하게 했는가 생각하면 전혀 아니었다. 나는 그를 미워하면서 내가 불행해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꼈다. 그것은 그가 잘못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내 미움을 충분히 돌아보지 않고 그가 나를 미워하는 그 마음 역시 알지 못한 채 그저 그에게 전염된 '악'을 '악'으로 갚고 있어서였다.


그는 여러 책과 그의 기타 다른 행동을 참고하여 본 바에 따르면, 자신의 감정에 갇힌 채 현실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상태인 듯했다. 한 마디로 그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고, 그래서 늘 그는 자신을 '불쌍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남의 도움을 바랐다. 하지만 남이 아무리 도와주려 하고 손을 내밀어도, 스스로 그 감정의 늪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 그는 계속 도움만 갈구하며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니 그 역시 행복할 리가 없다. 행복한 사람은 남을 함부로 미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복이 그 미움에 침해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한 사람은 남을 쉽게 미워한다. 자신의 불행을 남에게 침범시키기 위함이다. 그는 제 불행 속에 침잠한 채 진짜로 '불쌍한' 상태에 있었다. 그를 불쌍하게 만드는 것은 스스로인 줄도 모르고.


나 역시, 그를 미워하는 마음 상태를 극복하지 못 하는 이상 그와 다를 것이 없다. 나 역시 '미움'이라는 감정에 파묻혀 있다. 그러니 내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선택은 스스로 그 미움의 늪을 나서는 것이다. 더는 미움이라는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은 채, 그가 어떤 태도를 보이든 나는 그것에 오염되지 않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를 미워하느라 감정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더 생산적이고 에너지틱한 일에 마음을 쏟으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과 즐겁게 웃을 때, '저런 가증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 속으로 그를 힘있게 째려보기 보다 '그렇게 웃으니 좋네.'라면서 오히려 그를 응원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쉽게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 쉽게 되는 일이 뭐가 있는가. 필라테스를 3년을 해도 자세 한 번 잡기 힘든데. 하지만 중요한 것은 훈련하면 된다는 것이다.


뇌는 부정적인 것만 생각하면 계속 부정적인 것만 본다고 한다. 나는 부정적인 것에 길들여져 온 사람이다. 부정적인 것만 보면, 내가 불쌍히 여겨지고, 그러면 사람들에게 내가 보살핌을 받을 것이라 여겼다. 이것은 내가 오랫동안 가져 온 방어기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것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어 왔음을.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주변 사람, 주변 환경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과 환경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태도'였음을. 그러니 이제는 달라져야 하겠다. '악인'은 쉽게 될 수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기는 매우 어려운데, 이제라도 조금씩 노력을 해 보아야 하겠다. 그와는 아마 인연이 끊어지겠지만, 나와는 계속 이어질 것이기에. 그런 나를 지금이라도 스스로 잘 가꾸어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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