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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나비 Nov 22. 2024

축복하기

선으로 악을 이기는 법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여전히 나를 미워하는 것 같다. 그와 보지 않은 지 3주가 지났고 아마 다음주 쯤에는 볼 일이 생길 것 같은데, 내가 인사를 해도 그는 여전히 눈을 피하며 고개만 까딱하거나 건조한 음성으로 '안녕하세요'라고 답할 것 같다.


처음에는 그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내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괴로웠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요청하면서, 그리고 심리학 서적들을 찾아 읽으면서, 관련 유투브를 찾아 보면서 그것이 아닌 것을 알았다. 특히 도움을 받았던 것은 책들이었다. 사람에게서 받는 조언이 가장 빠르고 쉽게 해결책을 낼 수 있으나 주변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내 주변에는 다행히 비슷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유투브는 그보다는 전문적이나 역시 정확하지 않고, 무엇보다 얕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정보를 접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깊고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좀 더 전문적으로 제대로 알려면 역시 책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심리학 서적을 읽는 유익은 또 있었다. 나는 그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보려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나에 대해 자세히 알 수가 있었다. 나는 내가 부족하고 모자라다고만 생각했었다. 그것은 아마도, 어릴 적에 엄마에게 받은 시선, 그리고 자라면서 학교에서 계속해서 '서열화' 교육을 받다 보니 생겨난 무의식일 것이다. '서열화' 교육에서는 1등부터 한줄세우기를 통해서 누구나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을 학습시킨다. 솔직히 1등이 아니면 다 부족한 것인데 1등도 계속 1등을 할 수는 없으니 결국 모두가 부족한 사람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심리학 서적에서는 내가 단순히 '부족한' 사람이 아닌, 어떤 원인에서 이러이러한 성격을 갖게 된 하나의 독특한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독서를 통해서, 그리고 종교 활동을 통해서 내 마음은 조금씩 치유되었다. 그렇게 보면, 나를 미워하는 그 사람이 내게는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 사람 덕분에 내가 내 모습을 알게 되고, 내가 가지고 있던 비합리적인 신념 또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힘든데 왜 힘든 줄도 몰랐던 내가, 남편과의 결혼 생활이 힘든데 왜 힘든 줄도 몰랐던 내가 나의 모습을 알기 시작하면서 길고 긴 '치유의 여정'에 들어섰다. 이러니 그 사람은 나를 이렇게 살기 위해서 그런 역할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그가 나를 미워하는 만큼, 나 역시 그를 참 많이 미워했었다. 그의 카톡만 보아도, 나와 상관 없는 단톡방의 대화인데도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평소 이미지가 매우 선하기 때문에, 여전히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는 그 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카톡에서도 늘 하트를 연발하며 각종 미사여구와 따뜻한 말들을 쓰는데, 그것들이 나에게는 매우 꼴불견이었다. 마음 속으로 그가 했던 짓(?)들을 생각하며 욕을 해대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이 브런치의 공간도 그 '욕'을 하기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나아졌던가? 나는 그에 대한 욕을 마음 속으로 하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이 더 안 좋아진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 24시간 그의 생각만 하면서, 그가 잘못한 것을 손가락으로 꼽으면서, 처음에는 매우 신이 났으나 어쩐지 그런 것이 점차 힘들어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와 같은 공동체 사람이 아니면 그의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는 결국 그의 욕으로 번졌다. 이야기할 때는 신이 났지만 돌아오고 나면 왠지 허탈해졌다.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그 책을 만났다.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은 한 목사가 정신병에 관련한 치유 사역을 하는 내용이다. 책은 절망으로 가득 차 있다. 정신병에 걸린 아들에게 어머니가 살해당하기도 하고, 병을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악한 세상을, 미움으로 가득한, 너무나도 어둡고 아픈 세상을 그 목사는 외면하지 않고 매순간 최선을 다 한다. 안타까운 일도 있었지만 너무나도 희망적인 일도 있었다. 한 아버지가 있었다. 군인 정신으로 무장한 그 아버지는, 정신병에 걸려 괴로워하는 아들에게 늘 '나약해 빠진 놈'이라고 하면서 그의 병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의 병은 아버지로 인해 발병한 것이고 아버지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아들도 변하지 않을 것이었다. 목사는 그 아버지의 손을 잡고 기도한다. 그리고 그 기도가 끝났을 때, 아버지의 얼굴은 눈물로 덮여 있었다. 그 아버지는 비로소, 아들의 나약함이 아닌 제 자신의 나약함을 바라본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용서를 빌고, 두 사람은 치유의 여정으로 나아간다.


악을 이길 수 있는가. 스캇 펙 박사는 자신의 저서 <거짓의 사람들>에서 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악이라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악이라는 것은, 제 모든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악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생생하게 이야기한 그는 악을 이기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짧고 간명하게 해설한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에 대해서도 설명을 좀 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때 책은 끝나버리고, 공교롭게 그 책을 다 읽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을 보았다.(놀랍게도 <아주...>에는 <거짓의 사람들>이 일부 인용되어 있다. 두 책이 아주 상관이 없는 책이 아닌 것이다.) 나는 이 책이, 스캇 펙 박사가 말한 '선으로 악을 이기는 법'에 대한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을까. 악을 이기는 것은 악이다. 사람이 때리는데 몸을 움츠리면 더 때릴 것이다. 하지만 분명 악을 이기는 선이 있다.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에서 고집불통 아버지의 손을 잡고 기도했던 그 목사는 선으로 악을 이겼다. 이 책에는 수없는 실패담이 있지만 그럼에도 책 전체가 '실패'로 점철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많이 실패하고, 울고, 좌절하고, 넘어지는 일이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일이라고,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나는 선으로 악을 이길 수가 없다. 나는 선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 하여, 나는 그저 노력을 해 보고자 한다. 카톡에서 나를 미워하는 그의 카톡이 뜰 때, 그를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내 마음을 위해 기도한다. 미워하지 않게 해 달라고, 축복하게 해 달라고. 그리고 그의 삶을 축복한다. 그가 잘 되기를, 지금은 비록 마음이 우울하고 힘들지라도 언젠가는 그 우울함을 이길 수 있기를. 예전에 나는 이렇게 하지 못했다. 직장에서 미움을 받았을 때, 나는 나를 미워하는 그를 겉으로는 웃으며 대하면서도 속으로는 욕했다. 결국 나는 그 직장을 나왔고, 나를 미워하는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축복한지 하루 정도 지났다. 이상하게, 나를 괴롭히던, 24시간 동안 그의 생각만 떠오르던 것들이 경감되었다. 그를 만난다고 하면 불안도가 90이상으로 치솟았는데 이제는 한 50정도로 가라앉은 느낌이 든다. 나는 나만의 삶을 살고, 자주 웃고, 내가 해야 할 건강한 생각들을 한다. 더는 내 머릿속에 그가 큰 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물론 종종 생각을 하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이 나에게 그렇게 치명적이지는 않다.


그는 어차피 나의 축복을 모를 것이다. 여전히 나는 그를 만날 때 반갑게 인사를 할 것이니까. 하지만 그를 축복하고 기도하는 나는, 그를 대할 때 좀 더 선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전에는 어색해하고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였다면, 이제는 좀 더 다정하고 따스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앞에서 그의 태도가 어떠할 지는 나는 모르겠다. 여전히 무뚝뚝한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것이 전처럼 두렵지 않은 것은, 그의 태도가 어떠하든 나는 나의 태도로 그를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를 선대하고, 그를 존중하고, 그를 축복하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 비로소 나는 내가 부족하고 모자라다는 생각에서 해방되어 나 자신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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