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너 같은 딸을 낳아서 길러보면 내 마음을 알 거라고. 우리 엄마가 예언가인지, 엄마의 엄마가 예언가인지, 모든 엄마들이 예언가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39주 5일을 고이 품어, 딸을 낳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 같은 딸이 아니라 그냥 딸이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워있던 시절에도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나를 닮은 구석이 무엇인지 정말 부지런히 찾았으니 말이다.
여전히 얼굴만 보면 아빠 딸이다. 하지만 나는, 나와 다른 얼굴을 한 코딱지만 한 녀석에게서 나를 본다. 한솥밥을 먹으면 먹을수록 정말이지 나랑 너무 똑같다. 말하는 것도 어쩜 저리 똑같고, 좋아하는 음식이나 성향도 어찌나 닮았는지 때때로 깜짝 놀라기도 하고 웃음이 새 나오기도 한다. 그래, 음식이나 말투 같은 건 같이 살다 보니 닮아간다지만 신발을 신겠다고 쪼그려 앉은 뒷모습까지 닮을 일인가.
웃을 때 코를 찡그리는 것도, 달리기를 하며 팔과 발을 같은 방향에 두는 엄청난 운동신경(!)도, 긴장을 하면 옷소매를 매만지는 것도, 집중할 때 이마의 잔머리를 만지는 것도 나와 꼭 같은 내 딸. 그러나 감사하게도 완전 복붙이 아니라, 나보다 나은 점이 많은 업그레이드 버전, 가령 "나-ver2"인 나 같으면서도 나와는 다른 "너"로 태어나 주었다. 예민한 성정의 나보다 온화하여 느긋하고 부드러우며, 다정함은 10배 이상을 탑재했다. 나보다 기억력도 좋고, 사소한 변화도 기가 막히게 알아채 자존감을 높여준다. (마스카라 색깔, 0.5센티 자른 앞머리까지도 알아봐 준다.)
손가락 3개쯤을 볼에 받힌 채 잠이든 - 우리 엄마에 의하면 나랑 똑같은 포즈라는 -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지금의 아이를 정밀화 그리듯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여느 엄마가 그러하듯 나의 sns는 아이 이야기로 가득하지만 그 안의 아이는 크로키다. 순간의, 찰나의 모습들. 아직은 그 순간들이 내 머릿속에는 파노라마처럼 남아있다지만, 아이는 자라고 나는 나이 먹어가며 그 순간들이 까물까물해질 것을 안다. 너무나 발달한 시대를 살아가기에 수만 장의 사진과 수천 개의 동영상이 우리의 기억을 대신해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순간을 오래오래 담아두고 싶어졌다. 편지로 기록된 수십 권의 육아일기도 우리의 역사로 남겠지만, 일기보다 담담히 그러나 더 세세하게 아이를 담겨두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