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매일이 "what a wonderful day!"란거 아세요?
7시면 눈을 뜨는 새나라의 어린이가 웬일로 10시경 눈을 떴다. 아무래도 전 날 둘레길을 돌았던 게 피곤했던 모양이다. 잠을 깨고도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누워 햇빛을 쬐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 what a wonderful day에요."
아니, 어디 즐거운데 놀러를 간 것도 아니고 맛있는 것을 먹은 것도 아닌데 눈뜨자마자? 어떤 점이 그렇게 좋냐고 물으려는 찰나 아이가 말한다. "엄마, 사실은 매일이 what a wonderful day에요." 순간 놀랍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먹먹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더니 아이의 말이, 이렇게 푹신한 이불에서 잔 것도, 해님이 이마를 따뜻하게 만들고 있는 것도 너무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나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푹신한 이불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누워있는 아이가 내 아이라서 온 가슴이 꽉 차는 듯 행복해졌다.
대부분의 어린아이들이 그렇지만, 우리 아이는 참으로 맑은 눈을 가진 아이다. 거기에 책쟁이 고유의 표현력이 더해져 때때로 아이의 말을 듣고 있자면 동시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든다. 종종 웬만한 동시보다 나은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는데, 하필 그 발표의 순간이 종이도 휴대폰도 없을 때면 아까워서 내내 그 문장을 중얼중얼 되뇐 적도 있다. 언젠가는 아이와 놀이터에 갔을 때 다른 아이의 엄마가 내게 "시인 꼬마 엄마 시구나!"라며 말을 걸어왔다. 아이가 할아버지와 아파트 화단을 걸으며 며칠 동안 준비만 하더니 드디어 나무가 옷을 갈아입었다고 표현을 하더란다. 그 말을 듣고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나무를 올려다보니, 정말 가을이더라고, 아이 덕분에 가을을 구경했다고 감사인사를 전한 적도 있다.
"하늘에 천사들이 그림을 그렸어. 무지개"
"요정들이 하늘 스케치북에 매일매일 열심히도 그림을 그리나 봐. 구름은 매일매일 다르게 생겼어."
"엄마는 요술상자. 사랑도 응원도 계속 계속 나오지"
"바람요정이 놀러 왔다고 소문을 내나 봐요. 휴지가 팔랑팔랑 거려요."
"그림자는 나를 너무 사랑하나 봐. 한 번도 놓치지 않고 따라오잖아"
"바다는 크레파스 같아요. 여러 색깔이 다 들어있어요."
하루 종일 종알종알 수다를 떠는 아이 눈에는 세상이 그렇게도 맑고 아름다운가 보다. 그런 아이를 보며 "어린아이 같아야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자주 떠오른다. 모든 사람이 저토록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그 세상 자체가 하느님의 나라라는 생각도 함께 말이다.
엄마나 아빠의 말에 의하면, 나도 어릴 때는 그렇게 음유시인이었다고 한다.
"잔디밭 세수하라고 하느님이 비누(흰색 목련 꽃잎을 보고)를 줬나 봐"
"꽃들은 향기를 나누어주는 향기 은행 아가씨"라는 등의 표현을 하곤 했다고. 그때의 넘치던 감성이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때의 내 부모님을 닮아 아이의 말을 '수다'가 아닌 '시'로 받아들이는 고운 귀를 가진 "좀 괜찮은 엄마"가 된 것은 분명하다. 아이의 문장을 소중히 받아 적는 섬세한 엄마 말이다.
아이가 얼마나 더 오래 시인으로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의 세상이 언제까지 what a wonderful day일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시간이 단 하루라도 더 길어질 수 있도록 아이의 세상을 잘 지켜주는 것이 내 몫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귀기울임이 아이의 시를 더 아름답게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아이 덕분에 나의 매일 역시 nothing better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