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읽는엄마곰 Feb 25. 2022

엄마, 뭐가 되고 싶었어?

일단은 제1호 구독자를 얻었습니다. 

엄마, 엄마는 어른이 되면 뭐가 되고 싶었어?

음, 동화작가?

그런데 왜 작가님을 하지 않았어? 왜 대리님을 했어?

하지 못한 거야. 너무 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못한 거야. 

왜? 엄마가 동화를 멋지게 못썼어? 

엄마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없나 봐.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말도 안 돼. 나는 저 동화책들보다 엄마의 잠 잘 오는 이야기가 훠어얼씬 재미있는데.

그리고 엄마는 아직도 어른이니까, 지금도 되면 돼.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에, 내가 한글을 제대로 이해하고 읽고 쓸 무렵부터 나의 꿈은 동화작가였다. 아주 잠시 아나운서를 꿈꾸었다고 하던데, 기억 밖의 일이다. 내 기억 속의 내 장래희망은 오직 딱 하나, 작가였다. 뭐 뻔한 이야기지만, 나는 동화작가가 되지 못했다. (아직까지는. 아 아직도 아직까지는 이라고 기록하는 내가 너무 싫다. 미련이 너무 길어.) 그럴듯한 장래희망 스토리를 만들어 둘러댈 만큼 뻔뻔하지 못한 나는 딸에게조차 꿈을 이루지 못한 대답을 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그 누구에게 하는 말보다 더 속이 상한다. 

 

아이가 다양한 미래를 꿈꿀 때마다 늘 말해주었다. "넌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슨 일을 하며 살게 될지 아무도 몰라. 그래서 더 재미있는 거야"라고. 거짓말은 아니다. 그 시절 내가 뭘 하며 살게 될지 몰라던 것도 사실이고,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직업을 유지하며 고되긴 했으나 돈도 꽤 벌었고, 힘겨워도 인정은 많이 받았다. 부지런히 직장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초반 5,6년 정도는 각종 공모전에 내 원고를 보냈다. 그 원고들 중 잘 풀린 것들조차 그저 소소한 용돈벌이였을 뿐 이렇다 할 실적을 낸 글은 없었다. 그 마저도 아이를 가지고 낳으며 하지 않고 살았으니 아아의  눈에 동화작가가 꿈이었다는 엄마의 말이 생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아이는 1초도 뜸을 들이지 않고 엄마의 재능을 믿어주었다.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해준 "엄마의 잠 잘 오는 이야기"도, 아이와 재미로 만들어온 수십 권의 그림책도 아이에게 헛 것은 아니었나 보다.  "나는 엄마가 해준 이야기 중에서 '찹쌀이의 모험'이 제일 재밌어.  글씨는 엄마가 잘 쓰니까 엄마가 쓰고, 내가 그림을 그려줄게. 우리가 책을 만들어보자."는 아이의 말이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났다. 1년 사이 전국대회 글짓기 상을 몇 개나 받아왔을 때도 엄마 아빠도 선생님도, 글을 계속 쓰라고 해주지 않았다. 그저 그것을 바탕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하라는 게 전부였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나 스스로도 인정하지 못하는 내 재능을 아이는 한 번의 의심도 없이 오롯이 믿어주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아이에게도 거룩한 일이겠지만, 사실은 엄마에게 더 거룩하다. 아이를 주어로 두자면 적어도 몇 년간은 오직 내가 절대적 존재인 생명체. 내가 하는 말 한마디가, 내가 주는 음식 하나가, 내 행동 한 번이 한 사람을 바꾸고, 한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그러나 엄마를 주어로 두자면 평생 나에게 있어 절대적인 생명체, 말 한마디, 음식 하나 행동하나 쉬이 하지 못하는 존재, 내가 얼룩 하나 없는 새 거울이 되어야 하는 존재가 되는 일이다. 그런 거룩한 존재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의 것이라고 한다. 몇 년 간 몇 번이나 듣고도 여전히 눈을 반짝이며 즐거워한다. 


그런 아이를 보며, 내가 어떻게 다시 꿈을 꾸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에게 늘 꿈을 꾸며 행복하라고 말하면서 어찌 나는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빈종이만 발견해도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고, 4살부터 꾸준히 자신만의 그림책을 만들어오는 너를 보며, 내가 꿈을 꾸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바람은 차고 햇살은 따뜻한 어느 오후, 아이와 나란히 앉아 그림책을 만들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지금도 작가님이 하고 싶냐고. 그렇다는 나의 대답에, 언제인가 찹쌀이의 모험 시리즈가 꼭 세상에 나올 거라며 내 등을 토닥인다. 


내가 아이를 기르는 것인지, 아이가 나를 키우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문득 내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나는 엄마의 꿈을 물어본 적이 있던가. 그렇게 나 같은 딸을 낳으라고 한 엄마는, 지금의 내 딸보다 덜 다정한 딸을 키운 것이 못내 죄송스럽다. 내일 아침 해가 뜨면, 우리 엄마 꿈은 무엇이었는지 물어봐야지. 그리고 다시 꿈도 꾸어야지. 


솔직히 잊고 살았다. 어른도 꿈꾸어도 되는 것을, 어른도 여전히 장래희망 같은 게 있어도 되는 것을. 그리고 꿈에는 "잘해야 한다"는 전제가 없는 것을 정말 완전히 잊고 살았다. 꿈을, 정말 순수한 의미로  '꿈'이라 해석해주는 맑은 영혼 덕분에 온 마음이 가득히 행복하다. 





 


이전 14화 그 많던 간식은 누가 다 먹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