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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곰 Feb 22. 2022

그 많던 간식은 누가 다 먹었을까.

너만 모르는 이야기

"엄마! 어제는 분명히 이 통에 가득 있었는데, 지금은 별로 없어요!" 아이가 볼멘소리를 한다. 설거지를 하느라 고개를 들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말하는 '이 통'이 무엇인지 뭐가 별로 없다는 것인지 정확히 안다. 식탁 위에 얹어진 간식통. 요즘 우리 아이의 보물상자다. 아마도 또, "간식 먹는 요정"이 다녀갔다보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많은 원칙을 세운 것은 아니나 그래도 몇 가지  원칙을 세운 게 있다면 독서와 역사는 반드시 알려주자, 몸에 좋은 맛있는 것들을 알려주자,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적으로 아이를 키우자, 지식보다는 지혜를 주는 부모가 되자 같은 것들이었는데 (이렇게 적고 보니 은근히 많았구나. 미안.) 다행히도 아이가 그것을 꽤 잘 따라와 주었고, 아이를 키워주시는 엄마나 아빠와도 이견이 없어 원칙은 잘 지켜지는 편이었다.


그러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게 되며 간식 맛을 알게 되었고, 편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 너무도 잘 먹던 익은 야채를 안 먹고 싶다고 말하기에 그 이유를 물으니, '친구들이 안 먹더라'는 황당하지만 너의 세계에서는 합당했을 이유도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여 생 야채 위주로 제공을 했고(다행히 금방 다시 돌아옴), 간식을 먹는 것도 백번 양보하여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이라는 육아 선배들의 말을 듣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럼에도 건강한 미각을 완전히 잃고 싶지 않았던 내가 낸 꾀가 종이컵만큼만 제공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과자를 뜯어 종이컵 위로 튀어나오지 않을 만큼만 담아주고, 통에 담는다. 아이는 몇 입 되지 않는 그 과자를 매우 소중히 먹었고, 내일 먹게 될 통 안의 과자를 보며 매우 행복했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이 글을 여기까지 보게 된다면 기대감에 다음날 과자가 더 작게 느껴졌다 생각하겠지만, 아니 그렇지 않다.


나는 아이가 잠이 들면 과자를 한 움큼 덜어 개수대에 버렸다. 서서히 물에 녹는 과자를 보며 안도했다. 혹여나 밖에서 간식을 먹는 상황이 생기면 아이가 보지 않을 때 한 움큼 내 입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라도 아이의 건강한 입을 남겨두고 싶었다. 언젠가 한 번은 과자를 입에 넣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린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휘둥그레진 아이 눈을 바라보며 "아이고 배고파."라는 발연기를 시전 했다. 착하고 고운 우리 아이는 "우리 엄마 배고프구나, 나는 괜찮으니까 이거 다 먹어."라며 나를 위로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며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며 입맛을 지키는 것이 우선인지,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우선인지 번뇌했다.


 나의 하얀 거짓말은 점점 뻔뻔해져 아이가 조금 더 자라 간식통에 간식이 줄어든 것을 눈치챌 무렵에는 "간식 먹는 요정"까지 만들어냈다. "어머ㅡ 어젯밤에 창문에 정이 왔다 갔다 하더니 간식 먹는 요정이었나 보다. 우리 찹쌀이 과자를 먹고 갔네?" 등의 연기를 꽤 능숙하게 해냈다. 대종상 감의 벽한 연기였던지 아이는 요정도 배가 고팠나 보라며 쿨하게 양보를 선언했다.


그러나 요정의 욕심이 너무 지나쳤나 보다.  

점심을 먹고 기분 좋게 간식통을 보던 너는 평소와 달리 크게 절망한다. 급기야는 "요정 얘는 쬐끔해서 한 개면 배가 부를 건데 욕심도 많게 다 갖고 갔네!!!"라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다. 또다시 번뇌가 시작되었다. 이쯤 되면 아이의 과자를 그만 버려야 하는 것일까, 간식 먹는 도깨비 등 덩치가 조금 더 큰 녀석을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





요정의 존재가 아닌, 요정의 욕심을 속상해하는 아이를 보니 웃음이 난다.  

어쩌면 엉뚱한 것까지 닮는다는 말인가!


나도 참 엉뚱한 아이였다. 여기저기 불을 켜 두면 전기세가 나온다는 엄마의 잔소리에 진짜 새가 나오는 줄 알고 온 집에 불을 켜놓은 채 바구니를 들고 새를 기다리던 아이. 달팽이가 풀을 많이 먹어서 초록 똥을 싼다는 책을 보고 집에 있던 모든 야채를 먹고 신문지에 똥을 싸던 아이. 엉뚱한 아이는 여전히 상상하기를 좋아하고, 글을 좋아하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아이의 엉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부모의 인내 덕분이라는 생각을 이제야 해본다. 이래서 우리 엄마는 그토록 나에게 딱 나 같은 딸을 낳으라고 했나 보다.


나도 이의 엉뚱함을 그대로 사랑해야지 하다가, 아까의 고민을 떠올렸다.

아직은 요정이 과자를 너무 많이 먹어서 뚱보먹보가 된 것쯤으로 마무리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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