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뭐가 되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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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곰

엄마, 엄마는 어른이 되면 뭐가 되고 싶었어?

음, 동화작가?

그런데 왜 작가님을 하지 않았어? 왜 대리님을 했어?

하지 못한 거야. 너무 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못한 거야.

왜? 엄마가 동화를 멋지게 못썼어?

엄마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없나 봐.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말도 안 돼. 나는 저 동화책들보다 엄마의 잠 잘 오는 이야기가 훠어얼씬 재미있는데.

그리고 엄마는 아직도 어른이니까, 지금도 되면 돼.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에, 내가 한글을 제대로 이해하고 읽고 쓸 무렵부터 나의 꿈은 동화작가였다. 아주 잠시 아나운서를 꿈꾸었다고 하던데, 기억 밖의 일이다. 내 기억 속의 내 장래희망은 오직 딱 하나, 작가였다. 뭐 뻔한 이야기지만, 나는 동화작가가 되지 못했다. (아직까지는. 아 아직도 아직까지는 이라고 기록하는 내가 너무 싫다. 미련이 너무 길어.) 그럴듯한 장래희망 스토리를 만들어 둘러댈 만큼 뻔뻔하지 못한 나는 딸에게조차 꿈을 이루지 못한 대답을 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그 누구에게 하는 말보다 더 속이 상한다.


아이가 다양한 미래를 꿈꿀 때마다 늘 말해주었다. "넌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슨 일을 하며 살게 될지 아무도 몰라. 그래서 더 재미있는 거야"라고. 거짓말은 아니다. 그 시절 내가 뭘 하며 살게 될지 몰라던 것도 사실이고,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직업을 유지하며 고되긴 했으나 돈도 꽤 벌었고, 힘겨워도 인정은 많이 받았다. 부지런히 직장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초반 5,6년 정도는 각종 공모전에 내 원고를 보냈다. 그 원고들 중 잘 풀린 것들조차 그저 소소한 용돈벌이였을 뿐 이렇다 할 실적을 낸 글은 없었다. 그 마저도 아이를 가지고 낳으며 하지 않고 살았으니 아아의 눈에 동화작가가 꿈이었다는 엄마의 말이 생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아이는 1초도 뜸을 들이지 않고 엄마의 재능을 믿어주었다.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해준 "엄마의 잠 잘 오는 이야기"도, 아이와 재미로 만들어온 수십 권의 그림책도 아이에게 헛 것은 아니었나 보다. "나는 엄마가 해준 이야기 중에서 '찹쌀이의 모험'이 제일 재밌어. 글씨는 엄마가 잘 쓰니까 엄마가 쓰고, 내가 그림을 그려줄게. 우리가 책을 만들어보자."는 아이의 말이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났다. 1년 사이 전국대회 글짓기 상을 몇 개나 받아왔을 때도 엄마 아빠도 선생님도, 글을 계속 쓰라고 해주지 않았다. 그저 그것을 바탕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하라는 게 전부였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나 스스로도 인정하지 못하는 내 재능을 아이는 한 번의 의심도 없이 오롯이 믿어주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아이에게도 거룩한 일이겠지만, 사실은 엄마에게 더 거룩하다. 아이를 주어로 두자면 적어도 몇 년간은 오직 내가 절대적 존재인 생명체. 내가 하는 말 한마디가, 내가 주는 음식 하나가, 내 행동 한 번이 한 사람을 바꾸고, 한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그러나 엄마를 주어로 두자면 평생 나에게 있어 절대적인 생명체, 말 한마디, 음식 하나 행동하나 쉬이 하지 못하는 존재, 내가 얼룩 하나 없는 새 거울이 되어야 하는 존재가 되는 일이다. 그런 거룩한 존재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의 것이라고 한다. 몇 년 간 몇 번이나 듣고도 여전히 눈을 반짝이며 즐거워한다.


그런 아이를 보며, 내가 어떻게 다시 꿈을 꾸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에게 늘 꿈을 꾸며 행복하라고 말하면서 어찌 나는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빈종이만 발견해도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고, 4살부터 꾸준히 자신만의 그림책을 만들어오는 너를 보며, 내가 꿈을 꾸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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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차고 햇살은 따뜻한 어느 오후, 아이와 나란히 앉아 그림책을 만들다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지금도 작가님이 하고 싶냐고. 그렇다는 나의 대답에, 언제인가 찹쌀이의 모험 시리즈가 꼭 세상에 나올 거라며 내 등을 토닥인다.


내가 아이를 기르는 것인지, 아이가 나를 키우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문득 내 엄마에게 미안해진다. 나는 엄마의 꿈을 물어본 적이 있던가. 그렇게 나 같은 딸을 낳으라고 한 엄마는, 지금의 내 딸보다 덜 다정한 딸을 키운 것이 못내 죄송스럽다. 내일 아침 해가 뜨면, 우리 엄마 꿈은 무엇이었는지 물어봐야지. 그리고 다시 꿈도 꾸어야지.


솔직히 잊고 살았다. 어른도 꿈꾸어도 되는 것을, 어른도 여전히 장래희망 같은 게 있어도 되는 것을. 그리고 꿈에는 "잘해야 한다"는 전제가 없는 것을 정말 완전히 잊고 살았다. 꿈을, 정말 순수한 의미로 '꿈'이라 해석해주는 맑은 영혼 덕분에 온 마음이 가득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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