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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곰 Feb 25. 2022

아카펠라를 배우고 싶어요.

"소리로 협동하는 아름다운 노래"에 대해. 

엄마. 나도 아카펠라를 배우고 싶어요. 

아카펠라를? 

응, 아까 아카펠라를 듣는 데 눈물이 나려고 했어.

엄마는 그냥 신나는 노래 같던데, 왜 눈물이 나려고 해? 

소리로 협동하는 아름다운 노래 같았어. 그 점이 제일 멋져. 







저녁을 두둑이 먹고, 과일도 한 접시 뚝딱하더니 자신의 그릇을 싱크대에 옮겨놓는다. 씩씩한 인사와 함께 주방에서 나간 아이는 평화롭고 자연스럽게 스피커 앞에 서서 "친구야, 아카펠라 들려줘"를 외친다. 요즘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아카펠라. 


원래 첼로 연주곡을 좋아했던 터라 임신을 했을 때에도, 출산 후에도 자연스럽게 클래식을 주었다. 언젠가부터 아이는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면 자연스럽게 스피커에게 어린이 클래식을 요청했다. 통신사를 바꾸지 않은 탓에, 어린이 클래식 순서는 참으로 한결같았고 그것을 5년쯤 듣고 나니 아이도 나도 좀 지겨워졌다. 그때부터 재미 삼아 들려준 것이 국악, 뉴에이지, 팝, 아카펠라, 샹송 등이었다. 그중 아이가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것은 국악이었고, 가장 최근에 또 가장 길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카펠라다. 특히 인어공주에 삽입된 under the sea의 아카펠라 버전은 각기 쌓은 화음을 전부 알만큼 많이 들었다.   


설거지가 끝나도록 혼자 책을 읽고 있기에 나도 펜을 들고 앉았다. 잠시 글씨 연습을 했을까. 색연필과 컬러링북을 들고 온 아이가 내 앞에 앉았다. 빵집 광고에 나와 유명해진 샹송을 신나게 따라 부르며 색칠을 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났다. 







이 아이는 정말 내 영혼의 짝꿍인가. 어쩜 이렇게도 취미까지 닮는다는 말인가. 캘리그래피를 따라 하더니 그럴듯한 작품(?)으로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고, 그림책 수십 권을 집필(?)하며 그림솜씨를 자랑하는 동시에 이야기꾼 임도 증명했다. 하얗고 빨간 딸기찹쌀떡 같은 게 내 앞에 앉아 고개를 까닥거리며 색칠을 하고 있는 걸 보는데 뭐랄까, 웃기기도 하고 찡하기도 했다. 나랑 같이 살아서 나를 닮는 것인지 원래부터 그런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정말 같이 놀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만큼 잘 맞는 사람인 것 같다. 


정수리가 따가웠나. 열심이던 아이가 고개를 들고는 지금 집중하는 중인지 아닌지를 묻는다. 아니라고 대답하니 대화 좀 할까, 하며 제법 비장하다. 이제 겨우 7살이 된 어린이가 뭐 이리 비장한가 싶어 들어보니 아카펠라를 배우고 싶단다. 언뜻 생각을 해도 아카펠라를 가르치는 곳이 많지는 않을 듯하고, 특히나 이런 시골마을엔 전무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배우고 싶은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아이의 대답이 너무 놀라웠다. "소리로 협동하는 아름다운 노래"라니. 아이가 아카펠라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도, 그것을 협동이라고 받아들이는 마음도 너무 기특했다.   


아이의 언어가 선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지만, 종종 하는 말들이 놀라울 때가 있다. 저 아이의 안에 어떤 마음과 생각이 들어있기에 저런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무엇을 하다 실패하면 아이는 스스로의 팔을 토닥이며 "괜찮아, 다시 해보자!"하고 말을 하고,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도 응원의 말이나 감사의 말을 참 서슴없이 전한다. 


물론 도치맘이라 더 그렇겠지만 사실 나는 속으로, 나보다 나은 녀석이라는 생각을 꽤 자주 한다. 


나도 낙천적인 편이지만 전적으로 지지하는 마음은 쉽지 않음을 안다. 같은 것을 몇 번이나 잘 해내지 못했거나 실수했을 때면 더욱 그렇고. 언젠가 아이의 유치원 선생님이 내게 "다시 해보자"는 말을 따로 가르쳐주었나를 물으셨다. 아이가 학기초에 줄넘기를 전혀 하지 못했었는데, 바깥놀이 시간마다 줄넘기를 도전한 뒤에야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고. 그래서일까. 학기가 끝날 무렵 아이는 무려 2개의 줄넘기를 한다. 운동신경 자체가 아예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이의 2개는 더 값진 것이다. 운동을 재미있어하지도 않고,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도 않는데 그것을 1년간 유지하는 사람이라니. 

그 에너지와 끈기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테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자, 두말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 아이가 인덱스를 붙인다. 심지어는 나처럼 손등에 두어번 눌렀다때서, 접착력을 최대한 줄인 뒤에 붙였다. 그렇게 사소한 것들도 놓치지 않고 바라봐주었구나. 너는 늘 그렇게 나를 보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하다. 


오늘도 나를 꼭 닮은, 그러나 나보다 많이 나은 녀석 덕분에 나도 하루치 더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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