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빠'를 끼워 넣어주었다.
엄마, 내가 부를 때까지 내 칠판 절대 보지 마.
엄마, 이제 칠판 봐.
"사랑해. 내 엄마가 되조서 고마워"
어머, 엄마도 너무 사랑해. 내 딸이 되어줘서 고마워.
아빠는 안 써줘? 너네 둘이만 사랑하냐?
알았어, 뭐. 아빠도 끼워줄게.
"사랑해, 내 엄마(-틈새에- 아빠가) 되조서 고마워"
아이와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기도 하고, 보통 아이와 둘이 집에서 독후활동이나 미술놀이 등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보니 우리 집 인테리어는 거의 둘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우리 집 거의 대부분이 나와 아이가 사용하는 공간이다. 드레스룸이나 신발장도 내 것과 아이 것이 주를 이루다 보니 우리 집에서는 아이 아빠의 지분이 별로 없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아이가 꽤 자라는 동안 심리적으로도 그랬다. 새벽부터 늦게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많고,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하는 편도 아닌 무뚝뚝한 사람인지라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심리적 지분이 크지 않았다.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당연히 친밀도가 높았고 아이 아빠는 한걸음 물러서 있는 사람이었다. 하긴 엄마랑 둘이 먹고, 엄마랑 둘이 엄마랑 놀고, 엄마랑 둘이 다니는 시간이 80%쯤 되는데 그렇지 않은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닐까.
그렇게 우리 셋 모두, 그것에 익숙한 채 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살고 있다.)
지난겨울부터 최근까지 나는 휴직으로 시간이 많아지고, 아이 역시 코로나 사태로 잠정 방학을 맞았던 터라 24시간 내내 우리는 초밀착을 유지했다. 집에 내내 있다 보니 집에서 놀 다양한 거리가 필요하기도 했고, 더 잘 놀기 위한 방으로 몇몇 가구를 바꾸고, 집의 배치를 바꾸었다. 아이 나이와 패턴에 맞춘 이동이었다. 사실 예전 같았더라면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딱히 남편에게 부탁하는 타입도 아니고 아이 아빠 역시 크게 관여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어라, 이거 바뀌었네?" 정도로 끝났을 것들인데, 웬일로 이번엔 아이 아빠가 참여를 했다. 아이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아빠, 엄마 말대로 나랑 좀 적극적으로 시간을 보내주지?"라는.
아이 아빠는 뒤통수라도 한 대 맞은 듯 멍한 표정으로 서있다가, 늦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빠가 큰 소리로 웃자 아이도 내심 웃겼는지 같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것봐, 같이 웃고 노니까 좋지?" 하는 아이에게 미안함과 기쁨이 섞인 얼굴을 보이던 아이 아빠는 적극적으로 집의 변신을 도왔다. 내 감독하에 아이는 분주히 물티슈로 이것저것을 닦았고, 아빠는 D.I.Y가구를 조립했다. 혹시 저렴해서 직접 만드는 거냐는 볼멘 질문에 "아니, 예뻐서"라며 단칼에 잘라도 큰 불평 없이 가구를 조립했다.
아이가 가장 기뻐한 것은 본인의 칠판이 식탁 옆으로 이사를 한 것이었다. 내가 식사를 준비할 때 혼자 있는 것이 싫어, 본인의 큰 칠판을 두고 나의 플래너 보드에 그림을 그리고 노는 것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식탁 옆으로 칠판을 옮겨주었더니 깍깍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그러더니 칠판에 "사랑해. 내 엄마가 되조서 고마워"라고 커다랗게 적어 나를 부르더라. 그때 가구를 만든 잔해를 치우던 아이 아빠가 "아빠는? 아빠는 안 써줘? 너네 둘이만 사랑하냐?" 라며 장난을 걸었다. 평소 아빠가 사랑한다고 말을 해도, 응- 정도의 대답을 할 뿐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던 아이라 어떻게 하려나 싶어 가만히 바라보니, 웬일로 쿨하게 아빠를 적어준다. 비록 틈새에 써넣어 작은 글씨지만, 엄청난 발전이다.
사실 아이와 아빠의 관계를 걱정한 날이 많았다. 나에게는 잘하지 않아도 되니, 아이에게는 좀 잘해주라고 부탁한 날도 많았고. 그러나 그 의견들은 잘 반영되지 않았고, 나도 아이도 우리끼리 지내는 시간에 익숙해져 왔다. 아이가 먼저 내민 한 마디의 말은 그렇게 작은 변화를 가지고 왔다.
잠자리에 누워 아이에게 오늘 멋있었다고 말을 해주었다. 먼저 손 내민 것도, 요구사항을 말한 것도 (배려가 많은 아이라 나, 할머니 외에는 요구사항을 잘 말하지 않는 편이다.), 칠판에 아빠를 적어준 것도 멋있었다고. 그러자 아이는 더욱 깜짝 놀랄 말을 한다. "노력하는 게 마음에 들었어. 내가 적극적으로 놀자고 해도 안 그럴 수도 있잖아? 많이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가구도 만들고, 엄마 따라 청소도 하고 노력하는 게 마음에 들었어. 그래서 써줬어."란다.
7살짜리 아이의 말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 아이가 잠든 후에 곱씹어볼수록 내 마음은 더 멍해졌다. 나는 노력하는 자체를 훌륭하다고 받아들여준 적이 있던가. 아이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 아니 나 스스로에게도 노력하는 자체를 훌륭하다고 받아들여준 적이 없는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에게도 어쩌면 가짜 응원을 보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다시 생각해본다. 가진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 노력 그 자체를 바라봐주는 것, 행복 그 자체에 감사하는 것, 지금 이대로에 만족하는 것. 나도 아이를 닮아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지. 이렇게 사랑 많은 아이가 내 아이라니 너무나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아무래도 우리 엄마는 나 같은 딸을 낳으라고 말해놓고 속으로는 "너보다 나은 딸"을 낳으라고 기도해줬나 보다. 내일도 노력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