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짝 스메싱을 맞지 않아도 되는, 그러나 망설이는. 오 나의 사춘기여!
거실 가득히 햇살이 들어차면 내 마음도 환해진다. 햇살을 머금은 책장은 저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속삭이고 돌고래 모양 썬 캐처는 봄바람에 일렁이며 오로라 빛깔을 뿜어낸다. 그럴 때면 나는 또 참치 못하고 에스프레소 한 잔을 내리는 것이다. 굳이 너른 식탁이나 소파를 두고 창가에 서서 커피를 마신다. 놀이터를 채우는 아이들의 소리와 새소리, 하다못해 새로 짓고 있는 고등학교의 공사 소리조차 박자를 맞춘 오케스트라 같이 느껴진다. 세상의 소리에 이토록 귀를 기울인 적 있었나. 사람의 마음은 이토록 간사하다. 소음이라고 생각하던 것들도 내 마음이 편해지니 나름의 박자를 가진 것 같다.
햇살이 좋아 책을 한 권 더 읽고, 햇살이 좋아 글도 하나 쓰고. 햇살이 좋아 음악도 듣는다. 비 오는 날은 또 비가 오는 대로 비가 좋아 책을 한 권 더 읽고, 비가 좋아 글도 하나 쓰고, 비가 좋아 음악도 듣는다. 사실 햇살도 비도 그저 핑계고 그저 내가 하고 싶어서 모든 것을 한다. 이방원은 일찍이 이런 마음을 알고 그런 시를 썼던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저 내 하루는 평온하고 행복한 것을.
남들은 10대 후반에나 한다는 사춘기를 나는 30대 후반에서 하고 있다. 10대의 사춘기는 겪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겪었어도 이미 기억 밖의 일) 30대의 사춘기가 10대보다 나은 점은 내생계는 콩나물만 먹더라도 내가 책임질 수 있으니 엄마에게 등짝 스메싱을 맞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 나쁜 점은 자칫하면 가족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튼 휴직계를 던지고 만끽하고 있는 30대의 사춘기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읽고 평소보다 더 자주 쓰고 있으니 비교적 생산적인가.
오늘은 30대의 사춘기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30대와 사춘기. 사춘기와 30대. 누군가는 이 조합이 대체 뭐냐고 물어보실 것도 같다. 초록 창의 어학사전을 봐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인이 되어가는 시기라고 하니 30대 후반과 사춘기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10대 후반에 정신이 어른이 된다는 것은 "10대일 때 할 수 있는 착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의 꼰대력일까. 나만 그런지 몰라도 30대 후반이 된 나도 여전히 내 정신이 성인이 되지 못한 것 같은데 어떻게 10대에 그런 것들이 완성된다는 것일까. 그 말이 마치 20살이 되면 몸도 마음도 다 성장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려 슬프기까지 하다.
30대 후반에 사춘기를 하니 좋은 점이 꽤 있다.
가장 먼저 마음이 펄렁일 때 비교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다면 시동을 걸면 된다. 휴직기간이라 돈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커피 한잔, 점심 한 끼 사 먹을 돈과 기름값 정도는 있다. 누구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나는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당장에 서점으로 달려가도 된다. 학창 시절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너무 좋아 내 책장에도 꽂아두고 싶을 때 나는 일주일간 초콜릿 우유를 사 먹지 못했다. 용돈을 부족하게 주시지도 않았고, 책을 안 사주시는 것도 아니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던 거다. 그거뿐인가. 울적한 날 돈지랄(!)을 할 수 있기도 하고, 아무 이유 없이 꽃다발을 사도 된다.
다음으로는 내 판단은 오롯이 내가 담당할 수 있음도 분명하다. 그 시절의 나는 내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틈이 없었던 게 너무 오래도록 같은 꿈만을 꾸었기에 주변에서도 익히 나를 알았고, 배고픈 "작가"대신 배고프지 않을 수 있는 그 어떤 것들을 주변에서 지속적으로 제시하셨다. 그래서 등 떠밀리듯 끝나버린 미래에 대한 고민을 지금에서야 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의 나는 오롯이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 살며 여러 번 좌절도 배웠기에 나에 대해 조금 더 냉정할 수도 있고.
그 외에도 새벽 조깅을 할 수 있는 것. 밤늦게까지 드라마를 몰아봐도 되는 것 등 '시간'에 대한 자유와, 여러 가지 정보를 보다 다양한 창구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술이라도 한잔 기울일 수 있는 것 등 '어른'이라서 가질ㅇ 수 있는 자유를 가진 비교적 넉넉한 고민쟁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그렇다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30대의 사춘기는 망설임이 많다. 10대에는 생각과 실천의 거리가 짧다. 생각과 동시에 뭔가를 실천할 수도 있는 실천형 인간이었던 사람도 30대 후반이 되면 망설인다. 하물며 원래도 고민하고 망설이던 나는 오죽하겠는가. 지금의 순간 자체를 꽤 오랫동안 고민하고, 앓으며 쟀다. 지금 역시 때때로 마음에서는 줄다리기를 한다. 안정적 현실과 이상적 현실 그 사이에서 나는 늘 줄다리기 중이다. 아마 그 고민은 최종 선택 순간에도 할 것이고, 선택한 후에도 곱씹겠지.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햇살을 밟고 서서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이다. 햇살이 따뜻하게 만들어놓은 방바닥의 온기에서 평화로움을 찾고, 커피 잔을 가득 채운 커피 향에서 여유로움을 찾는다. 아이의 웃음소리에서, 우리 집 도마에서 또각이는 소리에서, 나의 키보드가 몸살 하듯 내는 소리에서 내 삶의 오케스트라를 찾는다.
수없이 이어지는 마음의 줄다리기 위에 가만히 손을 얹어 그런 줄다리기는 잠시 쉬어도 좋다고, 지금은 그저 평화로이 커피나 마시자고 내 마음에 이야기를 건넨다.
망설임이 가득한, 그러나 그럼에도 평온한 오 나의 사춘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