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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곰 Mar 20. 2022

지금의 나는 꽤 행복한 사람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꼭 뭔가를 해야 하나요?

독서등에 의지해 한참 책을 읽다 고개를 들면 세상이 유독 까맣게 느껴진다. 책을 비추던 불이 밝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공간이 어둡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그 명암의 경계는 흐려지지만 그 찰나의 순간은 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밝게 빛나 보이던 순간들로 인해 다른 순간들을 오히려 더 어둡다고 느껴온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 밝게 빛나던 것들이 주변의 빛을 보지 못하도록 시선을 빼앗은 것은 아닐까. 무엇이 맞는지 알 수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몇몇은 내가 그 밝게 빛나던 곳들을 버리고 어둠으로 숨어버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 지금의 나는 지금 꽤 행복한 사람이다. 살짝 비켜서서 바라보니 오히려 다른 곳이 명확히 보이고, 숨죽인 채 가만히 세상의 숨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어른이 되고 처음, 커피를 마실 때 꼭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릴지 모르나, 커피를 마시며 오롯이 커피만 마셔도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어른이 된 것은 스무 해가 살짝 못되었고, 커피를 마신 것은 스무 해 가득인데 그것을 이제야 알았다. 고등학생일 때엔 공부는 못하지만 학교에서 하라니까 하던 야자를 끝내고 돌아와 맛도 잘 모르는 커피를 엄마 몰래 마시며 책(성적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을 읽었고,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은 커피를 팔기 위해(!) 커피를 마시며 버텼다. 직장인이 돼서는 회의에 보고할 서류를 보거나, 회의를 하거나, 기타 등등의 일을 하며 커피를 마셨는데 마셨다기보다는 일부러 살짝 식혀 드리 부었다는 말이 더 적합한 것 같다.  에스프레소를 즐겨마시기에 양이 많지도 않은 커피잔에게 내어줄 5분도 없었던 것이다.


돌아보면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참 부지런히 살아왔다. 학교 다닐 때에도 어른이 되면 한가하게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하에(내가 평생에 한 판단 중 가장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온갖 장편소설들을 도장깨기 하듯 읽어댔다. (대중교통을 타지 않는 어른들은 읽을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는 토지, 태백산맥, 아리랑 등은 모두 그때에 다 읽은 것들이다.) 대학교 때도 교내 아르바이트, 커피숍 아르바이트, 아이스크림가게 아르바이트 등을 꽤나 부지런히 했다. 직장생활? 말해 무엇하리. 천성이 엉덩이가 무겁지 못한 나는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사무실 청소, 비품 정리까지 도맡아 했다. 업무 욕심도 많아 회의시간이면 모두 장의 얼굴을 피해도 나는 묵묵히 일을 분배받았다. 그게 잘하는 건 줄 알았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내 삶이 깜깜해 보였던 거다.  


아이를 위해 돈을 번다고 생각했는데, 돈을 벌기 위해 아이가 뒷전인 순간들이 꽤나 있었다. 밥 먹고 살겠다고 다니는 직장인데 정작 나는 밥을 굶고 일하는 날도 있었다. 타인의 만족을 채우다 보니 정작 내 마음은 가뭄이라도 든 냥 버석버석 말라가고 있었다. 사람이 참 무서운 게, 나에게 나있는 구멍을 발견하면 더 빨리 터져버린다. 모를 때는 마음이 줄줄 세고 있어도 모르는데, 알게 되는 순간부터는 감당이 안된다. 나는 그렇게 한순간에 저수지의 벽을 무너뜨리듯, 오랫동안 유지되어오던 것들을 터트렸다.










그런데 나는 꽤 행복해졌다.  


엄마와 보내는 일요일 저녁이 아쉬워 쉬이 잠들지 않으려는 아이를 억지로 재우지 않아도 되고, 일요일 오후에도 분리수거를 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인상을 쓰지 않아도 된다. 더는 조찬회의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니 월요일 아침이 두려울 일이 없고, 분리수거는 월요일 오후에 내가 천천히 해도 된다. 일요일마다 우리 집에 흐르던 긴장감이 사라지니 우리 가족은 모두 꽤나 평온해졌다.


뜨거운 커피를 홀홀 불어가며 온전히 커피만 마셔도 되고, '졸지 않기 위해 서서'가 아니라 느긋하고 편안하게 앉아 천천히 필사를 하며 책을 읽어도 된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공원을 걸으며 햇살이 주는 힘을 얻을 수도 있고, 친구들의 이야기에 호응할 수 있게 드라마를 볼 여유도 생겼다. 천천히 걸어 엄마 집에서 엄마와 같이 점심을 먹을 수도 있고, 엄마의 장거리 운전수도 될 수 있다. 등에 닿는 햇살 한 줌에도, 식탁에 놓인 프리지어의 향기에도, 우산을 톡톡 두드리는 빗방울에도, 맛있게 비벼진 밥 한술에도, 작은 머그컵을 채운 커피 한잔에도 쉽게 행복해진다.  


문득 사람이 여유가 없다는 것은, 마치 시계에 밝은 빛을 비추고 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계를 비추는 빛 때문에 그 주변의 행복, 마음, 평온함 같은 것들이 어둠 속으로 숨어버려 아주 잠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면, 잠시만 더 바라보면 머잖아 보이게 될 것들조차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내 시계 스탠드를 처음 끈 날은 온 세상이 암흑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암흑 속에서 꽤나 움츠리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마침내 어둠 속에 숨어있던 행복, 여유, 평온함 같은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내가 조금 어두워지니 그런 것들이 더욱 명확히 느껴진다. 나를 조금 내려놓으니 세상의 소리가,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이제 나는 새벽 1시에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일의 걱정은 내일로 미뤄둘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지금의 나는, 꽤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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