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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곰 Apr 02. 2022

사랑하는 나의 식탁, 한 평짜리 비행기

식탁에서 밥만 먹어야 되면 재미없잖아요. 

찬찬히 바라보면 아무 이야기를 지니지 않은 공간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한때는 '밥 먹는 공간'이었던 곳이 책이라는 취미생활을 만나 '꿈을 꾸는 곳'이 되기도 하고, 그저 밥집이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공간은 그렇게 사람을 만나 의미를 지닌다. 공간에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 이야기를 지니게 된다. 


그렇게 우리의 공간들은 또,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간다. 









이미 많은 글에서 이야기했듯, 나는 나의 '식탁 타임'을 참 좋아한다. 아이가 잠든 밤이나, 혼자 있는 시간이면 늘 식탁에 앉아 무엇을 읽거나, 그리거나, 쓰곤 한다. 꽤 서재라고 부를만한 공간을 만들어두기는 했으나, 어쩐 일인지 나는 나의 식탁, “한 평짜리 비행기”를 참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오늘 신세계에서 발행되는 라이프매거진 빌리브를 읽다가 나도 문득 '나의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 솟았다. 그리고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결국은 식탁부터 이야기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나는 브런치에 이런 말을 썼다. “어른이 되고 처음, 커피를 마실 때 꼭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야 고백하는데, 그것을 깨달은 날 조금은 서글펐다.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시기에 양이 많지도 않은데, 그조차도 일부러 식혀 한입에 털어 넣는 커피라니. 스스로를 커피 애호가라고 착각해온 것은 아닐까, 그것은 그저 생존 커피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펐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이 식탁에 앉아 무엇인가를 하게 된 것도 “바빠서”였던 듯하다. 공간의 명확한 구분을 좋아하기에 침실, 서재, 주방, 거실 등을 정확하게 나눠 살던 내가 엄마가 되면서부터 (정확히는 워킹맘) 여유롭게 앉아서 책을 보는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던 거다. 엄마가 되기 전에도 바쁜 직장인이었던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그래도 그땐 주말이라도 읽을 수 있지 않았던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시간을 쪼개 사용하는 것이었다. 무엇인가를 먹으며 읽고, 아이가 밥을 먹길 기다리며 읽는 등 '한 줄이라도 읽기' 위해 식탁을 '이용'했다.


반쪽의 콩처럼 작은 시간도 적응하고 나니 꽤 유용했다. 아이의 수면 패턴이 잡히기 시작하니 그래도 한 시간 정도는 밤 독서를 즐길 수 있었다. 아이가 깨는 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여전히 서재에 들어갈 수는 없었으나, 식탁에서 즐기는 독서도 참으로 좋았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어느새 7살이 되었고, 쪽잠 같았던 식탁 독서는 “식탁 타임”이라는 번듯한 이름도 갖추게 되었다. 식탁에서의 독서와 글쓰기를 더 쉽게 하고자 '멀쩡한 식탁'을 버리고 '널찍한 식탁'을 들이기도 했다. 그렇게 식탁은 나에게 한 평짜리 비행기가 되어준 것이다. 이곳에 앉아 나는 쿠바도 가고, 제주도도 간다. 그뿐인가. 고대 이집트의 어느 도시에 가기도 하고, 로마 어느 도시에서 세금을 내기도 한다. 어느 날은 뿔테를 추켜올리는 예비작가가 되기도 하고 말이다. 


 뒤늦은 육아휴직으로 하루 3분의 1을 식탁에서 보내고 있는 듯하다. 이곳에 앉아 온전히 커피만을 마시기도 하고, 멍하니 음악을 듣기도 한다. 여전히 읽고 쓴다. '먹고사느라'라는 핑계로 접어두었던 꿈도 다시 꺼내 탁탁 털어두었다. 나의 식탁이 종이비행기라서 금방 고꾸라지게 되어도 상관없고, 강철 비행기라서 나를 꿈의 어느 지점에 내려주어도 상관없다. 그저 나는 이 식탁이라는 공간에서 매일 꿈을 꾸고, 매일 글을 읽고 쓰며 자라고 있다. 마흔을 코앞에 두고도 자라고 있다니, 한심할지 모르지만, 영영 안 자라는 사람보다는 지금이라도 자라는 것이 백번 낫지 않은가?










공간. 사실 공간이 그저 공간에 지나지 않으면 아무런 이야깃거리가 없다. 누군가의 스토리와 감정이 한 공간을 켜켜이 채우면, 그 공간은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찬찬히 바라보면 그저 공간으로서의 공간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처럼 그저 '밥 먹는 공간' 식탁이 꿈을 꾸는 곳이 되기도 하고, 타인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던 공간이 나에게는 추억이 가득한 곳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문득, 빌리브에 가득한 공간에 대한 글을 다시 읽어본다. '타인의 공간'에 공감하며 '나의 공간'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나의 식탁아. 여전히 꿈꾸는 사람으로 살도록 도와줘서 고마워.”. 언제나 그렇듯 식탁은 대답이 없다. 하지만 그 많은 이야기를 품고도 침묵하며 곁에 있어 준 식탁이 나는 참으로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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