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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곰 Feb 23. 2022

내가 빛나는 건, 나만 알아도 괜찮아.

낯가리던 관종도 내 자리에서 부지런히 빛나고 있다.

별을 자주 볼 수 없어진 요즈음에는 하늘에 별만 보여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하늘에 별이 떴다고 좋아하다가 별보다 환하게 빛나는 가로등을 보았다. 그렇게 돌아보니 가로등도, 간판 불빛도, 하다못해 내 휴대폰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더라. 그런데도 우리는 별의 반짝임을 더 대단히 여긴다. 저 우주의 신비가 어떠한지는 몰라도 사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해주는 것은 가로등이고, 늦은 밤에도 주린 배를 채우게 하는 것은 간판 불빛이며, 나에게 많은 정보를 주는 것은 내 휴대폰인데 말이다.   


문득 더 이상 별의 반짝임이 대단한 것 같지 않았다. 점점 더 닿을 수 없는 듯한 아득함에서 나오는 반항인지는 몰라도 저 먼 우주에서 반짝이는 별 말고, 내 주변을 소소히 채우는 빛들을 더 사랑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 마음 하나로 세상 자체가 꽤 고맙게 느껴졌다.





 






얼마 전, 어떤 분께서 내 블로그에 이런 댓글을 달아주셨다. "문장 하나하나 깊이 공감합니다. 이 글 하나 읽었는데도 참 오랫동안 글을 써오신 분이라는 느낌이 나서 다른 글도 읽고자 이웃 신청을 하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작가님" 그 댓글을 작성하신 분은 이미 이 댓글 자체를 잊어버리셨을 수도 있고, 누구에게나 칭찬을 하시는 분일지도 모른다. 허나 나에게 그분의 말은 며칠이 지나도록 마음에 남았다. 솔직히 말하면 생면부지의 분에게 그동안의 시간들을 인정받은 느낌까지 들었다. 심지어 작가님이라니. 내 브런치를 구독하시는 분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만년 작가 지망생이라, 그 세 글자는 저 우주에서 빛나는 별처럼 느껴지는 단어였는데.


사실 더 이상 별의 반짝임이 대단하지 않다고 느낀 무렵부터 나는 살짝 작가의 꿈을 내려놓았던 것 같다. '내 이름 석자 적힌 책이 평생 없으면 또 어때. 나는 가로등으로, 간판 등으로 잘 살고 있는데.' 하는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물론 지금도 그 마음에 가깝다. 학생이었던 시절로 돌아가, 그저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던 그냥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야지, 하는 마음은 그대로다. 그러나 나라는 가로등이 여기서 빛나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환한 가로등이 되어주어야지, 생각하게 하는 댓글이었다.  


 


사실 블로그를 운영한지는 이미 10년이 넘었고 인스타그램도 꽤 오래된 것 같다. 진짜 인플루언서분들에게는 발가락 같이 느껴질 숫자겠지만 내 미미한 활동에 비하면 많다고 말할 이웃수도 '생겨있었다'. 이 생겨있다는 표현이 정확한 게, 죄송하게도 나는 그동안 이웃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었다. 인스타는 그나마 나은 편인데, 블로그는 정말 맞방이나 답글도 달지 않을 정도였으니 정말 나 혼자만의 일기장처럼 관리해왔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돌아보니 그야말로 나는 낯가리는 관종이었다. 전체 공개로 블로그와 인스타를 운영하면서도 뭔가 겸연쩍어 그것을 연동해놓지도 않고 각각 운영했다. 누군가 내 글을 읽는 것을 즐거워하면서도, 아니 늘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갈망하면서도 나의 세계들을 각각의 섬으로 그저 나의 바다에 둥둥 띄워놓았을 뿐이다.


오늘에서야 그것들을 모두 연동했다. 심지어 브런치 주소는 오늘 처음으로 블로그나 인스타에 공개했다. 물론 온라인상에서 친해서 연락처와 얼굴까지 트고 몇 년째 관계를 유지하는 분들이 몇몇 있기는 하나 돌아보니 다 그분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주신 케이스였다. (아직까지도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데 참 신기하기도 그 두어 시간 사이, 나와 비슷한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분들이 손을 내밀어주시더라. 그분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참 부지런히 빛나고 계신 것 같아 괜히 찡했다.






 





어느새 마흔을 목전에 두고 있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 꿈보다는 아이에게 치중하며 살게 된 게 사실이다. 그러면서 한때는 대단했던 간절함도 빛을 잃었다. 나조차도 내가 글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을, 내가 작가님이라는 그 세 글자를 얼마나 동경해왔는지를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삶이 조금 숨통을 트니 그것들이 다시 불쑥불쑥 나를 찾는다. 맑은 하늘이 문득 나에게 글이 쓰고 싶지 않은지를 묻고, 호젓한 겨울밤이 뭐라도 끼적여보라고 나를 부른다. 그 모든 것에 앞서, 나의 아이가 "엄마는 꿈이 뭐였어? 왜 작가님이 안되었어?" 하고 묻는다. 엄마는 작가님이 안된 게 아니라 못된 거라고,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웃으며 대답은 했지만 문득 마음이 스산하다. 지난 몇 년간의 내가 불이 꺼진 채였음을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남들은 몰랐을지라도 나는 알았다. 나라는 가로등에 전구가 나갔다는 것을.


뽀얗게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깨진 마음을 빼낸다. 작지만 온전해진 마음에 환하게 불을 키워두고 가만히 생각해본다. 내가 빛나는 것은, 나만 알아도 괜찮다고. 그저 나도 내 자리에서 빛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이제 나는 다시 빛나고 있다. 밝지 않아도, 많은 이들에게 빛을 전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가 여기, 내 자리에서 다시 빛나고 있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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