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다
라이킷 14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 그 지랄맞음을 털어낸 그의 불꽃 축제

by 든지 Mar 29. 2025


이처럼 가슴에 박히는 제목이 있을까? 사는 것 자체가 그 지랄맞음일 거라는 생각에 제목만으로도 공감이 돼버렸다. 나중에 내 책을 만든다면 이처럼 울리는 제목을 짓고 싶다.


내가 고1 때, 단지 학교가 올림픽 주경기장 인근에 있다는 이유로 86 아시안게임 매스게임에 동원되고 라면만 먹고 뛰었는데 3관왕을 해버려 일약 스타가 되었던 그해에 태어났다는 작가 조승리의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는다.


그는 자신의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린 누군가를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이 어느새 자신을 위한 글이 되었다고 했다. 또 열다섯부터 점점 시력을 잃었고, 현재는 이 암울한 대한민국에서 이름처럼 신나는 일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작가의 픨력은 타고났음일까. 이렇게 술술 읽히는 데도 가슴 뜨겁게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쉬지 않고 울컥하게 만든다. 그리고 갑작스럽고 지랄맞은 장애에 어떻게 주눅 들지 않고 살아낼 수 있었는지 경이롭다. 짜증과 원망 그도 아니면 염세적 감정에 휩싸이기만 하던 나와 달라도 너무 달라서, 그는 내게 좌절감을 주었다.


"온 나라에 여행 붐이 일었다. 한두 번 비행기를 타고 낯선 나라들을 경험하자 나도 여행의 즐거움에 빠졌다. 내게는 시간도 돈도 있었다. 문제는 홀로 나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장애는 이런 것이다.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느닷없이 튀어나와 등짝을 걷어차버린다."
39쪽, 에릭 시티가 내리던 타이베이


시간도 돈도 있지만 동행인이 없으면 시도조차 어려운 것, 평소 거리낄 것 없던 일조차 불편해지는 것이 장애라는 말에 백퍼 공감했다. 그리고 이어진 “분한 마음은 때로 용기라는 에너지로 전환되기도 한다”라는 말에 시야가 괜스레 뿌옇게 됐다. 장애에 대한 패러다임을 시원하게 반박하는 문장에 절로 엄지척한다. 장애는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잊지 마시길!


앞을 못 보는 여인 셋이 바다 건너 여행을 가겠다고 결심하는 일이 어느 장애인복지관의 사화복지사의 무심함에서 비롯된 용기였다는 것이 마음 쓰였다. 장애인복지관에서 십수 년을 일해왔던 터라 순간 미안했고, 항공기 승무원의 따뜻한 손과 가이드 손의 대화의 세심함이 더해져 많이 부끄러웠다. 나 역시 영혼은 집에 두고 자주 출근하던 부류라 별반 다르지 않아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 몰라 자괴감이 들었다.


비장애인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장애인에게는 특별함이 되는 세상에서 작가는 우리가 타인을 대하는 데에 얼마나 서투른지 깨닫게 해준다. 울컥한 감정이 한참 요동친다. 난 시간도 있고 동행인도 있는데 돈이 없다고 미루기만 해서 아내가 종종 서운함을 내비치는데 이참에 용기를 내볼까 싶다. 매번 여행은 책으로도 충분하다는 핑계를 앞세웠는데 나만의 추억을 만들어 보기 위해 시도해 봐야겠다.


장애가 있어 서러웠다고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작가의 마음이 오롯이 전달되는 통에 눈물 스위치가 툭하고 켜지는 일이 잦았다. 반항심 담긴 용기를 내야 했던 여행, 퉁바리만 놓던 외조부 앞에 무릎 꿇고 이별을 고하는 심정에서, 엄마의 장례 그밖에 많은 이야기에서 나는 준비 없이 꺽꺽 대야 했다. 아내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봐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undefined
undefined
49쪽, 에릭 시티가 내리던 타이베이 | 58쪽, 찔레꽃 향기 되어


기도가 막히면 이런 기분일까? 숨이 갑자기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답답함이 밀려 올랐다. <운동화 할머니>를 읽다가 그랬다. 작가가 스스로에게 한 질문이 내게 한 것처럼 곧장 내게 박혔다.


"나는 늙은 부모를 부양할 수 있을까?"
130쪽, 운동화 할머니


가슴이 뜨끔했다. 몇 해 전 동네 병원에 들른 아버지에게 의사는 이것저것 물으며 혹 아픈 곳은 없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더니 염증 수치가 생각보다 높다며 소견서를 써줄 테니 큰 병원 가서 전립선 검사를 받아보라고 신신당부했다.


아버지는 그 즈음 유난히 색색거리며 숨을 쉬었고 살이 빠졌다. 가족들은 그저 그런가 보다 하는 눈치만 있었는데 의사의 진단에 모두 놀랐다.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밀려들 듯 아버지는 전립선암 말기에 조기 치매 판정을 함께 받았다.  작가의 말이 남 얘기로 들리지 않았다.


"…난 가끔 승리 씨와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다른 걸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내가 실수했어요. 나는 승리 씨의 눈 역할만 하면 되는데 내 주관을 주입하려 했어요."
159쪽, 정지된 도시


장애인과 보조인의 관계에서 설핏 좀 너무하다 싶단 생각도 했다가 당연한 반응이겠단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스물한 살에 급작스러운 장애를 맞닥뜨리면서 경계 속에서 살았단 생각이 선명해지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행하는 배려는 하는 이가 아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해야 하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155쪽, 정지된 도시155쪽, 정지된 도시


10분 거리를 3시간에 걸쳐 가야 하는 것이나 누구보다 빨리 체념하는 이유가 불행에서 빠져나오는 기술이었단 말에 이렇게 공감되는 걸 보니 내가 장애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받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하고 싶은 일이 할 수 없는 일이 돼버릴 때, 나는 장애를 가장 실감한다."
201쪽, 탱고를 추는 시간


<탱고를 추는 시간>을 보며 작가가 그려낼 무대의 춤선이 궁금하면서 가슴이 벅찼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도 시력을 잃어 갔었다는 걸 떠올렸다. 할 수 없는 일이 할 수 없다고 단정할 때 정말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2005년 혼자 바다를 건너 제주도에서 강사로 새롭게 시작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가족과 친구들 모두 네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면서 그 먼 데를 혼자 가서 어떡하려고 하냐고 다 뜯어말렸지만 갔다. 용기를 냈다기보다 생존하려는 발악이었달까.


사건과 사연의 콜라보는 읽는 동안 줄곧 이렇게 글을 풀어내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해서 작가의 일상조차 부러웠으며 곧 축제가 될 작가의 지랄맞은 삶들에 엄지척한다. 그리고 내 삶도 곧 그랬으면 싶다. 그의 이야기에서 내가 보여 할 말 많은 수다쟁이처럼 돼버렸다. 어디 하나 공감되지 않은 이야기가 없어 한참을 먹먹했던 책이다.


장애를 장애로 읽히지 않을 정도의 우아한 이야기다. 술술 읽히고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하게 된다. 정말 격이 다른 필력이라서 결국 빌려 보다 주문해야 했다. 두고두고 보면서 내 글도 이리 술술 읽히는 앞잡이로 쓸 요량으로. 사람 냄새 진하게 내는 이야기를 원한다면 강추한다.



#이지랄맞음이쌓여축제가되겠지 #조승리 #달 #서평 #책리뷰 #수필 #도서인플루언서 #추천도서 #장애 #공감에세이 #샘터문학상

매거진의 이전글 [인문] 백 년의 질문, 베스트셀러 필사노트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