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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

[에세이] 단 한 번의 삶

| 인생 사용 설명법, 누구나 치열한

by 암시랑


작가는 6년 만에 신작이라지만 나는 <오직 두 사람> 이후 8년 만이다. 허나 TV 교양 프로나 CF 같은 데서 종종 봐왔던 터라 낯설지 않음이 있다. 작가 소개는 건너 뛴다. 검색창에 넣으면 제일 먼저 나오기도 하거니와 책 좀 읽은 사람이라면 누군지 감은 잡을 테니.


무엇보다 띠지에 적힌 '인생 사용법'이 궁금했다. 인생을 소비의 입장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고들 하지만 나처럼 버텨야 하는 입장의 사람들에게도 사용 가능한 치트키 같길 바랐지만, 그럴 리가. 왠지 그는 인생을 궁서체같이 대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야매는 안 통하는지.


인생은 '일회용'이란 표현에 뒷골이 띵했다. 그 말인즉슨 재활용은 안 된다는 것이니 제대로 살라는 거라는 엄마 잔소리 정도였달까. 한 번뿐인 인생, 제대로 사는 법은 어디에서 배워야 하는 걸까.


"사람들이 즐겨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에 중요한 무엇이 숨어 있을 때가 많다."
19쪽, 엄마의 비밀


작가 엄마의 인생을 보다가 갑자기 엄마의 인생이 궁금해졌다. 가만 보니 나 역시 엄마의 인생을 띄엄띄엄 보고 있었고, 그마저도 대부분은 엄마 혹은 이모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어서 그냥 흘려듣고 말았다. 혹 엄마 인생도 각색이 되었을까?


"쓰잘대기 없는 가시네"였던 엄마와 큰이모는(엄마 이후 세 여동생은 중고등학교를 나왔다.) 유년 시절, 공부를 하고 싶어도 소를 배불리 먹일 꼴을 베다가 여물을 쑤어야 했다. 물론 오빠와 남동생들은 학교에 가고. 그나마 떼를 쓰고서야 나이가 들쭉날쭉한 동기생들이 모인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고 했다. 중학교 진학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무섭게 외할아버지 호령이 떨어졌고 엄마의 학력은 국민학교로 끝났다.


처녀 소리를 들을 때쯤 논바닥밖에 없던 시골을 떠나 광주 시내의 한 방직 공장 기숙사에 들어가서야 독립을 이뤄냈고 거기에서 만난 일곱 명이서 만든 '칠공주' 모임은 엄마의 일탈이자 활력을 주었다고 했다. 이때 찍은 엄마 사진은 엄앵란처럼 고데기로 단발머리를 풍성하게 만든 머리를 하고 꽃무늬 블라우스에 나팔바지를 입고 허리에 손목을 살짝 꺾어 올린 포즈를 하고 있다. 칠공주는 다들 뭐 하시려나.


이야기의 마지막은 역시나 외할아버지가 밀어붙이며 산통이 깨졌다. 큰 키에 서글서글한 이목구비를 지닌 엄마에게 호감을 보였던 동네 국어 선생님 대신 서울에서 가구 공장을 운영한다는 스포츠가리 남자(내 아버지다)와 맞선을 보게 된 것이다.


외할머니와 엄마는 탐탁지 않았는데 남자다움과 허풍을 구분하지 못한 외할아버지가 흡족하게 엄마의 손을 남자에게 넘기면서 막을 내렸다. 엄마 인생의 불행은 아마 이때부터가 본격적이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후회를 하셨는지 어쨌는지 들은 바 없으니 모르겠지만 남자가 외할아버지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던 가구 공장을 운영은 남자가 아니라 그의 형이었다. 이후 능력도 준비도 없던 남편 덕분에 엄마는 가구점 건물의 옥상에서 농으로 벽 삼고 반투명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곳에서 신혼을 시작했다니 그 허풍을 이루 말할 수 있을까.


이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엄마의 인생이 다여서, 시내 방직 공장에서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재밌는 일이 있었고 어떤 로맨스가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아버지를 만나 팍팍해진 인생이야 말 안 해도 너무 잘 알지만 엄마에겐 비밀이 없었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환대보다는 적대를, 다정함보다는 공격성을 더 오래 마음에 두고 기억한다."
29쪽, 아이와 로봇


내가 확실히 사회적이지 않음을 증명하는 말이 이것보다 명확한 게 있을까.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 맺기가 꽤나 힘들어진 시기와 사건이 있긴 하지만(나는 스무 살에 목이 부러져 장애인이 됐다.) 어쨌거나 나는 적대보다 환대를, 공격성보다 다정한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한다.


"제멋대로인 내 정신세계가 그대로 반영된 글씨를 못마땅해했다."
43쪽, 우물 정 자 천 개


그는 꿈에 재회한 이상적인 모습의 아버지가 불편했음을 고백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아버지에게 실망했었던 순간을 들추는 일은 중력을 거스르는 정도의 부자연스럽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나는 거의 모든 기억이 중력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아 버렸다. 나와 아버지는 서로에게 그런 관계였을 것이다.


작가가 이런 이야기는 평생에 한 번만 쓸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동안 어떤 감정이었는지 궁금했다. 연탄가스를 배불리 마신 후 대부분의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한 걸 보면 그 연탄가스에 끄집어 내기 어려운 기억들을 산화해 버렸을지도. 한데 난 연탄가스도 마셔보지 않았는데 대부분의 유년 기억이 날아가 버린 연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TV에서 보아 온 그는 딱히 재치나 유머가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뭐, 책을 읽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문장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제는 조금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KakaoTalk_20250412_154122419_01.jpg 85쪽, 모른다


엄마는 오랜 세월 나를 "쓰잘데기 없는 놈"이라고 불렀다. 아마 외할아버지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니라면 어딘가에 쓸 일이 생겼는데 내가 대부분 부재했거나, 열심히 공부해서 알만한 대학에 들어가 알만한 기업에서 승승장구해 엄마의 낮은 어깨를 높게 치켜 줄 쓸모에 싹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테다. 그의 '유능'하길 바랐다는 이야기에 쓸모와 유능의 차이가 궁금했다.


"사공 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 보면 도달하게 되는 어딘가. 그게 미래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온다. 먼 미래에 도달하면 모두가 하는 일이 있다. 결말에 맞춰 과거의 서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143쪽 사공이 없는 나룻배가 닿는 곳


인생의 불확실성에 대한 그의 이야기가 꽤나 공감됐다. 뭘 잘 모르는 채로, 뭐하나 확신할 수 없는 처지로 뭘 자꾸 선택해야 하는 것이라서 불안하다는, 그러면서 경험자에게 자신의 미래를 점쳐 달라고 매달리는 불안이 비단 청년뿐만 아니라 누군들 그러지 않겠나 싶어서.


또 '하고 싶음'과 '할 수 있음'의 명확한 구분이 '이걸 해서 먹고 살만하겠냐'는 질문이 뻔하니 인생은 그저 먹고살려고 아등바등 노를 열심히 젓다 보면 어느샌가 저절로 닿는 곳이 있지 않겠냐는 그의 말도 고갤 끄덕이게 한다. 열심히 젓는다고 젓고 있는데 나의 서사는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KakaoTalk_20250412_154122419_02.jpg 141쪽, 사공이 없는 나룻배가 닿는 곳


책장이 마지막에 가까워졌는데 빵 터졌다. 그가 내 선배였다는 것도, 그가 열심히 주었다는 운동장의 돌을 3년이나 지난 나도 줍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다. 그가 다닌 신설 학교의 교장 선생님 별명이 그때도 '까만소'였을까? 당시 유행하던 라면 중에 <까만소>가 있었는데 교장의 피부가 유난히 까매서 그렇게 불렀다.


아무튼 그가 1회이고 내가 4회였으니 교정에서는 물론 앞으로도 만난 적도 만날 일도 없을 테지만 이 일화로 생면부지에다 작품은 꼴랑 두 권을 읽었을 뿐이면서도 그가 꽤나 친근해진 느낌이 든다.


마지막으로 원래 '인생 사용법'을 이야기하려 했다가 많은 이들이 치열하게 각자의 '단 한 번의 삶'을 살아가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깨달음으로 썼다며, 이 책을 통해 '무엇'이든 찾아내길 바란다고 했다. 참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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