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마디가 아이를 다시 시작하게 만든다."
“괜찮아.”
그 말을 들었는데
아이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같은 말인데도
아이에게 다르게 전해질 때가 있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이
항상 쉽지만은 않다.
“오늘은 쉬고 싶어요.”
“공부하기 싫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선뜻 괜찮다고 말해주기 어렵다.
정말 쉬어도 되는 걸까,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 걸까.
선생님으로서의 책임감과
아이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잠시 망설이게 된다.
시험을 망쳤다고 말하는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그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
아이를 위한 위로인지,
아니면 그저 지나가는 말이 되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하려 한다.
“괜찮아, 다음에 잘 보면 돼”가 아니라
“괜찮아, 그래도 끝까지 해보려고 했잖아.”
아이들은
결과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알아봐 주는 순간에
조금씩 풀린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괜찮아”라는 말이 먼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아이들은
누구보다 스스로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격려를 먼저 건네기보다
다음에는 어떻게 준비할지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묻는다.
"포기하지 않도록 옆에서 함께 외쳐주는 힘."그리고 선택하게 한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은 아이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정을 들여다보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래서 나는
결과보다 먼저 아이의 과정을 본다.
하지만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말,
감정이 앞선 말이
결과를 바꿔주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어렵다.
아이를 이해하면서도
그냥 놓아버리지 않도록
다독이는 말을 건네는 일.
그 균형을 잡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어른들은 때로
자신의 감정대로 말을 내뱉고,
그 말은 아이의 마음을 닫게 만든다.
닫힌 마음 앞에서는
대화도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 말은 더 깊게 남는다.
그래서 더 쉽게 상처가 되고,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머문다.
요즘처럼 바쁘고
미디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일,
서로를 이해하는 일이
오히려 더 어려워진 것 같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스무 해가 넘는 시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이들이 나를 피한다고 느끼거나
이해할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쉽게 꺼내지 못하는 순간."그래서인지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잘 나누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나를 떠올리고,
연락을 주고, 다시 찾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우리 아이들은
내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털어놓는다.
나 역시
내 감정을 숨기지 않고
아이들과 대화하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의 편에만 서는 것은 아니다.
선생님으로서 중심을 잡고,
학습을 이끌어야 하는 기준 역시
놓지 않으려 한다.
사람만 좋고
성적을 전혀 잡아주지 못한다면
그 또한 교습소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매일 가까이에서 보기 때문에
때로는 거리를 두게 되기도 하고,
여러 상황 속에서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보지 못하거나
들어주지 못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과 마주하는
매일의 한 시간은
서로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의 거리를 좁히려 노력한다.
그것은 아이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를 믿고 아이들을 보내주는
부모님들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다.
“괜찮아”라는 말은
아이를 위로하는 말이 아니라
아이를 믿는 말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단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마음을 어른의 언어로 번역해 보는 글빛지니
#부모교육 #아이들의마음 #학부모공감 #교육에세이 #교실이야기 #아이와대화 #감정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