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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공원에 억새가 꽃을 피웠네

월드컵공원에 있는 하늘공원에서 억새를 만나다

by 정석진

서서히 가을을 입어가는 날, 하늘공원에 올랐다. 공원 초입에는 푸른 나무들 사이로 성마른 느티나무가 여름을 벗고 벌써 붉은 가을옷을 입었다. 우리 곁에 가을이 점차 깊어 간다.

전철을 이용했더니 하늘공원까지 역에서 내려 무려 10분 이상을 걸어야 했다. 오늘은 신한은행 퇴직 동우회 사진부 출사를 나선 길이다. 화창한 가을 분위기이지만 미세먼지가 있어서인지 푸른 물이 뚝 떨어지는 하늘빛은 보이지 않는다.

하늘공원 오르는 데크길

기온이 많이 떨어졌다고 여겨 긴 옷에 바람막이까지 입고 갔는데 한여름처럼 땀이 났다. 가방도 메지 않고 단출하게 나섰더니 겉옷을 벗어 손에 들고 다니려니 불편해서 허리에 묶고 다녀야 했다.


데크를 걸어서 오르는 길에 반가운 꽃들이 있다. 서양등골나물이 소복 차림으로 피었고 붉은 유홍초가 귀여운 미소를 짓는다. 특이하게 구기자 꽃도 보인다.

사데풀도 민들레처럼 선명한 노랑으로 빛난다.

서양등골나물
붉은유홍초
구기자
사데풀

공원에는 억새축제뿐 아니라 서울정원박랑회도 열리고 있어서 평일인데도 방문객이 북적거렸다.


복잡한 행사장을 피해 억새밭에 들어섰다. 억새가 막 피기 시작해서인지 붉은빛이 도는 억새가 눈에 많이 띄었다. 한 주가 지나야 만발한 억새꽃의 장관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마음 한 편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키를 훌쩍 넘는 억새를 사진에 담으려니 쉽지 않았다.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출렁이는 억새가 가장 보기가 좋은데 찍은 사진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드넓은 벌판에 가득한 억새는 저마다 꽃송이를 달고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아직은 잠에서 덜 깬 부스스한 모습이다. 까치 한 마리도 꽃구경을 나왔는지 느긋한 발걸음이다.


바람 따라 나부끼는 억새의 부드러움을 포착하기 위해 여러 번 사진을 찍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를 등지고 찍으면 나아질까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다시 시도를 해보지만 생각처럼 빛을 머금은 반짝이는 억새꽃은 볼 수가 없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사진으로는 구현되지 않아 답답하다. 핸드폰으로 찍는 사진의 한계를 절감하는 순간이다.

한참을 걸었더니 인적이 드물어 호젓하게 홀로 들판을 걷게 되었다. 억새들의 세상 속에 찾아든 나는 이방인이다. 그들의 세상에 들어 선 나그네로 억새들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벌판 끝에 다다라 언덕에 올라 나무들 사이로 벌판을 바라보니 억새 꽃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억새밭을 제대로 누리거나 사진에 담으려면 작은 사다리가 필요한 것 같다. 억새밭의 장관을 충분히 누릴 수 있게 군데군데 조망대를 설치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억새밭 사이로 난 길을 돌고 돌아 총천연색으로 물든 코스모스를 만난다. 억새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다채로운 꽃빛깔이 더욱 도드라진다. 황홀함에 젖어들어 발길을 서성인다.

주위에 정원 박람회 관련하여 작가들의 정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특별함을 느낄 수 없다. 억새밭에 온통 마음 주어서일까? 한 곳은 억새와 어울려 사진에 담았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점심시간에 맞춰서 돌아가야 할 시간, 공원 입구의 언덕에 올라섰다. 비로소 억새의 바다를 굽어본다. 너른 들판 가득히 억새로 만발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 그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아쉬움을 삭인다. 빛나는 은빛은 아니지만 가을이 꽃피는 시절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일주일 후에 시간이 된다면 다시 찾고 싶다. 마음이 시간을 이길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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