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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호 둘레길을 걸으며

겨울 산 트레킹 단상

by 정석진 Feb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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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호 둘레길 트레킹에 나섰다. 해협산과 정암산 정상을 도는 14킬로 미터 길이로 짧지 않은 코스다. 산길을 걷지만 팔당호가 시야에 머무는 특색 있는 여정다.


동이 트는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이다. 이지러진 달이 플라타너스에 걸렸다.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묘한 순간에 버스를 타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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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현지는 예상대로  춥다. 바람도 세차다고 해서 단단히 옷을 챙겨 입었는데 잘한 것 같다. 다행히 햇살이 비춰 환한 분위기. 대오를 지어 산길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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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땅이 스산해 보인다. 굴참나무의 두툼한 수피가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단조로운 길이 한참 이어진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나목들이 도열한 길은 황량하다. 모든 것이 메마른 길은 투박하고 거친 찬만 올라온 단출한 밥상 같다. 눈을 돌려 반대 방향을 바라보면 나무들 사이로 저 멀리 팔당호가 잠든 듯 고요히 누워있다. 칙칙한 색깔이 주류인 곳에서 강의 푸른 물빛이 생기를 다. 강이 주는 풍경의 변주가 심심했던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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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등성이는 걸을만하다. 아침 햇살이 길잡이가 되어 길을 밝힌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산새들이 명랑하게 지저귄다. 음산한 겨울 산이라도 생명들이 깃들여 인내하며 살아간다. 황량한 길이지만 햇빛이 비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생기를 머금은 살아있는 길이 된다. 덩달아 나의 기분도 밝아진다. 걸음에 활기가 얹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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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상대방을 빛나게 한다. 평범하고 밋밋한 솔잎에 햇살이 비치면 눈부시게 반짝이다. 햇빛은 평범한 사물을 독특한 존재로 바꾸는 힘이 있다. 우리 삶에도 햇빛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을 만나면 스스로 자랑스러워지고 자신이 사랑받는 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단 사람만이 아니라 책도 햇빛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좋은 책을 읽게 되면 이러한 기쁨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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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걷다 보면 쓰러진 소나무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반면에 참나무는 대부분 멀쩡하다. 그 이유는 소나무가 속성수이기 때문에 재질이 무른 탓일 게다. 물론 잎을 다 떨군 단출한 참나무와 달리 바늘잎이지만 빽빽하게 무리지은 잎들로 가지들이 펼쳐져 있어 장력을 많이 받은 까닭이 가장 클 것이다.


한겨울에 줄기와 가지만 덩그러니 남은 참나무는 볼품이 없다. 반면에 늘 푸른 잎들이 멋들어진 가지를 펼친 소나무는 멋지고 아름답다. 아름다운 외모는 위기가 닥칠 때 생존 문제에 거침돌이 된다. 보이지 않는 내면과 내실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많이 가지면 그만큼 삶이 복잡해진다. 단순할수록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

그렇다고 참나무도 자만할 필요는 없다. 병들어 고사한 나무는 또 대부분 참나무다. 우리 인생에도 아이러니가 늘 존재한다. 겸손은 언제 어디서나 꼭 지녀야 할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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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 길이 계속 이어져 꽤 힘들다. 몸이 편할 때는 잡념이 새긴다. 그러나 몸이 힘들고 고달프면 헛된 생각이 들어설 틈이 없다. 오롯이 힘들다는 것에 마음이 쏠린다. 복잡한 생각은 다 달아난다. 저절로 마음이 비워진다. 적당히 힘이 들고 적당히 땀도 나는 산행이 가장 좋다. 힘들게 걷다 보면 겨울 찬바람조차 시원하게 느껴진다. 겨울을 멋지게 즐기는 방법이다.


해협산 정상을 올랐다. 531미터 높이다. 낮은 산이라 특별한 감흥은 없지만 정상을 올랐다는 뿌듯함은 있다. 다시 정암산을 향해서 출발이다. 트레킹이지만 오늘은 등산보다 더 힘들다. 걷는 속도도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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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뜸한 곳인지 등산로가 뚜렷하지 않다. 낙엽과 눈이 쌓여 길이 사라진 까닭이다. 이정표를 보고 진행할 뿐이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길을 벗어났다. 산으로 가야 하는데 강으로 가는 방향이었다. 한참을 돌아서 길을 찾았다. 갈림길에 리본이 달려있었는데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사람이 드문 겨울 산행은 조심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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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산도 403미터 밖에 되지 않은 산인데 정상까지 가는 길이 꽤 힘들다. 산마루를 몇 개를 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상이라고 생각하면 산등성이가 자꾸 나타난다. 결국 계속 올라야 했다. 마침내 정상이다. 인내가 저절로 길러지는 기분이다. 이곳은 조망이 좋은 곳이다. 시야가 탁 트여 굽이치며 흐르는 남한강의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멋진 풍경을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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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계단 걷기를 꾸준히 했다고 자부하는 마음에 쉬지 않고 남보다 빠르게 올랐다. 하지만 무리하면 좋을 게 없다. 내려갈 때 무릎 주위가 통증이 생겼다. 스틱을 짚고 내려가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적당이라는 말의 가치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14킬로미터의 여정 동안 살을 에는 찬바람도 맞았고 따스한 봄볕도 즐겼다. 오늘은 겨울과 봄을 함께 맛보았다. 힘든 것도 좋은 것도 섞여 있는 우리 삶의 축소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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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팔당호둘레길 #해협산 #정암산 #산행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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