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일단 게임을 잘 못 하고 규칙을 이해하는 것이 귀찮은 것도 있지만 패배하는 결과가 싫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상황을 견딜 수가 없다. 내가 이기면 상대방이 짜증 나고 상대가 이기면 내가 짜증 난다. 결국 누구 한 명은 기분이 나빠야 끝나는 싸움인데 굳이 왜 그런 감정싸움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게임을 회피했고 승부욕이 없는 사람이라 믿었다. 부득이하게 게임을 해야 하는 학창 시절 체육 시간 피구 경기에서 무조건 공을 따라가 부딪혀 그냥 아웃당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보니 승부욕이라는 것은 꼭 게임에서 편을 나눠서 이기고 지는 것을 다루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보다 어리지만 요리를 잘하는 사람, 나와 같이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더 빠르고 오래 달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남들도 잘 하니까 나도 잘 할거라 생각하며 이기기 위한 승부욕이 생겼다. 그러나 부모님의 식당 운영으로 재료 다듬기와 간 맞추기에 노출된 시간이 많고 꾸준한 운동으로 지구력이 강한 사람을 이기는 것은 노력의 영역 밖의 능력들이다. 승부욕만 강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나에게 승부욕이 없다고 믿었던 이유는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해서다. 남들보다 못하고 잘 안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함을 거부하며 늘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다 보니 무조건 잘 할 것이라는 승부욕에 맞는 승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오로지 나만 소유하고 있는 발견되지 않은 잠재적인 승부를 찾아야 한다. 마치 짬뽕을 먹으면서 홍합의 껍데기를 열어보면 속이 텅 빈 홍합처럼. 어쩌면 우리는 속살이 가득 찬 홍합이 있다는 믿음으로 계속해서 홍합을 열어보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열다 보면 속이 꽉 찬 홍합을 발견했을 때의 승리감은 매우 뿌듯하다. 아직 내가 발견하지 못한 재능은 어디에 숨어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