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다 Jan 17. 2024

너는 서른인데 왜 아직도 결혼을 안 했니?

내가 한국에서 안정적인 직장이 있었다면 지금 나는 폴란드에 있었을까 안정적인 직장이라 부를 곳은 어디었을까


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무경력이지만 직급은 대리인 월급은 나보다 많지만 나보다 일을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퇴사를 안 했을까


그때 내가 면접에 합격한 그 회사를 입사하지 않고 기다렸다면 다른 회사에서 무슨 일을 했을까 그 회사는 언제까지 다녔을까


나는 또 과거의 선택과 그로 인한 결과에 매달려있다. 이제는 과거보다 현재, 미래의 삶에 대해서 고민을 할 때도 됐는데 이런 걸 보면 사람 쉽게 안 바뀐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그 결정이 아니었더라도 영원했을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때가 아니라도 어느 때에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결정이고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야.



시간을 되돌려 다시 선택의 기회를 갖는다 하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겠지?


그때 내가 한 선택은 그럴 수밖에 없는 정답의 선택이었으니까.


길을 걷다가 밥을 먹다가 문득 언제 한국에 돌아가게 될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답을 낼 수 없다. 한국에 돌아가도 딱히 나를 기다리는 새로운 직장이 현재는 없고 나의 거처도 불분명하다.


한국에 있는 나의 친구들은 당장 이직을 고민하지 않을 직장이 있고 직업 속에서 성장을 위해 커리어를 위한 공부를 한다. 어디서 불어온 운명에 끌려 함께 하는 삶을 같이 할 남편을 찾기도 하고 누구는 그런 남편과 사랑의 결실로 아이까지 만들어냈다. 신기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같이 매점에 뛰어가 피자빵을 사 먹던 우리가 이제는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의 고민은

어떤 드레스를 입을지 메이크업은 어떤 곳에서 받을지

결혼을 하면 경제권은 누가 가질지

신혼집에는 어떤 가전제품을 살지


그런데 나의 고민은


언제까지 폴란드에 살지

이 직장의 다음 회사에서는 무슨 일을 할지

어떻게 하면 나의 노동 가치를 높일 수 있는지

어떤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지 무슨 지식을 갖춰야 지금보다 더 나은 경제활동을 하게 되는지


이제는 같은 고민을 하던 학창 시절의 친구들이 서로 가진 고민의 색이 너무 다르고 대화를 나누는 주제가 달라서 그들을 만나고 나면 너무나 낯선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만난 기분이다.


나이가 서른이 되면 고민이 있어도 척척 결단을 내리는 쿨한 어른이 되어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 나이는 먹으면 먹을수록 삶을 대하는 나는 소극적일까? 조금은 더 대범하게 이 세상을 맞서는 용기는 어디서 얻는 걸까?


내가 상상한 서른의 내 모습과 다르게 나는 여전히 겁도 많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그저 안주하는 현실을 도피하고 싶지만 활동적인 도전은 하지 않는 비겁한 사람이다. 나는 어떤 삶을 꿈꿔왔을까 그 꿈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 사회가 정한 삶의 모습을 순서대로 따르지 않고 살고 있는 내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틀려도 나는 아무렇지가 않다.

내 인생은 어떤 시험의 합격을 위한 정답을 맞히는 삶이 아니라 그냥 내 삶이라서 내가 사는 방식 그게 곧 정답이다.

너는 서른이 됐는데 결혼할 남자 없니?


나를 만나는 어른들은 나에게 얼른 좋은 남자를 만나 2년 뒤에는 결혼을 하라고 하며 지금 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아서 결혼 자금을 두둑이 모으라 하고 임신을 하려면 건강 관리를 위해서 체중 감량도 미리 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혼은 혼자 하는 걸까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서 만나는 걸까

꼭 결혼을 왜 해야 될까


왜 나를 향한 삶에 대한 조언의 결말은 결혼이 되는 걸까 나는 결혼을 위해 이 삶을 살고 있지 않고 내 삶의 결말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는 그 어떤 흔한 인간의 삶처럼 꾸리고 싶지 않은데


왜 그 누구도 나에게 지금 보다 더 나은 직장을 가지려면 지금 보다 이 사회에서 더 현명한 사람이 되는데 필요한 지혜의 말을 건네지 않는 걸까


왜 사회가 이런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지 모르겠다. 세상은 더 험악해지고 살기 어려워지는데 그런 세상에 새 생명을 만들어 책임을 갖고 희생을 해서 또 나와 같은 사람을 만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저 누구를 만나 결혼을 하고 싶은지 그 사람과 아이를 낳아 그 아이를 키우며 사는 삶은 내가 꾸리고 싶은 삶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서른이다.

흘러가는 대로 살았을 뿐인데 나만 이 세상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 든다.


분명 내가 원하는 삶이 있을 텐데 그 길로 가는 방법을 모르겠다.

이전 05화 우울증 걸린 사람의 스마트폰 디톡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