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무게로 안느끼게

박완서 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밤 11시쯤 되었을까 아이들을 재워놓고 도서관까지 달리기 시작했다.원래는 집앞 작은 산을 올라가곤 하는데 밤이깊어 도서관까지 나있는 자전거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그렇게 걷다 서다 달리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도서관앞 버스정류장에서 50살 정도 되보이는 엄마와 20살정도의 청년이 버스에서 내렸다.나는 모자의 뒷모습을 보며 걷고 있었는데 내눈에 들어온건 모자의 손잡고 가는 모습이었다. 덥고 습한 여름밤이었는데 둘이서 손을 꼬옥 잡고 한발한발 걸어가고 있었다.

아들이 걸음걸이는 보통사람들과 다르게 약간 절뚝이는 거 같아 보였지만 심하지는 않아 불편한지 안한지 혼자 한참을 지켜봤다.뒷모습만 보이는 어두껌껌한 밤, 스쳐지나가듯 얼굴도 본적이 없는, 불편한 다리로 엄마의 손을 잡고 열심히 걷는 두모자의 뒷모습에 그분들의 인생이 보이는거 같았다.



저번주말 내내 분당 서현고 학생기사로 인터넷은 들썩였다.

나는 휘성이가 사라졌다는 기사가 나왔을때부터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휘성이는 어디갔을까..키도 큰데납치를 당한건 아니었을텐데..전화기는 왜 학교에 두고 나갔을까..

하루에도 몇번을 기사를 클릭하며 휘성이가 바람쐬고 돌아왔을까.. 부모님에게 반항한다고 바닷가에 잠시 다녀왔기를 간절히 바랬다. 부모님도 일이 너무 커져서 죄송하게 되었다며 휘성이가 잘돌아왔다는 기사가 올라오기를 바랬다.

휘성군이 야산에서 발견되었다는 기사는 두아이의 부모로써 황망한 마음이 들었다.

휘성군의 친구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휘성이는 착하고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주는 친구라고 말했다.

휘성군의 부모님은 휘성군이 집을 나가기 전날 성적가지고 한두마디했지만 그건 어느가정에서 흔히 일어 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말씀하셨는데..부모님의 입장과 휘성이의 입장은 너무나 달랐던 입장이었을까..


차라리 휘성이가 부모님에게 반항하고 욕이라도 한번하고 나는 미치겠다고 죽고싶다고 말이라도 했더라면..

다른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동상이몽에서 정조국의 가족들이 나왔다.

정조국은 유명한 축구선수라고 한다.(사실 축구는 잘 몰라서) 그의 아내 김성은은 오랜시간 연예인 생활을 했고 아들하나 딸 둘을 이쁘게 키우는 모습을 보고 참 강하고 괜찮은 연예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조국은 결혼생활 내내 프랑스로 전주로 이번에는 제주도에서 생활을 해서 아이들과 있었던 시간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그중 큰아들 태하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12살 태하는 6살 2살 동생을 아빠처럼 잘 보살피며 밥도 챙겨주고 기저기도갈아주고 자기전에 엄마에게 사랑해요 고생했어요 까지 말해주는 너무나 멋진 오빠였다. 사실 방송을 보고 어쩜아들이 저럴까..김성은 아들 잘 키웠네..(우리 아들과 많이 다르네..)이런 생각을 했다.


몇주가 지나고 오랫만에 동상이몽에 정조국 가족이 나왔는데 태하의 심리상담을 하는 날이었다.태하는 전문교수님과 여러가지 상담을 했고 분석결과 태하는 부모화 상태라고 진단하였고 부모화가 되면 자기감정을 쉽게 표현하지도 못하고 본인이 자기의 감정을 감추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부모화상태-아이가 부모처럼 된다.)

심해지면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고 청소년기에는 비뚤어질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태화가 그린 가족그림에는 엄마와 아빠의 그림이 없었다. 동생들을 돌보고 화분에서 꽃을 심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12살 태하의 입에서 동생들은 "키워야 할 존재"라고 이야기했다.

12살 태하의 마음은 어떨까..


태하군도 차라리 엄마에게 "싫어요""안할래요"이렇게 이야기 할줄 알았으면 본인의 삶의 무게가 좀더 가볍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저녁때가 다되어서 전화로 아들에게 냉장고에 삽겹살이 있으니 15분만 에어후라이에 돌려달라고 부탁했다.냉장고에 삽겹살을 꺼내 에어후라이에 돌리기만 하면 되니깐 힘든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우리아들의 언제나 그렇듯 "싫은데~안할껀데~"뭐 이런 말을 했다.

하지만 말은 이렇게해도 집에 가면 해놨겠지 한편으론 이런 마음으로 집을 향했는데 이 개놈의 새끼가 ㅋㅋㅋ 진짜 안해놨다 ㅋㅋㅋ.


요몇일 저두가지의 일을 겪고 그래 차라리 싫다고 얘기하는것에 감사해야할 순간이라 생각했다.




요즘 박완서님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의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박완서님은 어떻게 아이들을 교육하셨을까도 궁금했었는데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라는 챕터에 박완서님의 자녀교육 철학을 엿볼수 있었다.


평범하게 키우고 있다.공개해서 남에게 도움이 될 만한 애 기르기의 비결 가은 것도 전연 아는 바 없다.그저 따뜻이 먹이고 입히고 밤늦도록 과중한 숙제와 씨름하고 있는 것을 보면,숙제를 좀 덜해가고 대신 선생님께 매를 맞는게 어떻겠느냐고 심히 비교육적이고 주책없는 권고를 하기도 한다.

~

아이들의 책가방은 무겁다,

그러나 단순히 책가방의 무게만으로 한창 나이의 아이들의 어깨가 그렇게 축 처진 것일까?

부모들의 지나친 사랑,지나친 극성이 책가방의 몇배의 무게로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거 아닐지..


"내가 너한테 어떤 정성을 들였다구

아마 들인 돈만 네 몸무게의 몇배는 될 거다.그런데 학교를 떨어져

엄마의 평생소원을 져버려?"


이런큰소리를 안쳐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만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리라는 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절도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뿐이다.


아이들은 예쁘다.

특히 내 애들은,

아이들에게 과도한 욕심을 안내고 바라볼수록 예쁘다.


제일 예쁜건 아이들다운 애다.

그다음은 공부 잘하는 애지만 약은 애는 싫다

차라리 우직하길 바란다.

활발한 건 좋지만 되바라진 애 또한 싫다.

특히 교육은 따로 못 시켰지만 애들이 자라면서 자연히 음악 미술 문학 같은 걸 이해하고 거기 깊은 애정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커서 만일 부자가 되더라도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반적인 수준에 자기 생활을 조화시킬 양식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부자가 못되더라도 검소한 생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되

인색하지는 않기를

아는것이 많되 아는것이 코끝에 걸려있지 않고 내부에 안정되어 있기를

무던하기를 멋쟁이이기를


다만 깊이 사랑하는 모자 모녀끼리의 눈치로,

어느날 내가 문득 길에서 어느 여인이 안고 가는 들국화 비슷한 홀겹의 가련한 보랏빛 국화를 속으로 몹시 탐내다가 집으로 돌아와 본즉 바로 내딸이 엄마를 드리고파 샀다면서 똑같은 꽃을 내방에 꽂아 놓고 나를 기다려 주었듯이

그런 신비한 소망이 닮음

소망의 냄새맡기로 내 애들이 그렇게 자라주기를 바랄뿐이다..


-박완서 에세이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중에서..




마지막 구절을 읽으며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몸이 불편한 아들과 엄마가 손을 잡고 가는 여름밤이 생각났다.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보라빛 국화를 선물받는 엄마가 되고자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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