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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공대생 Jun 06. 2019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

윤성희의 단편소설


 나는 다수가 모인 집단이 연대로부터 가질 수 있는 힘에 대해 그리 크게 와닿지 않는다. 어느 곳이든 간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기 마련이며, 실제로 여러 뉴스들에 달린 댓글에 동조하는 좋아요 양상, 집회에서 문제의식을 망각한 채 오로지 분노에 몸을 맡긴 사람들을 보면 앞서 내가 한 말이 어떤 의미에서 나온 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개인으로 살아왔다. 집단으로 인해 왜곡된 본질을 어떻게든 찾기 위해 홀로 내면 속에서 투쟁하는 그런 삶이 더 편했다. 타협을 거부했고, 이해를 피했다. 어느 누구도 건드려선 안 되는 역린을 굳이 들춰내는 행위에 대해 거리를 뒀다. 그것이 배려라고, 의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개인은 명확한 한계가 있다. 비록 역린이라 할지라도 영원히 들춰지지 않을 수는 없으며, 끝까지 약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 또한 아주 잠깐의 생채기로도 좌절과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요즘 들어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다수도, 개인도 아닌 소수의 집단을 선호한다. 4인 4색이라는 말이 있듯, 점묘화가 아닌 색깔을 뚜렷하게 구분 지을 수 있는 그림을 보려고 한다. 각각의 개성이 다 살아있는 와중에, 각각의 공통된 목표가 극대화될 수 있는 환경에 속한다면 분명 최소한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한 굳이 속을 들춰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들지 않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보다 편하게 삶을 영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윤성희의 ‘유턴 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는 박민규의 ‘갑을 고시원 체류기’와 다를 게 없는 주제의식을 가진 소설이다. 다른 점을 꼽자면, ‘갑을 고시원 체류기’는 개인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유턴 지점’은 앞서 말한 4인 4색의 연대에 초점을 맞춘 거라 할 수 있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네 명의 사람이 모여서 보물지도를 가지고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보물이 묻힌 곳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곳에는 보물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보니 그들 중 한 명이 일하고 있던 음식점의 주방장이 모든 돈을 들고 날랐다. 그러자 셋은 좌절에 빠지던 찰나 각자의 요리 솜씨를 상기해내고, 결국 재기를 한다. 정말 딱 잘라서 소설의 전체 줄거리를 말하면 이게 다다. 그야말로 고전 민담이 따로 없다. 새로운 삶을 지탱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한다는, 어느 곳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 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개인이 아닌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새 출발이라 말할 수 있다.


 개인은 한 번 좌절에 빠지기 시작하면 그 수렁으로부터 벗어나기 매우 힘들다. 어느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 없이 가지고 있는 두 팔로 그저 살아남기에 급급한 팔동작을 하는 데에만 신경을 써야 한다. 페이스메이커도 없다. 그러다보니 제 풀에 지쳐서 무릎을 꿇게 되고, 나아갈 수 있는 미래가 더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멈춰서는 사람도 보게 된다. 그렇기에 옆 사람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경우가 잦게 된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고, 힘들어서 속도를 늦추더라도 자신만 그런 게 아닌 걸 몸소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그 사람이 비록 직접적으로 힘을 주진 못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안도를 느끼게 해 준다. 힘들어서 영원히 주저앉는 게 아니라, 굳이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순간이다. 얼마나 바래왔던 여유인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생존이고 뭐고 전부 버리고 싶은 그 순간을 잠시 내려놓는 행위로 바꿔주는, 이토록 차분한 여유라니. 없다고 여겼던 사랑도 다시 상기할 수 있게 만들어준 이 사람들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물론 ‘내려놓기’인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은 그걸 따라주기에 아직 한참 부족하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유연함이 아직 부족한 본인이기에, 아직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봐야 할 터이다. 깎이고, 무뎌지고, 늘어나는 이 과정들에 몸을 맡긴다면, 분명 나와 같은 조약돌들을 마주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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