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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기요 Apr 23. 2024

한 회사 면접 여덟 번 보기

나는 한 회사의 면접을 여덟 번 봤다. 그리고 떨어졌다. 여덟 번을 한 번에 본 건 아니고 네 번씩 총 두 번을 봤다. 서류는 무수히 넣었지만 통과된 건 두 번이었다. 그러니까 두 번의 면접 전형을 치렀고 각 전형당 면접 횟수가 네 번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였다. 좋아한다 라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내 삶은 온통 그 회사가 만든 서비스에 지배당하고 있다. 눈만 뜨면 켜는 앱, 내 모든 자산을 관리해 주는 앱, 내가 갚아야 할 빚은 얼마이고 주식 투자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매일매일 알려주는 앱을 만든 회사였다. 스마트하고 편리했다. 그 서비스를 만든 회사의 일원이 되어 나도 스마트한 사람인양 으스대고 싶었다.


나의 이직병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지금도 이직을 외치고 있지만, 2년 전엔 더 했다. 원래 2년 주기로 회사를 계속 옮겼는데 결혼/임신/출산이라는 생애주기와 기막히게 맞물려 5년째 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셀 수 없이 많은 회사에 이력서를 냈고 네카라쿠배당토는 "쿠"와 "당"을 제외하고 서류 통과까진 갔었다. 알만한 스타트업은 도장 깨기 수준으로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때,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총 네 번의 화상면접을 봤다. 1,2차 면접은 친절했고 3차 채용팀과의 면접이 최악이었다. 본인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형사에게 취조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4차 면접에선 에어팟 전원이 나갔다. 망했구나 싶었고 결과는 탈락이었다.


2년 만에 다시 기회가 왔다. 1,2차 면접은 역시 친절했고 3차는 HR 헤드와의 면접이었는데 그는 한국말을 못 하는 외국인이었다. 동시통역기를 끼고 채용팀이 통역해 주는 그의 말을 이해하려 애쓰며 면접을 봤다. 마지막 면접도 분위기는 괜찮았는데. 당시 이직병과 더불어 팀장병까지 걸려 있던 나는 1년 내로 팀을 만들어 달라는 당당한 요구를 해버렸다(왜 그랬니). 결과는 탈락이었다.


할 만큼 했다는 생각에 속이 후련했다. 내가 좋아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는 나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그 회사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계속 지금의 회사를 다니고 있다. 오늘은 7시 30분에 출근해서 다른 건물로 배송된 상무님 일본어 교재 찾아왔으니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다했다. 이제 5시까지 뭘 하며 시간을 보낸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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