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저기요 Apr 24. 2024

내가 문제인가, 회사가 문제인가

제목을 쓰면서 결론을 내렸다. 이 회사를 택한 "내가" 문제다. 회사는 문제가 없다. 보통의 회사다. 이직을 한 두 번 했나? 월급이 밀린 적도 있었고, 부서가 사라지기도 했으며, 지금도 길 가다 마주치면 손이 벌벌 떨릴 것 같은 악질 상사도 겪었다. 바로 전 직장은 입사 8개월 만에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희망퇴직을 받았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망할 걱정은 없다. 재정적으로 탄탄하고 멀쩡한 회사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곳이라 내가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할 일도 없다. 그냥 보통의 회사다.


그런데 나는 일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일이 없어졌다. 팀을 리드하다가 단일 직무로 빠지면서 혼자가 되었다. 팀장도 아니면서 팀을 이끄는 게 힘에 부치고 동기부여도 안 돼서 포지션을 바꿔달라고 말한 건 나였다. 1년 간 최선을 다했는데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아 들고 벙쪄서 번아웃이 와버렸다.


이런 상황을 예상 못한 건 아니었다. 혼자서는 할 일이 없다. 일을 벌이려고 해도 벌려지지가 않는다.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나의 쓸모를 증명해 보려 아등바등 애써 보지만 매번 기세가 꺾이고 만다. 아무 기대도 열의도 성의도 없이 길에서 전단지 돌리는 알바생이 된 기분이다.


계속 뭘 해보려고 하는데 앞으로 나아가지가 않는다. 마른땅 위에서 노를 젓는 기분이다. 회사가 월급을 주니 노는 계속 저어야 하는데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 미치겠는 거다.


이곳은 유배지인가? 이렇게 하루하루 사람을 말라가게 해서, 자기 효능감이 바닥을 뚫고 저 지하까지 가게 만들어서, 결국은 그만두게 하려는 건가? 주위를 둘러본다. 보통의 회사처럼, 여기도 정상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처럼  생각해 보려 애쓴다. 한쪽 눈감고, 한쪽 귀 막고, 뇌 절반 도려내고,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면 된다. 내 존재 가치를 힘겹게 드러낼 필요는 없다.


하루살이처럼 살자. 1) 애 키우고 2) 빚 갚기. 내 삶의 목적은 간명하다. 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일이 필요하다. 일을 하고, 돈을 벌어서, 애를 키우고 빚을 갚는다. 여기에 내 존재 가치에 대한 고민이 끼어들면 피곤해진다.


안다, 알어. 그런데 왜 이런 글을 쓰고 앉았니. 오늘도 이 몹쓸 놈의 에고와 싸우며 사람인을 들락거린다.



이전 02화 한 회사 면접 여덟 번 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